- 파이널 판타지14 칠흑의 반역자 네타가 있습니다.
- 빛의 전사의 호칭은 '모험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빛의 전사의 묘사는 크게 하지 않지만, 제 캐릭터를 생각하며 쓰고 있습니다.
여성 모험가, 주 직업은 음유시인 이라는 설정이라 생각하며 읽는 게 편하실 수도 있습니다. - 여러모로 게임 내 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환상체와 같이 다니는 던전이 실제 새벽과 같이 다니는 것이나, 던전 진입은 시뮬레이션 이라는 것 등등) - 모험가의 메타발언, 캐릭터들의 게임 용어 사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2021.7.30 포스타입에 업로드 했던 글)
어둠의 전사의 활약으로 노르브란트엔 밤이 찾아왔고,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이게 만약 단순한 이야기였다면, 이렇게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책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었다. 어둠의 전사의 삶과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계속 이어져간다. 영웅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던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낯설고도 한편으론 보고싶었을 그리고 즐거울 어느 영웅이라 불린 모험가의 이야기. 책에는 담겨지지 않을 일상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 날의 이야기. 이곳에서의 전투 경험은 원초세계로 돌아가서도 분명 도움이 될거라는 이야기를 모험가와 새벽의 혈맹은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다. 거기에 남은 죄식자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어둠이 돌아온 후에도 어둠의 전사 일행은 계속 무기를 들었다. 영웅인 모험가는 개인적으로도 노르브란트를 돌아다니며 여러 일을 돕고 다니는지, 어디를 가든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전투 경험은 역할을 맞추어 싸웠던 것이라 판단한 새벽의 혈맹은 어떻게 다시 한 번 같은 경험을 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수정공이 크리스탈 타워에서 찾아낸 물건 중 가상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물건이 있었다. 그 물건은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장면만 가상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줬는데, 다행인지 아닌지 새벽에게도 영웅에게도 모든 전투가 강렬하게 머리 속에 남은 모양이라 어렵지 않게 그 물건을 사용할 수 있었다.
떠돌이 죄식자를 처리하기도 하고, 종종 전투 가상 체험을 하며 보내는 일상에 모든 사람이 익숙해졌을 무렵이었다. 최근 모험가가 원초세계에 넘어가는 일이 잦다고 생각했지만, 애초에 그는 모험가였다. 1세계에서 할 일이 많아 이곳에 있었지만, 원초세계에서 받은 의뢰도 해야 할 일도 있을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새벽의 혈맹 그 누구도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어차피 매번 별난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정도는 그 별난 축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연락을 빨리 할 수 있도록 모두의 방 위치는 다 공유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가끔 연락도 예고도 없이 모험가가 쳐들어올 때가 있었지만, 적어도 노크정도는 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매번 약속을 잘 지키던 모험가가 무엇이 바쁜지 오늘은 산크레드의 방 문을 쾅 소리가 나게 열면서 들어왔다.
"산크레드! 던전 가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산크레드는 문을 열고 들어온 모험가를 바라보았다. 어디 외출할 예정이었던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집에서도 옷을 입고 있는 것인지, 산크레드는 바깥에서 보는 의상을 입은 채로 방 안에 있었다. 한숨인지 그저 숨을 쉬는 건지 알 수 없는 작고 짧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노크 안하냐."
산크레드의 말을 들은 모험가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조금 놀라더니 곧 자신이 열어놓은 문에 주먹을 쥐고 똑똑 노크를 했다. 산크레드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모험가가 보라는 듯 노골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작게 모험가가 웃는 소리가 흘러들어오자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 모험가를 바라봤다.
"근데 어제도 가지 않았어?"
"응. 도느 메그 갔었지. 매번 처음 갔을 때처럼 위태위태 하단말야."
"그래. 도느 메그 일로 할 말은 많지만, 어쨌든 어제도 갔잖아."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지. 오늘 던전가자."
"너말야 사람 너무 혹사 시키는 거 아냐?"
"오늘은 홀민스터 갈 거야."
"말을 안 듣는군."
