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널 판타지14 효월의 종언 네타가 있습니다.
효월의 종언 엔딩 이후 시간대를 쓰고 있습니다. - 빛의 전사의 호칭으로 '모험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험가의 묘사는 크게 하지 않지만, 제 캐릭터를 생각하며 쓰고 있습니다.
여성 모험가, 주직업은 음유시인 이라는 설정으로 읽으시는 게 편하실 수 있습니다. - 여러모로 게임 내 설정과 맞지 않는 부분, 날조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설정 해석, 캐릭터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 보물고에서 대박이 터진 모험가가 라스트 스탠드를 전세내는 이야기.
(2023.03.03 포스타입에 업로드 했던 글)
보물고에 대해 알고 있는가. 오래된 지도를 해독하여 보물상자를 찾고 마물의 방해를 이겨내면 보물상자는 드디어 자신을 찾은 주인의 손을 허락한다. 그렇게 열게된 보물상자는 가끔가다 전송 문양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 전송 문양이 보물고로 이어지는 입구인 셈이다.
보물고엔 보기 드문 보물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보물상자를 열었다고 반드시 전송문양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문양이 떠오르는 보물상자와 그저 물건을 담고있는 보물상자가 있고, 그걸 사전에 알아채는 방법은 없다. 즉 단순히 운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보물고였다.
숙련된 모험가가 오래된 지도를 10장 넘게 해독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전송 문양이 뜨지 않았단 이야기. 처음 오래된 지도를 얻은 모험가가 곧바로 전송 문양과 마주했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래. 누가 지도를 해독하고, 보물상자를 열었든 단순히 운으로 보물고로 이어지는 전송문양이 뜨거나 뜨지 않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원망이 영향을 줬다거나, 직접 찾아낸 오래된 지도가 아니라 다른 모험가에게서 구매한 것이라 안됐다 하는 이야기는 전혀 믿을 수 없는 미신들이었다. 그러나 영웅이라 불린 모험가는 그런 미신이 머릿속을 채우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왜냐면 10장 넘게 해독해서 전송 문양이 한번도 뜨지 않은 숙련된 모험가가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하아..."
보물고는 혼자서는 돌파하기 어려운 곳이라 반드시 다른 모험가와 협력해서 가야한다. 그렇기에 보통 함께할 모험가들을 모아서 각자 가지고 있는 지도의 장소를 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간도 노력도 들기 때문에 같이 갈 인원을 찾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었다. 모험가는 벌써 몇번이고 사람을 모았고, 헤어졌다. 그리고 10번의 지도를 해독한 지금은 더 이상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반쯤 울먹이면서 모험가는 샬레이안 장터에 주저앉아있었다. 서있을 의욕도 없어졌다.
대박을 바란 건 아니었다. 단순히 보물고에 들어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사실 자신의 지도 10장을 해독하면서, 동행하는 다른 모험가의 보물상자에 전송 문양이 떠올라 보물고에 들어간 일이야 많았다. 그러나 남이 전송 문양을 띄운 보물고에 가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띄운 전송 문양에 이어진 보물고에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단순하고도 과분한 소망을 모험가는 갖고 있었다.
"너무해..."
"불러놓고는 널부러져서 하는 소리가 그것 뿐이에요?"
바닥에 주저앉은 자신의 고용주인 모험가를 바라보는 집사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은 열릴지 모른다며 지도를 얻기 위해 집사를 불렀지만, 도착한 집사가 '갖고있는 오래된 지도는 없다.' 고 말했다. 집사의 말을 계기로 자신의 상황을 되짚던 모험가가 의욕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더 캐시면 되죠."
"지금은 더 못구해..."
"코 앞에 장터게시판 두고서 뭐하시는데요."
"네장 샀어. 더 사고싶지 않아. 어차피 산건 안열릴텐데."
"저번에 다른 사람은 구매한 지도로도 잘만 보물고에 갔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요?"
"나는 못가..."
"그건 맞는 말이죠."
