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널 판타지 14 칠흑의 반역자 네타가 있습니다.
- 빛의 전사의 호칭은 '모험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빛의 전사의 묘사는 크게 하지 않지만, 제 캐릭터를 생각하며 쓰고 있습니다.
여성 모험가, 주 직업은 음유시인 이라는 설정으로 읽으시는 게 편하실 수 있습니다. - 여러모로 게임 내 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모험가의 메타 발언, 캐릭터들의 게임 용어 사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영웅. 그 단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을까. 그저 존재만으로, 그 이름만으로 사람들의 힘이 된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한때는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 곁에서 싸운 적도 있었고, 멀리서 싸우는 모습을 바라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와 헤어질 때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이 잠들고 있을 미래의 어느 때에도 분명 그 이름은, 그 사람은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을 거라고. 자신은 아주 오래 잠들어 있을 예정이었으니, 자신이 깨어난 날엔 그는 더이상 없겠지만. 눈을 뜨고 난 후에 그가 어떤 일을 해내고 떠났을지 그 흔적이라도 보게 될 것이 기대됐다.
눈을 뜬 세상은 잠들은 그가 상상한 미래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럼에도 그는 영웅의 이름을 너무나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가 반짝이는 눈으로 읽어내린 영웅의 이야기가 담긴 책, 수많은 사람이 반짝이는 눈과 희망으로 입에 담는 그 이름과 이야기들. 이야기는 그가 살고 있는 현재는 그야말로 희망으로 존재했다.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들과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을 영웅은 해냈다. 한번도 남이 생각하는 대로 영웅은 움직이지 않았다.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 주저앉을 것이라는 생각.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고, 기적을 손에 쥐었다. 영웅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은 조금씩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이 상황도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영웅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처럼, 포기하지 않는다면.
영웅을 살리는 계획에 동참한 이유는 다름 아닌 영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영웅은 확실히 지켰다. 그 이름은 머나먼 미래에서 눈을 뜬 자신에게 닿았다. 그 이름은 확실히 희망으로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잠에서 깨어나 그 이름을 귀에 담고, 눈에 담은 순간부터 약속을 지킨 그를 위해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엔 아주 조금의 사심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영웅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하는 그런 마음. 운이 좋다면 한번쯤은 함께 싸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바람. 그런 생각을 한 미코테 남성은 웃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자면, 영웅은 남의 생각대로 행동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매번 누군가의 계획과 생각을 깨트리는 사람이었다. 정말로 일을 제대로 진행시키려면, 이 사실도 포함해서 계획을 짰어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뒤늦게 그는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영웅은 살았고, 이름 모를 수정공도 살았다. 비록 몸상태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다시 한번 영웅의 일상을 볼 수 있게 되니 점에 같은 시간대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오늘도 영웅이라 불린 어느 모험가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느 날의 이야기. 성견의 방에는 종종 보고와 함께 사사로운 이야기가 함께 나오곤 했다. 레이크랜드에 있는 마물을 영웅이 쓰러트렸다는 이야기, 아므아랭의 마물과 싸우다 영웅이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 새벽의 혈맹과 영웅이 훈련을 위해 탑에서 발견된 알라그의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는 이야기. 가끔 산책 삼아 나오면 찾아온 페오 울이 영웅이 픽시족들을 돕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나가 같이 싸우고 싶기도 했고 영웅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음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영웅의 이야기를 이렇게라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원래는 이것조차 꿈 꿀 수 없는 일이었으니.
이내 가끔가다 들려오는 영웅의 이야기는 그의 즐거움이 되었다. 책으로 읽었던 거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충분히 가슴 뛰는 영웅의 이야기였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나름의 기대를 한 채 오늘 하루 일정을 되새기고 있는 그에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정공 실례해도 될까요?”
수정공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던 영웅, 그 본인인 모험가의 목소리였다. 성견의 방에 있는 수정공은 자연스럽게 들어와도 좋다고 답했다. 평소라면 대답이 들리자마자 활짝 열려 당당히 들어오는 모험가의 모습이 보여야 할텐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문이 살짝 열려 틈이 생겼고, 그 사이로 빼꼼히 모험가가 얼굴을 보였다. 웃음기가 가득한 것을 보면 좋은 일이 있거나, 어떤 장난기가 발동한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수정공은 웃었다.