"그치만 우리 중에 탱커는 산크레드 밖에 없는걸."
모험가의 말에 산크레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험가는 말을 이어나갔다. 오른손을 들어올리고 한명씩 이름을 입에 담을 때 손가락을 접었다. 딜러는 나, 야슈톨라, 알리제, 린. 힐러는 위리앙제랑 알피노. 그러면 탱커는? 그렇게 말한 모험가는 어느새 검지와 엄지를 펼치고 나머지 손가락을 접은 손을 산크레드에게 보여줬다. 노린 것인지 마치 스스로의 말에 산크레드를 손으로 가리키는 모습이 되었다. 산크레드는 자신을 가리키는 손을 보고 모험가의 얼굴을 바라보니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약간 짜증난다는 생각이 순간 산크레드의 머릿속을 채우다가 사라졌다.
"…나지."
"유일 탱커. 그러므로 잘 부탁합니다."
모험가는 산크레드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차라리 저러지만 않아도 한마디 했을거 같은데 고마워 하는 모습을 보면 날선 말이 나오지 못했다. 무엇보다 전투에 관한 것이면 더더욱 그랬다. 그의 전투 능력이 뛰어난 건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전투를 하자 자신의 생각이 전부가 아니란 걸 산크레드는 깨달았다. 평범한 사람들을 한참 뛰어넘는 전투센스에 같이 던전을 가거나 전투를 할 때마다 배우는 게 많았다. 단지 사람을 험하게 쓰는 게 탈일 뿐.
이번에도 배우자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산크레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모험가는 즐거워 했다. 제자리에서 한바퀴 빙글 돌더니 산크레드에게 등을 보이며 문 밖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산크레드는 뭔가 위화감이 들어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 이상했다. 문 밖에서 모험가가 산크레드를 부르자 터벅터벅 걸어나가는 중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이 위화감이 뭘까 생각을 하다 방 문을 잠그고 나서야 생각이 나서 산크레드는 고개를 휙 돌려 모험가를 바라보았다.
"모험가. 너 활은 어쨌어?"
모험가는 음유시인이었다. 가끔 다른 직업을 하는 걸 본 적이 있긴 있었다. 말리카 큰우물에서는 산크레드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탱커를 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음유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모험가 본인도 자신은 활 외에는 잘 쓰지 못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의 등에 활이 없었다. 맨날 들고 다니던 활이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에 깨닫자 입고 있는 의상도 평소에 입는 의상과 많이 달랐다. 로브같이 생긴 모양이었다. 옷은 투영을 했다고 쳐도 활을 들고 다니지 않는 건 이상했다.
"아. 당분간 활은 꺼내지 않으려고."
모험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딱히 특이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게 모험가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더해지자 한없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면 어떻게 싸우려고?"
산크레드의 말에 모험가가 씨익 웃었다. 순간 불안함이 산크레드의 가슴에 치솟았다. 산크레드는 저 웃음을 알고 있었다. 올라가는 입꼬리, 살짝 쳐지면서 호를 그리는 눈매와 그 사이에 보이는 반짝이는 눈동자. 몇번이고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저렇게 웃을 때는 좋은 일이 없었다. 모험가는 산크레드의 앞에서 보란듯이 책을 꺼냈다. 그게 평범한 책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지만, 그럴리 없었다.
"나 모험록 찢었거든. 오늘부터 소환사야."
모험록? 산크레드는 순간 낯선 단어에 의문이 들었지만 곧 머릿 속에서 날려보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이제부터 소환사라는 소리였다. 산크레드는 말문이 막혔다. 투사만 줄창 해오던 녀석이 마법사? 심지어 홀민스터라는건.
"너. 너 그러면?"
"홀민스터부터 굴그 화산까지 잘 부탁할게!"