정곡을 찌르는 집사의 말에 모험가의 표정은 더욱 울상이 되어 불쌍해보일 정도였다. 그 불쌍한 모습에 집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한 번 자신의 가방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집사가 아무리 가방을 뒤진다고 없는 오래된 지도가 나올리 없었다. 모험가가 울상지으며 바닥을 구른다고 다음에 얻을 오래된 지도에 전송 문양이 뜰거라는 보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모험가의 운을 생각하자면, 안뜨는 게 훨씬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적당한 위로밖에 없는 집사는 어느새 가방에서 부채를 꺼내 모험가의 얼굴에 살살 부채를 부쳤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닿자 모험가의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
올려다본 샬레이안의 하늘은 오늘도 맑았고, 장터를 왔다갔다 움직이는 사람들은 활기가 있어보였다. 종말의 위기를 벗어난 일상의 어느날. 종말을 물러나게 만든 영웅인 모험가 외의 다른 사람들은 전부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 혼자 장터 바닥에 앉아 떼를 쓰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약간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이제 돌아가도 될까요?"
"수행도 안보냈는데 왜 이렇게 바빠. 좀 있다가 가면 안돼?"
"수행이 없더라도 제 개인 생활은 있잖아요. 고용주님께서 종말은 없애주셨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피해 때문에 수복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바빠서요."
"그렇긴, 하겠지. 잡아서 미안해. 돌아가도 괜찮아."
여전히 힘 없이 바닥에 앉아있는 모험가는 왼손을 들어서 휘적휘적 해초같은 움직임으로 움직였다. 아마 집사를 배웅하고자 손인사를 하려는 것 같았다. 아무리봐도 웃긴 모습으로밖엔 보이지 않았지만. 집사는 그 손인사를 보고 덥썩 모험가의 왼손을 잡은 후에 자신이 들고 있던 부채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깔끔하고 힘있게 손을 흔들어 제대로 된 손인사를 보여주고는 떠나갔다.
모험가는 집사가 쥐어준 부채를 한번 쳐다보고는 얼굴에 살살 흔들어보았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부치는데 드는 힘에 비해 시원한 부채였다. 다음에 오면 어디서 구매했는지 물어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분전환을 시도해보았다.
"저기. 지도 일행 모집 공고 올리셨던 분 맞죠?"
목소리가 들려 모험가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까까진 모집 공고를 올리고 있긴 했었다. 단지 지금 집사에게 지도가 없다는 걸 알고 곧바로 공고를 내렸다. 그 사이 공고를 본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걸 어쩌나 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말 건 사람 일행을 바라보았다.
종말을 이겨낸 덕인지 예전만큼 입국심사가 엄하지 않아져 최근엔 올드 샬레이안을 찾아오는 모험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모험가에게 말을 건 사람들은 심사가 유해진 이 때를 틈타 올드 샬레이안을 구경하고자 온 모험가처럼 보였다. 갑옷이 신식이 아닌 약간 구식이었고, 오래 모험을 한 모험가처럼 보이진 않았다.
말을 건 사람은 구식 갑옷을 입고 있었으니 탱커인 모양이었다. 뒤에는 딜러와 힐러가 한명씩 있었다. 공고를 올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모험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험가도 딜러였으니 인원 수와 역할은 딱 맞았다. 문제는 모험가가 지금 지도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맞습니다만, 제가 지도가 없어서 곧바로 공고를 내렸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지도를 한장 더 가지고 있는데, 구매하시겠어요? 저희는 영웅님과 보물고에 가고 싶어요."
에오르제아의 영웅. 용시전쟁을 끝낸 영웅. 수많은 모험가들이 가슴 뛸 호칭을 갖고 있는 모험가는 지금은 후줄근하고 지친 한사람의 모험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멋쩍어 크흠 헛기침을 해보았다. 오히려 헛기침을 한 게 뭐 있어보이는 사람처럼 행동한 것 같아 더 쑥쓰러워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부채질을 하고싶어졌다. 모험가들 사이에 자신의 얼굴이 알려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럴 때 그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 줄은 몰랐다.
