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널 판타지 14 칠흑의 반역자 네타가 있습니다.
- 빛의 전사의 호칭은 '모험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빛의 전사의 묘사는 크게 하지 않지만, 제 캐릭터를 생각하며 쓰고 있습니다.
여성 모험가, 주 직업은 음유시인이라는 설정으로 읽으시는 게 편하실 수 있습니다. - 여러모로 게임 내 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모험가의 메타 발언, 캐릭터들의 게임 용어 사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2022.05.27 포스타입에 업로드 했던 글)
영웅이라 불린 모험가는 종종 듣는다. 어떻게 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는지. 어떻게 해서 영웅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모험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열심히 답을 해주었다. 몇몇 사람들은 나름 납득가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 사람들은 그래도 알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기울이곤 했다. 질문을 들었으니 대답을 해주려 했지만, 모험가조차 질문의 답을 알지 못했다. 그 상태로 답을 해주려니 늘 찝찝한 기분만 들었다.
누군가는 생각했다. 모두가 바라보고 존경하는 영웅은 늘 어떤 일에 앞장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기록되는 영웅의 일대기도 그런 이야기들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결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기록되지 않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영웅을 강하게 만들고 단단하게 만든 끝에 앞장서 있을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오늘도 그렇게 영웅이라 불린 모험가가 보내는 큰일을 앞에 두고 힘이 되어줄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의 이야기. 모험가는 레이크랜드로 향했다. 수배마물을 그곳에서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갑작스레 마물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어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일을 마무리한 후에 온천에도 들릴 생각이었다. 요 며칠 여러 의뢰를 하면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일이 많았다.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새벽이나 수정공이 들으면 좋은 생각이라고 반가워하겠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자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리스타리움으로 나가는 길에 우연히 위리앙제와 만나게 되었다. 목적지를 묻는 그에게 이야기를 해주자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좋은 생각이라고 의견을 표했다. 모험가 스스로는 딱히 무리를 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이걸 입 밖으로 꺼냈다가 휘몰아칠 후폭풍이 두려웠으므로 굳이 꺼내지 않고 입안에 머금었다.
모처럼 만났으니 위리앙제는 마물을 잡으러 가는 모험가를 돕겠다며 동행하기로 했다. 연구로 지치고 바쁘지 않냐는 질문에 이 정도의 시간은 있다며 답하는 위리앙제는 어쩐지 조금 기뻐 보였다.
크리스타리움 밖으로 나오자 위병단이 인사를 해주었다. 수배마물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목격정보를 모험가에게 알려주었다. 래크산 성 위쪽 부근에 수배마물로 보이는 강력한 마물을 목격했다는 정보가 있다는 소리에 모험가와 위리앙제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나마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틀린 정보는 아니었는지, 모험가가 수배서에 봤던 그림과 똑같이 생긴 마물을 찾아내었다.
“위리앙제는 멀리 떨어져 있어. 마물 공격은 범위가 넓으니까, 휘말리면 큰일 나.”
“귀중한 조언 절대 흘리지 않고 담아두고 있겠습니다.”
“가끔 여유 있으면 회복해주면 좋고.”
힐러인 만큼 회복에 힘써야 하는 건 당연할 텐데, 모험가는 마치 덤인 마냥 이야기했다. 그 말이 자신이 믿음직스럽지 않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란 걸 알았지만, 어째서 굳이 모험가가 말을 꺼냈는지는 위리앙제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천구의를 꺼내 들고 가능한 한 자신의 능력을 써서 모험가를 서포트 할 생각이었다.