기나긴 전투를 예고받는 산크레드는 눈 앞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아씨엔을 만나도 이런 감정이 들진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크리스타리움에서 아씨엔을 만났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 산크레드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리를 짚었다. 고생길이 훤하군.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작은 말은 모험가에게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분간은 고생이 계속 될 것 같았다. 산크레드는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오는 듯 했지만, 이 두통을 없앨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의 이야기. 모험가는 특정 날이 되면 일 메그를 향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을 하곤 갔는데, 보통은 금방 일을 끝내고 돌아왔다. 가끔은 오랜 시간 나가있다가 돌아오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린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다. 원초세계에서 의뢰를 하러 갈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새벽의 혈맹은 모험가의 그런 행동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린은 새벽에게 굳이 모험가에 관한 걸 묻진 않았다. 그저 속으로 궁금증을 갖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린에게 우연히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산크레드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모험가와 둘이 있는 시간. 궁금증을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모험가는 언제나 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말을 하면 모험가는 어떻게든 답변을 하고 알려줄 것이란건 린도 알고 있었다. 린은 조심스럽게 모험가에게 말을 꺼냈다.
"저기, 모험가씨.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응? 뭔데. 내가 답할 수 있는 거면 뭐든 좋아."
"그, 모험가씨의 일인데요."
본인의 일이라고 듣자 모험가의 얼굴에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는가 였다. 린은 산크레드와 같이 다니고 있었으니 더더욱 찔리는 일이 많았다. 산크레드는 모험가에게 가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그가 린에게 자신을 마냥 나쁘게 말하진 않았을 것 같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산크레드 본인도 모르게 흘린 말 속에 무언가 린의 마음에 불편함을 준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으니, 불안함이 스멀스멀 감정 깊은 곳에서부터 깔리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때 쯤 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험가씨는 일 메그로 자주 가시죠?”
“자주, 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가지?”
숨을 삼키듯 한템포 가만히 있던 린은 천천히 말을 했다. 그저 모험가가 일 메그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나온 질문을. 요정들이 의뢰를 할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페오를 만나러 가는 건 아닌 것 같아보였다는 린의 말에 모험가는 약간 소리를 내며 하하 웃었다.
"확실히 그렇지. 그런 느낌이지 일 메그는. 내가 너무 자주 가서 잊고 있었네."
정말로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였는지 모험가는 호쾌하게 웃으며 린을 바라보았다. 린은 모험가가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에 안심하며, 좋은 분위기에 따라 웃어보였다. 웃고 있던 모험가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그러게, 그러게 말을 반복했다. 곧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몸을 들어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그러면 린도 같이 갈래?"
"네? 괜찮은 건가요?"
"응. 조금 이르긴 하지만, 지금도 괜찮을 거 같아서."
모험가의 말을 전부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같이 가자는 말은 이해 할 수 있었다. 그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는 것은 정말로 같이 가도 괜찮다는 소리였다. 언제나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존중하려 하는 모험가라 웬만한 일에는 다 된다고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가 단호해지는 일이 있는데, 정말로 위험한 일에 관한 것이나 전투에 관한 것이었다.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이 모험가가 생각하기에 따라오면 위험할 정도로 실력이 맞지 않는 곳 일 때엔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그러니 위험한 일로 일 메그를 향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린은 생각했다.
린은 같이 가고 싶다고 의견을 표했고, 모험가는 그런 린의 의사표현을 기뻐해주었다. 산크레드에게는 자기가 말을 하겠다며 링크펄을 사용했다. 모험가가 함께 있고, 모험가도 괜찮다고 했다면 상관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산크레드 또한 모험가의 실력과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정말로 마음 편히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일 메그의 리다 란으로 향했다. 린은 가는 도중에 어떤 일로 가는 건지 묻고 싶은 기색이 보였다. 모험가는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른 척 하면서 린과 발걸음을 맞춰 리다 란으로 걸어갔다. 만약 린이 용기 내 물어봐도 모르는 척 해야지 마음 먹었지만, 리다 란에 도착할 때까지 린이 모험가에게 직접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아마 도착하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마음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일 메그에는 오늘도 풀들이 무성하고, 꽃잎들이 바람에 따라 살랑이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했다. 그건 낮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밤이 내려앉은 일 메그엔 성에 있는 날개 같은 문양이 반짝이고, 수놓인 별들이 마치 아름다운 일 메그의 땅으로 내려오는 꽃잎들을 올라탄 것처럼 보여 더욱 새로운 분위기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런 아름다움을 구경하는 린과 그런 린을 웃으며 바라보던 모험가의 모습을 보고 픽시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어머, 오늘은 빨리 왔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싫은 건 아니지?”