모험가는 지도를 더 돌고 싶었고, 찾아온 모험가 일행은 영웅인 모험가와 함께 하고싶었다. 심지어 지도까지 더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가지 않겠다고 말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시세 좀 보고 올게요."
"그럼 같이 가주시는건가요?"
"저도 보물고는 가고 싶었으니까요. 같이 가죠."
무척 신나하며 웃는 세명을 바라보자 해서 안되는 짓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아니라 좀 더 영웅다운 사람이 영웅이었으면, 저들이 저렇게 기뻐하는게 이해가 될텐데. 자신이 영웅이라니 안 어울리는 기분이었다.
장터게시판의 시세대로 모험가는 지도를 구매하고, 이들과 함께 오래된 지도를 해독하고 돌아다니기로 했다. 이미 10장 가까이 지도를 해독해온 모험가는 어렵지 않게 다른 사람들의 지도도 해독해주었다. 대단하다며 놀라하는 그들을 보며 어쩐지 입안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게 다 경험이지. 모험가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도를 10장 이상 확인하지 않았다면, 자기가 이렇게 쉽게 지도를 해독할리가 없으니까.
이미 수많은 지도로 허탕을 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구매한 지도였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같이 지도를 도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보물고를 찾는 모험가들이라 초보자의 운이 모험가에게도 적용이 된 것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알 수 없는 행운이 무척 반가웠다.
"아까 지도 허탕쳤다고 울상이던 사람 어디 갔죠?"
"엉? 집에 간 거 아냐?"
입이 귀에 걸릴 거 같다는 표현은 딱 지금의 모험가에게 할만한 표현이었다. 바로 얼마전에 지도가 안열렸다고 울상지으며 바닥을 구르다가 자신에게 부채를 받았던 그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간건지 집사는 가는 눈으로 모험가를 바라보았다.
신참 모험가 일행과 지도를 돈 모험가는 바리바리 뭔가를 싸들고 올드 샬레이안으로 돌아왔다. 같이 지도를 간 모험가 일행은 다른 곳으로 예정이 있어 떠난 모양이었다. 집사를 부르는 벨을 울리고 자신을 부르는 걸 안 집사가 올드 샬레이안에 도착했을 때엔 모험가는 당장이라도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분위기로 집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상인 꼴도 보기 좋진 않았지만, 저렇게 좋아 죽을 것 같은 표정도 썩 보기 좋진 않았다.
"대박났습니까?"
"완전, 대박. 4장 모두다 열렸어."
"축하드리네요. 그렇게 안열린다고 난리치더니만"
"그냥 열린 것도 아니야, 막층까지 갔다니까."
"와, 그거 참."
축하는 해줘야겠지만, 쉽게 축하의 말이 튀어나오진 않았다. 어차피 신나서 축하의 말을 해도 들리진 않을테고, 무엇보다 대박났다며 신나하는 모험가가 가지고 온 물건을 파는 일은 집사인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집사 입장으로는 일이 생긴 셈이었다.
"일단 줘봐요. 빨리 줘봐야 빨리 제가격에 팔고 올 거 아니에요."
"하긴 그렇지, 쫘르륵 줄테니까 가격은 말한대로 부탁할게. 좀 안팔린다 싶으면 깎아도 상관없어."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모험가에게 판매 의뢰를 받은 게 한두번이 아니니 집사는 자연스럽게 말을 했고, 모험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는 가지고 온 물건들을 끊임없이 꺼내서 집사에게 건네주었고, 한눈에 봐도 흔하지 않은 물건들 밖에 없었다. 이번 지도는 대박이었다는걸 집사도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모처럼 큰 금액을 벌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모험가가 보물고에서 가져온 물건을 모두 팔 수 있었다. 집사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손에 쥐었고, 드물게 거금을 벌어 어서 모험가가 이 금액을 가져가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모험가가 자신을 불렀을 때 떠넘기듯 금액을 건네주고 겨우 짐을 덜어놨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내뱉었다.