모험가와 위리앙제를 돕기 위해 순찰 중이던 병사가 모험가를 따라 마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싸우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서 위리앙제는 뒤늦게 깨달았다. 굳이 모험가가 범위가 넓다는 이야기를 한 이유를. 여유가 있으면 회복해주면 좋다고 말한 의미를. 좀 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마물을 잡는데 집중하던 모험가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마물이 쏜 직선 방향 공격에 직격한 위리앙제는 어느새 스스로를 치료하고 있었다. 맞고 한방에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모험가는 마물을 바라보았다. 빨리 잡는 것이 위리앙제를 위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활시위를 당기는 모험가의 팔엔 여느 때보다 힘이 더 들어가 있었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마물이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 마물의 잔해를 확인하고자 병사들이 다가가고 있을 때, 모험가는 몸을 돌려 위리앙제에게 달려갔다. 모험가가 본 이후에도 몇 번 공격에 휘말린 것 같았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거나 쓰러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괜찮아?”
“예, 값진 조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아니, 내가 좀 더 잘 말해줬어야 했는데. 마물 빨리 잡으면 되겠지 싶어서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잠깐만 기다려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던 모험가는 반짝이는 돌멩이를 하나 손에 들고는 집중했다. 에테르의 흐름이 약간 변한 것을 위리앙제도 느낄 수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냥 돌멩이가 아니었다. 학자의 소울 크리스탈이었다.
모험가는 요정을 꺼내 열심히 위리앙제를 치료해주었다. 자신 혼자서도 충분했는데, 힐러의 소울 크리스탈까지 꺼내 치료하는 모습이 보이자 위리앙제는 더 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괜히 잘 있는 사람 불러내서 다치게 한 것 같아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당신과 동행하겠다 의사를 표한 것은 저였으니, 이 또한 제가 책임져야 할 일. 신경 쓰실 사항은 아닙니다.”
“몸은? 이젠 괜찮아?”
“예, 덕분에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위리앙제를 바라보는 모험가는 안심한 표정으로 살짝 미소짓고 있었다.
“학자도, 가능하셨군요.”
모험가가 다른 직업을 하는 것은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저번에는 모험록이란 것을 샀다며, 소환사가 되어 같이 전투한 적도 있었다. 산크레드 앞에선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말을 꺼낸 탱커를 어느새 배워와 호흡을 맞춰본 적도 있었다. 산크레드와 같은 건브레이커였지만, 버릇이 달라 세세한 조정은 다르게 해야 했다. 그래도 호흡을 맞추는 것이 어렵진 않은 기억이 있다.
탱커를 배워온 것이 놀라울 정도로 모험가는 늘 공격 직군만 했다. 보통은 음유시인이었고, 종종 다른 공격 직군의 무기를 들어서 싸웠다. 그래서 힐러의 모습을 한 모험가가 너무나도 낯설었다.
“알피노에겐 비밀이야. 괜히 신경 쓸 수도 있으니까.”
어느새 학자의 소울 크리스탈을 집어넣고, 평소의 음유시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모험가가 보였다. 모험가의 성격상 새로 배웠거나, 익힌 직업은 자랑하고 싶을 텐데 동료인 알피노를 신경 쓰는 다정한 모습이 너무나도 모험가다워 위리앙제는 웃었다.
“알겠습니다.”
“게다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라서. 힐러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알피노와 위리앙제가 대단해. 고맙고.”
“당신의 도움이 될 수 있다니 무엇보다 기쁜 일입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수배마물을 정리한 병사들이 다른 곳에서 무리를 이뤄 피해를 주던 마물들도 다른 병사들이 처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달해왔다. 모험가가 레이크랜드에 와서 하려던 일들은 대부분 정리가 되었단 소리였다. 모험가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을 하며 위리앙제에게 온천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위리앙제는 사양했지만, 고생한 몸을 풀어주는 것까지가 전투의 마무리라며 거의 억지로 위리앙제를 데리고 온천을 향했다. 그러면 평소에 모험가도 그렇게 행동하기를 바란다는 위리앙제의 말을 흘려들으면서.
위리앙제는 레이크랜드에 온천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찾아가 본 적은 없다고 말을 꺼냈다. 모험가도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니지만, 의뢰를 받아서 지나칠 때는 쉬고 간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니 자기도 쉴 때는 잘 쉰다며 걱정하지 말라며 위리앙제의 팔을 툭툭 쳤다.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오지 않은 위리앙제에게 모험가는 자신이 갖고있는 옷을 꺼내주었다. 위리앙제는 엘레젠이었다. 모험가가 입는 옷이라면 맞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에 자신이 입는 옷이 아니니 괜찮다며 손에 쥐여주었다. 옷은 다행히 모험가가 말한 대로 위리앙제의 몸에 맞았다.