몸으로 문을 밀며 들어온 모험가는 양손을 등 뒤에 두고 있었다. 아무래도 등 뒤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수정공은 금방 깨달았다. 오히려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티가 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모르는 척 해주기로 했다. 세계를 구한 영웅은 의외로 이런 부분에선 빈틈이 많았다.
“무슨 일이지?”
“딱히 별일은 아니고, 성견의 방을 찾은 지도 오래된 것 같아서요. 저는 연구에 참여하지도 않으니까.”
뻔히 보이는 핑계였다. 등 뒤에 숨기고 있는 무언가를 전해주려고 찾아온 것일 터였다. 그러나 수정공은 굳이 말로 꺼내진 않았다.
“연구는 우리들 몫이니 우리에게 맡겨주게. 그대는 지금까지 많은 일을 했으니 충분히 쉬어도 되고. 이야기를 듣자하니 최근에도 크리스타리움 뿐 아니라 노르브란트 전역을 돌아다니며 도움을 주고 있다는 듯 하지만.”
“아하하. 들으셨나요.”
“역시 어둠의 전사님이라며 그대의 일을 들떠서 말하는 자들도 많지만, 알리제의 말대로 쉴 땐 쉴 줄도 알아야 한다 생각하네. 며칠 전의 일도 있지 않았나.”
“아하하……. 그것도 들으셨구나. 아므아랭 일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보기 드문 반성하는 모습에 수정공은 약간 힘 빠진 웃음을 지었다. 지금이야 저렇게 말하겠지만, 고개 돌리면 곧장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뛰쳐나갈 것을 뻔히 알았다. 그게 수정공이 아는 영웅이었다. 그래도 반성한다 스스로 말을 꺼냈으니, 적어도 그때처럼 피투성이인 상태로 크리스타리움에 오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수정공은 내심 안심했다. 그 모습이 순간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그리고 사실, 뭐 드릴까 싶어서 찾아왔어요.”
모험가는 답지않게 주뼛주뼛 상황을 살펴보더니, 곧 등 뒤에 숨기고 있는 것을 앞으로 꺼냈다.
“별거 아닌데, 수정공은 항상 크리스타리움에 있으니까 가지고 왔어요. 페오가 챙겨주는 일은 없을 것 같았고.”
등 뒤에 숨기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꽃이었다. 색색이 예쁜 꽃들이 조화롭게 한 다발로 어울리고 있었다. 원예가의 재능도 뛰어나다곤 들은 적이 있었다. 설마 스스로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일까.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올려 시선을 꽃이 아닌 모험가의 얼굴로 옮기니, 머쓱한 표정의 모험가가 수정공을 보지 못하고 옆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 메그 꽃이 정말로 예쁘더라구요. 리예 메그 일을 좀 많이 도와줬더니 픽시들이 꽃 고르는 걸 도와줬어요. 모처럼이니 수정공에게 드릴까? 생각이 들어 린하고 같이 꽃다발을 만들어봤어요.”
“그러고보니 린하고 종종 리다 란을 향하는 것 같더군. 산크레드가 가끔 찾곤 했었지.”
“간다고는 미리 말 했던 것 같은데.”
수정공은 모험가가 손에 든 꽃다발을 손으로 조심스레 건네받았다.
“그대가 준 선물이니 소중히 간직하겠네.”
꽃을 고를 때 픽시족이 장난을 친 것인지 꽃다발에서 약간 단내가 나는 듯 했다. 무슨 의도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 외에 다른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꽃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었지만, 꽃을 들고 자신에게 오는 이는 영웅이었다. 요정왕 페오 울의 어린나무에게 무슨 짓을 할 용기는 없었겠지 싶어 수정공은 마음을 놓고 꽃다발을 얼굴 근처로 가져갔다. 확실한 단내가 풍겼지만, 나쁘진 않았다.
“괜찮아요. 어차피 꺾은 꽃이라 오래는 못갈테고, 만약 시든다면 다시 갖고 오면 되겠죠. 그 핑계로 수정공 얼굴 한번 더 보는거구요.”
모험가의 말을 듣고 수정공이 꽃다발을 내리고 시선을 들자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모험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자신이 기억하는 아득한 먼 옛날의 모습 그대로라 수정공은 무심코 예전처럼 따라 웃어버렸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모험가는 수정공을 가리키며 그라하 웃음 이라며 작게 소리내 웃었다. 이상한 곳에서 빈틈이 있는 이 사람은, 이렇게 수많은 전투 경험으로 늘어난 눈썰미를 이런 곳에 사용하곤 했다. 크흠. 헛기침 한번에 모험가가 찾았던 그라하 웃음은 사라지고 수정공이 돌아왔다.