"저는 부자는 못되겠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거 너무 거금이잖아."
"대박 친 본인이 뭐라는 거예요. 전 전달했으니까 알아서 잘 쓰세요. 금단으로 또 탕진하진 말고."
집사가 떠나면서 남긴 말이 아파서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집사를 떠나보냈다. 혼자 남겨진 모험가는 머쓱하게 오른손으로 뒷머리를 매만졌다. 바라던대로 보물고에서 큰 돈을 벌 수 있었고, 지금은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돈을 쓸 곳이 없었다. 많이 벌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어디에 쓰고자 가진 바람이 아니었다.
"만약을 위한 저축으로 가지고만 있을까."
돈을 벌었다고 굳이 쓸 필요는 없다. 나중에 돈이 필요할 때를 위해 다들 돈을 벌어서 모아두는 것이니, 자신도 그러자고 생각했다. 모험가는 특히 벌이가 일정한 편도 아니었으니, 모아놓은 돈이 있어 나쁠 건 없었다.
해는 어느새 머리 바로 위에 떠있었고, 아침을 챙기지 않은 배는 슬슬 배가 고프다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고민하던 모험가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라스트 스탠드로 옮겼다. 이곳 올드 샬레이안에서 모험가의 입에 맞는 음식은 그곳에서 밖에 찾을 수 없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라스트 스탠드로 향하는 모험가의 시야 끝에 햐얗고 복실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익숙한 복실함에 고개를 내리자 하얀 털과 긴 귀를 가진 작은 토끼같은 종족의 누군가가 보였다. 종종 라비린토스에 있는 레포릿이 올드 샬레이안에도 온다는 걸 듣긴 했지만,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푸딩, 푸딩..."
익숙한 단어가 들렸다. 시야에 들어온 레포릿은 익숙한 단어를 반복해서 부르고 있었다. 푸딩을 부르는 레포릿이라면 딱 한명 모험가가 알고 있는 레포릿이 있었다.
"푸딩웨이. 푸딩 찾으러 왔어?"
"힉! 모험가님이셨나요."
뒤에서 대뜸 말을 거는 모험가의 목소리를 듣고 놀란 푸딩웨이가 도망가더니 몸을 휙 돌렸다. 뒤에서 말을 건 존재가 모험가라는 걸 알고 작고 보드라운 손을 가슴에 올리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갑자기 말을 걸었나. 모험가는 머쓱하게 웃으며 푸딩웨이 가까이에 다가갔다.
"마침 잘됐습니다. 모험가님 라스트 스탠드라는 곳을 아시는지요?"
"그야 당연히 알고 있지."
"그, 그러면 그곳에서 푸딩을 먹으려면 돈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네요?"
"응? 어, 그야 물론 알고 있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는 모험가를 보고 푸딩웨이는 잠깐 슬픔에 젖은 눈을 보였다.
"사실 말입니다. 라스트 스탠드라는 곳에서 푸딩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갔는데, 돈이 없으면 푸딩을 내줄 수 없다고 하시지 뭔가요. 저는, 저는 그것이 뭔지 몰라서."
"돈 없어서 푸딩 못 먹고 나왔어?"
푸딩웨이는 기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기운이 없었는지 귀까지 힘없이 내려갈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달에 살던 레포릿들이 아이테리스에서 사용하는 돈을 가지고 있을리 없었다.
"저희는 아직 아이테리스에 대해 모르는게 많군요. 그래서 모험가님에게 부디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 저에게 그 돈이란 걸 버는 방법을 알려주실 수 없으실까요?"
"그렇게 말해도, 나는 몸 쓰는 일 밖에 몰라서."
당장 채집을 하라고 해도 레포릿의 작은 몸으로 얼마나 돈이 될만한 걸 캘 수 있을까. 채집을 한다고 해도 돈이란 개념이 없는데 시세나 흥정은 알기나 할까. 사기 당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모험가로서 받는 일들을 소개시켜줄 수는 없었다. 자신이 받는 일들은 대부분 몸을 쓰거나 토벌하는 일이었으니까.