온천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모처럼 한가한 때 잘 오셨다면서 온천 주인은 꽤나 익숙한 모습으로 모험가를 맞이해주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모험가는 보기 힘든 풀린 얼굴을 보여주었다.
“저를 신경 쓰시느라 마물 무리를 도우러 가지 못하게 되셨군요. 계획을 망가트리고만 듯하여 송구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병사들로만 처리할 수 있는 일이면 굳이 내가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시간상 위리앙제를 치료하지 않았어도, 이미 끝나있었을 거야. 사실 어제까진 바빴어도 오늘은 할 일이 없었거든. 그래서 뭐라도 할까 하다가 이야기 들어서 마물 잡으러 나온 거라.”
“……분명 이전에 알리제 아가씨께서.”
“아, 알리제에겐 비밀.”
무언가 생각하는 듯 오른손으로 턱을 만지는 위리앙제를 보며, 모험가는 빨리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이전의 일을 위리앙제는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알리제가 화내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위리앙제는 살짝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오늘 당장은 말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언제까지고 입을 다물고 있을 사항은 아닌 것 같다고 위리앙제는 판단했다. 모험가는 그런 위리앙제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온천 깊숙이 몸을 담그며 빛이 사라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실 나 아직 위리앙제에게 맺힌 거 많다?”
천천히 느긋하게 모험가는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엔 원망이 담겨있지 않았다. 담담하게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꺼내는 이야기에 위리앙제는 조용히 모험가의 말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아~주 많다?”
모험가가 고개를 살짝 돌려 위리앙제를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호를 그리는 눈매에 살며시 올라가 있는 입꼬리는 꺼낸 이야기와는 정반대인 너무나도 다정한 웃음이었다. 위리앙제도 자신은 그럴만한 행동을 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어떤 벌이든 받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나 모험가는 벌을 주지 않았다. 그 미소는 그런 웃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숨기지 않겠다고, 명심하겠다고 말했으니까 봐주는 거야. 그러니까 같은 일은 다신 하면 안 돼.”
“……네.”
“위리앙제를 위해서도.”
이후 특별한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요새 연구는 어떤지, 주변 사람들하곤 잘 지내고 있는지 그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아까 싸운 마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혹시 다시 마주치게 되면 어떤 점을 주의하면 좋을지 마물과 자주 싸우는 모험가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것이 모험가 나름의 배려라는 것을 위리앙제는 알고 있었다. 혹시 아직도 신경 쓰고 있을지도 모를 자신을 위해서 이야기를 꺼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이야기를 이어가면서 모험가가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자신을 향한 모험가 나름의 배려라는 사실도 위리앙제는 알 수 있었다. 모험가는 자신을 약간 어려워했으니, 에둘러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사이가 되고, 자신도 성장했다는 걸.
온천을 나오고 위리앙제는 크리스타리움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모험가는 다른 지역을 가보겠다고 했다. 같이 행동을 하는 건 오늘은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만약, 점성술사를 하게 되신다면 미력하게나마 조력할 테니 찾아와주십시오. 힐러는 하지 않으신다 하셨지만, 잘 어울리신다 생각합니다.”
헤어지기 전 위리앙제가 꺼낸 예상 밖의 말에 모험가는 소리내어 웃었다.
“마음이 내키면.”