“아. 에이, 안그래도 되는데.”
“뭘 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살짝 삐죽하게 입을 내밀고, 말투가 퉁명한 것을 보아하니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수정공은 알 수 있었으나 모른 척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만약 받아줬다가는 또다시 옛일로 놀림당하는 신세가 될 수 있었다. 이미 전적이 있었으니 아무리 영웅의 바람이라 해도 전부다 들어줄 순 없었다.
“그래, 바쁘게 지내는 듯하지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야.”
자연스레 이야기를 돌렸다. 꽃다발은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 채였다. 일단 꽃다발을 바로 어딘가에 정리해두지 않고, 들고 있어주는 게 그나마 마음에 찼는지 모험가는 금방 수정공의 말에 표정이 밝게 변했다.
“그럼요! 레이크랜드에 온천 있는 거 수정공도 가세요? 거기서 쉬기도 했고 많이 놀러다니고 있어요.”
“그래. 템페스트를 자주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다행이야.”
수정공의 말을 들은 모험가가 신나서 이야기하던 몸을 멈추었다. 싱글벙글 웃고있던 얼굴이 약간 놀란 듯 동그랗게 큰 눈을 하더니 곧 약간 표정이 굳어졌다.
“그, 그런 이야기까지 수정공이 들으세요? 아니, 알피노가 말했나요?”
수정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표정도 담담한 그대로였다. 모험가는 혼자 턱을 괴고 고개를 푹 숙이더니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기 시작했다. 글서 야슈톨라도 알고 있었던건가.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를 듣자하니 알고 있는게 수정공뿐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피노가 억울한 추궁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일단 수정공은 조용히 모험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가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
“온도족! 온도족도 있잖아요! 물 다 빼내고 민폐를 끼쳤으니 도와줘야죠. 그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
“……그렇죠.”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모험가는 애꿎은 성견의 방의 바닥을 발로 툭툭 차면서 생각했다. 그러면서 슬쩍슬쩍 수정공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꽃다발 선물엔 선물을 주고싶다는 흑심 말고의 다른 마음도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수정공은 언제쯤 함께해주실건데요?”
“나 말인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수정공은 드물게 놀라는 목소리를 꺼냈다.
“네, 수정공이라도 좋고. 그라하여도 좋아요.”
“전에도 말했지만, 딱히 연기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저도 연기라고 생각하고 따로 부른 건 아니예요. 그저 위치의 차이로 부른 것 뿐이죠. 크리스타리움의 수장인 수정공의 위치로 함께 보내 줄건지, 아니면 그라하 티아의 위치인지. 그런 느낌으로요. 제가 이슈가르드의 맹우이지만, 에오르제아의 영웅이기도 하고, 모험가 길드에선 단순한 모험가인 것처럼요.”
“이젠 모험가 길드에서도 그대를 영웅이라 부를 것 같은데.”
수정공의 말에 모험가는 잠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래도 모험가 길드에서 일을 받을 땐 일개 모험가죠. 그래서, 함께 해주실 생각은 없다?”
잠시 수정공은 숨을 삼켰다. 자신의 영웅이 꺼내는 말은 자신에게 상당히 달콤한 것이었다. 그의 곁에, 그의 일상을 바로 곁에서 바라보는 일을 자신만큼 바란 사람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탈로스를 만들기 위해 생긴 짧은 기회가 자신의 최대이자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영웅은 그 기회를 마지막으로 만들지 않아주었다. 자신에겐 아직 미래가 있고, 더 지켜볼 시간이 생겼다. 또 다른 기회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영웅 본인이 건네주고 있었다.
“이런 노인과 함께 한다고 즐거운 일은 없을거야. 다른 일행들과 함께 다니는 게 더 낫겠지.”
그러나 그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의 고집일지 몰라도, 영웅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가 좋고 나은지를 물은 것도 아니고 상관없어요. 내가 모두와 함께 지내고 싶은 것이고, 그 모두엔 수정공이 포함되는 거 뿐이니까요. 아, 저번에는 라이나하고도 같이 보냈어요. 물론 여러 가지 도와주는 형태였지만…….”