모험가는 팔짱을 끼고 고민에 잠겼다. 돈을 버는 법을 알려주는 건 좋은 생각일 것 같았지만, 자신이 알려주는 거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레포릿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레포릿을 잘 알고 있고, 잘 알려 줄 수 있을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맛난 걸 먹이면서 가르쳐주면 금상첨화일 것 같았다.
"......"
"모험가님?"
"아니, 아니야. 사람은 마음을 곱게 쓰는게 중요한거지. 응."
"네?"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모험가도 똑같은 사람이었으니 욕심은 있었다. 그러나 눈 앞에서 돈이 없다며 슬퍼하는 레포릿에게 달랑 돈 버는 법만 알려주고 헤어질 수 있을 정도로 매정한 사람은 될 수 없었다.
"다른 레포릿들은 라비린토스에 있어?"
"예. 아마 위리앙제와 함께 있을거예요."
마침 잘 됐다며 모험가는 웃음지었다.
"내가 알려주는 것보다 위리앙제와 이야기 하는 게 더 이야기 하기 쉽지 않을까? 라비린토스에 있는 다른 레포릿과 위리앙제와 함께 라스트 스탠드로 와주지 않을래? 라비린토스를 지나려면 호위도 필요할테니까 근처에 산크레드도 있으면 도와달라고 말해보고."
"하지만 라스트 스탠드는 돈 이란걸 받아야지 음식을 받고 자리를 쓸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건 나에게 맡기고. 위리앙제가 있는 곳까진 혼자 갈 수 있지?"
"그럼요! 그건 맡겨주세요!"
부들부들한 두 손을 움켜쥔 푸딩웨이가 팔을 살짝 위로 들었다가 가슴쪽으로 끌어 내리며 힘찬 포즈를 취해보였다. 모험가는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주었고, 그 모습을 본 푸딩웨이는 모험가를 철썩 믿고 라비린토스로 바삐 달려갔다. 작은 발이 도도도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나아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모험가는 등을 돌렸다.
"좋아, 단판 지어볼까."
돈이라면 있다. 아주 많이 있다. 그냥 이 많은 돈 중 일부를 푸딩웨이에게 주고서 마음대로 쓰게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만, 푸딩웨이는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돈을 벌고 싶단 의욕을 심어주는 데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레포릿들은 아이테리스를 알고 싶어했다. 돈은 아이테리스의 어느 곳에서도 필요하고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아이테리스의 생활을 이야기 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니 그저 무작정 주는 것 보다는 좀 더 아이테리스의 생활을 체험하는 쪽이 이해에 좋지 않을까. 모험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 돈을 벌 방도가 없다고 힘들어하면, 그때에 돈을 내어줘도 상관 없으니까.
발걸음은 가볍지만 어깨는 무거운 모험가가 라스트 스탠드에 도착했다. 익숙한 얼굴을 본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일단 모험가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라스트 스탠드를 빌리고 싶은데 얼마면 돼?"
아이테리스를 구한 영웅의 터무니 없는 소리에 라스트 스탠드의 직원 모두가 말을 잃고 말았다.
"너, 돈은 괜찮은거야?"
"괜찮지 않으면 이런 일은 안 벌였어."
라스트 스탠드에 수많은 레포릿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안에는 위리앙제가 있었고, 레포릿의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온 올드 샬레이안의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달로 가기 위해 작업을 할 때는 레포릿에게 질문을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이테리스로 온 레포릿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있었다.
돈이란 무엇인지, 주거공간은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이동수단이나 다른 여러 문화에 대한 걸 물어보고 사람들은 답해주었다. 그 대화 속엔 맛있는 음식과 음료들이 함께했다. 모두 모험가가 비용을 지불 할 것이었다.