그런 가벼운 말을 남기고 모험가는 초코보를 타고 날아올라 점점 멀어졌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위리앙제는 잠시 서서 지켜보다가 몸을 돌려 크리스타리움으로 향했다. 자신의 진심이 담긴 말이란 걸 모험가가 알아챘는지, 모르고 떠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모험가가 웃는 소리를 들은 걸 떠올리자 그런 건 아무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어느 날의 이야기. 정말로 뜬금없는 일이었다. 뜬금없는 일이었지만, 모험가는 개구리 의상이 갖고 싶어졌다. 리다 란에서 픽시들의 부탁을 듣다 만난 개구리를 본 게 영향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원래는 딱히 갖고 싶은 의상은 아니었다. 인형 탈 같은 건 보는 사람만 우스꽝스럽지 입는 사람은 불편하고 덥고 답답할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도 벌써 며칠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마침 할 일이 없었던 모험가는 개구리 의상을 얻는 방법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템페스트에 도착하게 되었다.
개구리 의상을 얻기 위해 모아야 하는 물품이 있었고, 그 물품을 얻으려면 템페스트에 있는 특정한 마물을 잡아야 했다. 이야기를 모아보니 한참 오래전에 그 마물이 나타났다는 것 같으니, 모험가의 예상으론 조만간 다시 나타날 것 같았다. 이곳에서 처리해야 할 의뢰도 있으니 겸사겸사 의뢰를 처리하며 모험가는 마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것 또한 며칠 된 이야기였다.
거의 며칠 내내 특정 마물을 조사하는 온도족을 조사하고, 목표로 하는 마물이 나타나는데 방해되는 마물 무리를 처리하며 지냈다. 그 사이사이의 잠깐 비는 틈에만 휴식을 취하고, 또 방해될 법한 마물이 나타나면 처리하고, 온도족을 도왔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자 모험가는 누가 봐도 피로한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도움을 주고받는 온도족마저 모험가를 보고 돌아가 쉬라는 소리를 꺼낼 정도였다. 그러나 그 잠깐 쉬는 사이에 목표인 마물이 나타날 것 같아 불안해 모험가는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온도족의 강한 주장과 마침 크리스타리움에 볼일이 떠올라 모험가는 어쩔 수 없이 템페스트를 벗어나야 했다.
크리스타리움의 볼일을 금방 끝내고 템페스트로 빨리 돌아가야지. 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모험가의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익숙한 붉은 옷의 여성, 알리제였다. 누가 봐도 퀭한 두 눈에 안 좋은 낯빛. 어디 크게 아픈 사람처럼 보일 정도의 모험가를 보고는 매우 놀란 알리제가 서둘러 달려온 것이었다.
“당신, 얼굴이 왜 그래?!”
“아, 알리제 안녕~ 그렇게 이상해?”
“엄청 초췌하잖아. 요새 쉬고는 있어?”
“해야 할 게 좀 있어서, 그걸 하다 보니까. 어쩐지 크리스타리움 돌아다니는데 쳐다보는 사람들이 다 놀란 표정이더라…….”
오른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며 태연스럽게 말하는 모험가를 바라보며 알리제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뭐한 거야. 어서 펜던트 거주관에서 좀 쉬어!”
“할 게 아직 안 끝났어…….”
“지금은 쉬는 게 우선이야!”
알리제는 모험가의 팔을 붙잡고 펜던트 거주관으로 잡아끌었다. 초췌한 모습과 달리 아직 힘은 남아있는지, 모험가는 쉽게 알리제에게 끌려가 주지 않았다. 진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을 하는 모험가의 말과 어쨌든 쉬어야 한다는 알리제의 말이 반복해서 들렸다.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하는 두 사람 사이에 누군가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어둠의 전사님 계셨군요!”
병사였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두 사람은 말을 멈추고 병사를 바라보았다. 가쁜 숨과 투구를 쓰고 있음에도 보이는 땀에 젖은 모습에 중요한 일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저, 아므아랭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흉포한 마물이 나타나서 물건을 조달하러 왔다가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습격한 모양입니다. 몇몇 현상금 사냥꾼들이 토벌하려고 달려간 모양인데 이미 다친 사람도 많이 생겨서 사람 손이 필…….”