그 마을 시작으로 모험가는 수정공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마물을 잡았던 것, 갖고 싶은 것이 있어서 임무를 계속 반복했던 일. 온천을 간 일과 일 메그의 픽시들을 도와주어 꿈의 전사가 되어 본 일까지. 그 이야기들은 책에 적힐만큼 거대한 사건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도움을 받고, 모험가는 도움을 준 아주 짧은 일상 속의 모험같은 이야기였다.
수정공이 몇 번이고 영웅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었어도 알 수가 없었던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래. 라이나를 도와줘서 고맙군. 그 외에도 크리스타리움의 사람들도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
“고맙다는 소리를 듣자고 말한 거 아니에요.”
흔들림 없이 모험가의 눈이 수정공을 향한다.
“그래서 수정공은 함께 하지 않을건가요?”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마음으로 모험가는 자신의 진심을 다시 한번 수정공에게 털어놓았다. 건네받은 꽃다발을 잡은 수정공의 손에 수정공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 아니, 절대로 꺼내선 안된다고 했던 그 말이.
“……나로도 괜찮겠나?”
다른 언어를 빌려서 겨우 흘러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험가는 세상에서 가장 밝고 눈부신 미소를 보여주었다.
“뭐가 좋아요? 온천도 좋고, 레이크랜드를 돌아보는 것도 좋고. 다른 지역도 좋겠네요! 아, 크리스타리움에서 너무 멀어지면 수정공이 힘들죠. 오래, 오래 있지 않으면 괜찮은건가요? 라케티카는 가봤어요? 거기 나무들 진짜 커서 있으면 신비하고 기분이 좋아요. 일 메그 꽃구경도 좋겠고, 꽃다발로 만든 것 말고 다른 꽃들도 잔뜩 보러가요. 수정공이 괜찮다면 리예 메그도 한번 가볼래요? 꿈의 나라로 초대하겠습니다~”
신이 나서 말을 쏟아내는 모험가의 모습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어린아이처럼 들떠보였다. 저렇게 좋을까. 문득 수정공은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게 그렇게 좋을 일일까.
“이곳에서 오래 산 건 내쪽인데, 그대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아는 것 같군.”
“괜히 모험가가 아니니까요.”
당당히 말을 하는 모험가를 보고 수정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뭘 할까요?”
신이 난 목소리가 수정공에게 질문해왔다. 그래, 무슨 일을 할까. 어디로 갈까. 영웅과 함께라면 마물을 잡아도 좋을테고, 그저 풍경 구경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분명 영웅의 일이니 그냥 놀러가도 무슨 사건에 휘말릴 게 분명했다. 언제나 의뢰나 사건에 휘말리는 사람이니.
“그래. 그럼 어디를 가볼까. 그대와 함깨라면 어디든, 무엇이든 좋아.”
“저도 당신과 함깨라면 어디든, 무엇이든 좋아요.”
웃으면서 내뱉은 진심에 모험가 또한 진심으로 답을 해주었다.
모험가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수정공이 잡아주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곧 내민 손으로 덥썩 수정공의 손을 잡았다. 한 손에는 지팡이, 한 손에는 모험가가 준 꽃다발을 든 채 자유롭지 않은 손을 덥썩 잡힌 수정공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자신의 손을 잡고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손을 당기는 모험가를 보고, 어린시절 라이나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보채지 않아도 괜찮아. 어디 가지 않으니까.”
옛 생각이 떠오른 탓인지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 듯 무척 다정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 목소리는 정말 다정하고 상냥해서 모험가는 속으로 정말 어르신 같다고 생각했지만, 말로 꺼내진 않았다. 괜히 그의 입에서 자신은 노인이 맞다는 말이 나올만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노인이고 청년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더라도 그는 그고 그의 마음이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그 날 수정공은 아주 오랜만에 성견의 방에서 나왔다. 크리스타리움의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온 수정공을 보고 즐거워했지만, 아무도 말을 걸진 않았다. 수정공의 손을 잡고 앞서나가는 모험가의 모습과 그런 모험가에게 끌려가는 듯 따라가는 수정공의 모습은 누가봐도 신나고 즐거워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도 방해 할 수 없었다. 모두 수정공을 좋아했고, 모두 수정공이 행복하길 바랐다.
어쩌면 흔하다 말 할 수 없는, 어쩌면 흔해질 수도 있는 영웅이라 불린 어느 모험가의 일상.
그 일상은 이렇게 시작되고 끝이 나고 이어져갔다. 그 삶이 끝날 그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