라비린토스에 있는 레포릿들을 호위하며 올드 샬레이안으로 올라오기 위해 산크레드가 동행했고, 레포릿이 가는 곳이니 당연히 위리앙제도 함께했다. 넓은 테이블에 가득한 음식과 음료를 두고 앉아있던 모험가가 자신들을 보고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위리앙제와 산크레드가 놀란 것이 바로 좀 전의 일이었다.
"보물지도란 게 있거든. 이제 정말 끝났으니까 오랜만에 갔더니 어마어마하게 벌었어."
"과연, 소문으로 듣던 그 보물고에 갔군? 그럼 사양하지 않아도 되는거지?"
산크레드는 맥주잔을 들어보이며 웃으며 말했고, 모험가 또한 웃으면서 맥주잔을 들어올렸다. 두 맥주잔이 부딪치고, 산크레드는 맥주를 들이켰다.
날씨는 좋았고, 하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라스트 스탠드의 모든 자리를 차지 한 것은 아니라 한쪽은 일반 손님을 위해 자리를 비워두었다. 그러나 레포릿의 모습을 보고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다가오는 손님들이 많아 사실상 누가 일반 손님이고, 누가 모험가가 초대한 손님인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라스트 스탠드의 직원은 괜찮냐고 물었지만, 모험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답했다. '사람들이 레포릿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는거 보고 내가 다 계산하게 될 것 같았어.' 그렇게 말하자 라스트 스탠드의 직원은 멋있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보물고에서 번 돈은 어마어마 했지만, 이날 라스트 스탠드에서 쓴 돈 또한 타타루가 들으면 기겁할 정도로 많았다. 그렇게 통크게 막 쓰시면 안된다고 타타루가 혼낼지도 모를 금액을 썼지만, 어차피 돈은 흘러갔다 흘러들어오는 것이라 생각하는 모험가에게는 큰 걱정이 아니었다.
금단으로 전재산을 탕진할 때가 있으면, 금단한 장비 덕분에 목숨을 구할 때도 있다. 지금은 반대로 레포릿들의 아이테리스를 향한 사랑으로 목숨을 구한 셈이니,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탕진을 한다고 해도 괜찮았다.
평화로운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언젠가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잔잔한 미래가 눈 앞에 보이고 있었다. 음식을 잔뜩 주문하고, 음료도 잔뜩 주문하면서 산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레포릿의 모습을 보며 모험가는 웃고 있었다.
"좋아보이는군."
"응?"
"마치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웃고있어서."
그런 모험가를 바라보며 산크레드 또한 웃으면서 말을했다.
"그럼, 좋아. 오늘도 평화로운 것 같아서."
"지금 이 모습도 그렇고, 평화도 그렇고 결국은 네가 불러온거잖아."
"정확히는 모두가 힘을 써서 맞이한거지."
"그럼 모두가 맞이한 평화를 이렇게 즐길 수 있게 해준 영웅님께 감사하며 건배라도 할까?"
산크레드는 다시 맥주잔을 들어올렸고, 모험가도 어느새 새로 나와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맥주잔을 잡았다. 아무래도 레포릿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산크레드가 대신 주문을 한 모양이었다. 둘은 '건배' 라고 짧게 말을 하며 다시 맥주잔을 부딪쳤다.
음식은 맛있었고, 술도 음료도 맛있었다. 모두가 웃고 있었고,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었다. 비록 보물고로 얻은 돈의 대부분을 써버렸지만, 아예 하나도 안남고 다 쓰거나 사비까지 다 털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는 사실에 모험가는 만족하기로 했다.
언젠가 새벽과 함께 앉아서 식사를 했던 날도, 그리고 오늘도. 라스트 스탠드는 즐겁고 평화로웠으니까.
푸딩웨이가 등장하는 서브퀘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퀘스트 내용과 상반되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의 날조라는 것으로 눈 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도 10장 깠는데 문양이 한 번도 뜨지 않은 건 실화를 기반으로 썼습니다.
여러분들의 지도는 늘 대박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