“우리가 어떻게 너를 싫어할 수 있겠어.”
“그래, 그래. 우리 여왕님께 혼~난다고.”
목소리에 두려움 하나 없이 깔깔 거리며 픽시들이 모험가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무언가 소리가 들리자 모험가 쪽을 바라본 린이 걷는 것 보단 빠르지만, 뛰는 것 보다는 살짝 느린 모습으로 모험가에게 달려왔다.
“잠시 풍경에 빠져버려서.”
“응. 나도 보고 있었으니까 괜찮아. 갈까? 어차피 이제 곧이야.”
“맞아, 곧이야.”
“조금만 더 가면 갈 수 있어~”
픽시들이 주위에서 떠들자 모험가는 픽시들을 보며 검지에 입을 대고 쉬~ 하고 소리를 내었다. 픽시들을 웃으면서 날아가더니 곧 모습을 숨겼다. 모험가는 약간 곤란한 웃음을 지으며 갈까 말을 꺼내고 린의 손을 잡았다. 린은 갈 수 있다는 픽시들의 말에 어디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을 막듯 자신의 손을 잡는 모험가의 손을 보고 묻는 대신 힘있게 모험가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갔다.
어떤 건물처럼 생긴 곳 앞에 몇 픽시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에 한 픽시가 모험가를 보고는 살짝 놀라는 듯 보였다.
“윈 니~ 나왔어.”
“어머, 오늘은 조금 빨리 왔네?”
“지금쯤이면 조금 빨리 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문제 있어?”
“아니, 아니. 아무런 문제없어. 부탁할 일은 잔뜩 있으니까. 오늘은 귀여운 아가도 같이 왔네?”
“응. 그래서 조금 일찍 온 거야. 혹시 같이 리예 메그로 갈 수 있을까?”
윈 니 라고 부른 픽시는 잠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하늘로 한바퀴 빙글 날아 오르면서 좋다고 답해주었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오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모험가는 놓지 않은 손을 이끌면서 린에게 이쪽이야 라고 말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실 린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거든. 린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꿈의 전사 했으니까.”
“꿈의, 전사요?”
“그래.”
모험가는 언젠가 한 아이의 앞에서 자칭했던 호칭을 입에 담았다. 빛의 전사, 어둠의 전사라 불린다면 그때의 자신은 꿈의 전사라 불려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입에 담은 호칭이었다. 약간 부끄러울 만도 한데 린의 앞에서 모험가는 한 점 부끄럼 없이 그 호칭을 입에 담고는 린을 이끌었다. 마치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가까이 다가가더니, 곧 두 사람의 시야가 흐려졌다.
눈을 뜨자 보이는건 분홍빛 세상이었다. 커다란 나무가 보이고, 여러 놀이기구가 보이는 동산. 몽환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즐거움으로 가득 찬 장소였다. 가득 깔린 푸른 잔디와 아름다운 꽃들은 이곳은 일 메그의 한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린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와~”
도느 메그를 보면서도 예쁘다고 기뻐한 린이었다. 분명 리예 메그에 와도 좋아해 줄 게 분명했다. 모험가는 이 곳에 올 때마다 린 생각을 했다. 린을 데리고 올 수 있다면. 좀 더 안정이 되면, 위험하지 않게 되면 린을 데리고 와야지. 예상보다는 빠른 시기였지만, 린이 궁금해 한 지금이 딱 적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기뻐하는 린의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복잡한 표정으로 모험가는 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뻐요.”
“그치?”
“네! 정말 예뻐요. 풍경도 분홍색으로 예쁘고, 나무도 꽃들도 예뻐요. 신기한 물건들도 많이 보여요.”
기뻐하는 린을 보던 모험가는 린의 앞에 서서 왼손은 등 뒤로 하고, 오른손을 린에게 내밀었다.
“이곳은 리예 메그, 꿈의 동산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 꿈의 동산에서 저와 함께 놀아 주시겠어요?”
약간 정중해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어설퍼서 정중하다기 보단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분명 제대로 예의를 갖추고 정중하게 행동할 수 있는 모험가였다. 일부러 딱딱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 적당히 힘을 빼 행동을 했고, 그게 린의 마음에도 들었는지 린은 후후 웃음을 흘렸다.
“네, 좋아요!”
모험가가 내민 오른손에 린이 왼손을 포개었다. 빙그레 웃는 모험가의 두 눈에 즐겁게 웃고 있는 린의 표정이 보였다. 그래, 이걸로 됐다고 모험가는 생각했다.
어느 날의 이야기. 오늘도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새벽의 혈맹과 함께 전투를 하러 온 모험가. 찾은 것은 도느 메그, 같이 온 일행은 산크레드와 위리앙제, 알리제 였다. 일행은 자주 바뀌긴 하지만, 벌써 같은 곳에 몇 번이고 전투를 하러 찾아왔다. 이정도면 일행이 누구이든 어느정도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모험가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하아…….”
한숨을 내쉬는 모험가의 눈앞에는 외나무다리가 보였다. 진짜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상, 환각이라는 것은 모험가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외나무 다리를 앞에 두고 고민하는 모험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위리앙제는 언제나처럼 정신차리면 전너편으로 넘어가 있었다.
“먼저 간다.”
짧은 말을 모험가에게 하곤 산크레드는 외나무다리 위를 조금 달려가다가 그대로 건너편으로 뛰어넘어갔다. 자신도 저런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모험가는 산크레드가 부러웠다. 그러면 자신의 고민도 해결되는 셈이었으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알리제는 빠른 달리기로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그걸 보고 빠르다는 생각을 할 때 쯤 엔 이미 건너편에 넘어가 있었다.
‘기만자들…….’
모험가는 순간 속으로 짧게 그런 말을 떠올렸다.
“나도 가야지…….”
모험가는 마른 침을 삼키며 외나무 다리에 발을 내딛었다. 중간까진 괜찮다. 늘 중간까진 아무 문제없이 걸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 이후 두 번째 꺾이는 위치에서 항상 고생을 했다. 그곳에서 발을 삐끗해 밑으로 떨어진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세고 싶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그렇게 생각하며 모험가는 다리 위를 나아갔다.
“빨리 안…….”
몽환의 현악기를 공격하다가, 어째서인지 건너오지 않는 모험가가 이상해 산크레드가 말을 꺼내며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모험가의 모습이 보였다. 중심을 잃어서 몸이 거의 다 넘어갔음에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팔을 힘껏 휘두르는 모험가의 모습이. 당황한건지, 놀란건지 산크레드는 말을 잇지 못했고, 모험가는 중심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모험가가 빠진다고 크게 문제가 있는 기술은 아니었기에 셋이서 몽환의 현악기를 부술 수 있었다. 그 이후는 모험가까지 합한 네 명이서 큰 문제없이 전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외나무 다리에서 떨어진 모험가는 꽤 풀이 죽어있는 모습이었다.
“아, 역시 난 못하겠어. 그거 못 건너가겠어. 이 멤버로 갈 땐 그냥 난 안 건너면 안될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모험가의 약한 소리에 산크레드가 단호한 말투로 답을 했다.
“그치만 떨어지고 싶지 않은걸. 세명이나 건너갈 수 있는 멤버에선 나 혼자 없어도 충분하잖아.”
단호한 말에도 굴하지 않고 모험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표정이 진지하다고 내용까지 진지해지는 건 아니었는지 알리제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고, 산크레드는 그저 조용히 모험가를 쳐다볼 뿐이었다. 위리앙제는 한 발짝 뒤에서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치만 다른 멤버랑은 잘 넘어가는걸! 이 멤버만큼은! 응? 괜찮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랑은 정말 괜찮은거야?”
알리제가 산크레드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산크레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피노와 린이 있을 때는.”
“아, 과연. 그건 빨리 넘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네.”
알리제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이 있는 멤버라면 산크레드, 모험가, 알피노, 린. 이렇게 네 명이서 멤버일텐데, 알피노와 린에게 외나무 다리를 빨리 넘어오길 바라는 건 어려웠다. 그러면 산크레드와 모험가 둘이서 어떻게 몽환의 현악기를 부술 수 밖에 없었다. 탱커인 산크레드에게 몽환의 현악기를 부술 만큼의 딜을 바랄 순 없을테니, 어떻게든 모험가가 넘어와야 하는 멤버였다.
“그러니까 여기는 나 말고 다 넘어가니 괜찮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실수 하게 되는 거라니까?”
“그치만 그 멤버일 땐 산크레드가 압박하잖아. 빨리 건너오라고.”
산크레드의 말에 모험가가 반박 하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맨 끝으로 멤버가 밀려나가고, 눈앞에 절벽과 외나무 다리의 환상이 보인다. 알피노와 린이 함께 있을 때는 산크레드를 제외한 세 명의 한숨이 그 장소를 채웠다. 산크레드는 늘 똑같이 어느 정도 건너다가 그대로 건너편으로 뛰어넘어갔다. 그걸 본 세사람은 외나무 다리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히, 힘내도록 하세. 건널 수 있으니!”
“그럼요! 건널 수 있어요. 건널 수 있어요…….”
마치 주문 같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외나무 다리의 시작점을 바라보며 이리 말하는 린과 알피노는 건너올 마음을 잡는 데에만 시간이 걸릴 것 같았고, 산크레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산크레드와 모험가의 시선이 마주쳤다. 산크레드는 약간 굳은 것 같기도 하고, 진지한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모험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볍게 휙 왼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모험가를 쳐다보았다.
‘건너와.’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험가는 알 수 있었다. 산크레드는 지금 이렇게 말을 했다. 모험가는 한번 눈을 꾹 감았다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외나무 다리를 건너긴 무서웠지만, 산크레드의 말은 따라야 하는 올바른 판단이었다. 여기서 자신마저 다리를 건너는데 시간을 쓰면 정말 가망이 없었다.
“알피노, 린. 미안한데, 먼저 가도 될까?”
“그래, 지나가게나.”
“금방 따라갈게요!”
외나무 다리 시작지점을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은 곧장 모험가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그런 두사람의 말을 뒤로 한 채 모험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외나무 다리를 건넜다. 평소에 자주 실수하는 곳에서도 실수 없이 깔끔하게 한 번에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뒤에서 두사람의 감탄이 들려오는 듯 했다.
“건너오는데 시간 오래 걸리겠다.”
“아마 둘이 다 건너오기 전엔 끝날걸.”
산크레드와 모험가는 짧은 대화를 나누고 묵묵히 몽환의 현악기를 공격했다. 이 4명이 함께 도느 메그에 올 땐 늘 이런 분위기였다.
“원래 잘 건너올 수 있는 녀석이야. 그냥 우리와 있을 때는 해이해져서 그럴 뿐이지.”
“야슈톨라랑 갈 때도 떨어져?”
“떨어져.”
“그럼 당신의 마음가짐이 문제네.”
단호한 알리제와 산크레드의 말에 모험가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저게 연기라는 사실은 두 사람은 알고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답을 꺼내기 위해 보이는 표정일 뿐이었다. 뻔히 아는 사실에 당할만큼 두 사람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모험가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서 타겟을 바꿨다. 한걸음 뒤에 떨어져 있는 위리앙제를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위리앙제는 조용히 생격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 산크레드, 알리제 아가씨와 같은 의견입니다.”
아군이 되어 줄 거라 생각했던 위리앙제 마저 두 사람에게 동의하자, 모험가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런 흔하디 흔한 영웅이라 불린 어떤 모험가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