“지금 당장 갈게요.”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모험가는 무기를 챙기고 뛰쳐나갔다. 병사의 얼굴은 밝아졌지만, 알리제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모험가의 뒤를 따랐다. 모험가가 쉬어줬으면 했지만, 지금은 급한 상황이었다. 가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 일이 끝나면 억지로라도 끌고 와야겠다는 다짐하고 서둘러 아므아랭으로 향했다.
“나도 같이 갈게.”
“고마워. 알리제가 같이 가준다면 든든하지!”
말이라도 못하면. 그런 생각을 하며 달려가는 알리제와 잠시 피곤한 것도 잊은 모험가는 아므아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현상금 사냥꾼에게 이야기를 듣고 마물이 나타난 장소로 향했다. 도착한 장소는 무척 소란스러웠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사람들과 마물을 보고 당황한 사람들의 목소리 등 여러 소리가 뒤섞이며 시끄러웠다. 그중에는 어둠의 전사인 모험가를 알아보고 안심하는 사람과 알리제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커다란 크기를 한 마물을 보고 모험가는 망설임 없이 활을 꺼내 들고 화살을 겨누었다. 일단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자 사람들 무리로 달려간 알리제가 큰 소리로 모험가에게 소리쳤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괜찮아! 충분히 잡을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흉포한 마물이겠지만, 모험가는 충분히 잡을만한 상대였다. 단지 그 기준은 모험가의 몸 상태가 평소와 똑같은 컨디션일 때, 혹은 괜찮은 상태일 때였다.
활을 들어 화살을 당기고 쏘아 공격한다. 바람화살과 독화살을 바르고 연주를 한다. 매번 싸워서 익숙해진 활과 연주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마물을 공격했다. 알리제가 바라본 그 모습은 평소와 비슷했지만, 묘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평소보다 움직임이나 반응 속도가 느렸다. 제 1세계로 와서 많은 전투를 모험가와 함께한 알리제는 알 수 있었다.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역시 그동안 쌓인 피로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얼굴이 초췌해 보일 정도의 피로가 쌓였는데 당연히 행동에 영향을 끼칠만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일은 터지고 말았다.
모험가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니 실수를 할 때가 있었다. 공격을 피하려다 아슬아슬하게 피하지 못해 스치듯 맞기도 하고, 뒤늦게 공격을 파악하고 피하려다 맞은 적도 있었다. 그래봤자 알리제가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실수와 부상이었다. 그러나 공격 한가운데로 달려들어 간 적은 없었다.
공격하다가 피로로 시야가 좁아진 탓에 마물의 공격을 잘 못 읽은 모험가는 그만 공격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하는 범위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가게 되었다. 잘 못 파악했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마물은 몸을 크게 휘두르며 공격을 했고, 그 범위 한가운데에 있던 모험가는 그대로 공격을 맞고 하늘로 붕 떠오르더니 한참 떨어진 곳에 나동그라지며 떨어졌다. 퍽 하는 소리가 멀리 떨어진 일반 사람들의 귀에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모험가!”
놀란 알리제가 버케알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가장 많이 당황한 것은 공격에 날아가 바닥을 뒹굴고 있는 모험가 본인이었다. 분명 이쪽이 맞다고 판단하여 움직였는데 어째서 잘못 한 걸까. 왜 정신 차리고 보니 마물의 팔이 보이고 하늘이 뒤집혔을까.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려져 하늘을 바라보는 시야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비릿한 피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마물에게 맞아 어딘가 찢어졌는지, 아니면 바닥을 뒹굴다 돌 같은 거에 박기라도 한 것인지 부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여튼 제대로 한 방 맞은 바람에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알리제의 버케알을 받고 모험가는 다행히 금방 일어설 수 있었지만, 몸은 비틀거렸다. 시야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 같았다. 지금 한 방을 맞고 지금까지 잊고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찾아온 느낌이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하지만 마물은 아직 살아있었다. 당장 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얻어맞은 여파인지 미세하게 떨리는 손에 힘을 주었다. 심호흡 한 번. 그리고 다시 활을 고쳐 들고 고개를 들어 마물을 바라보았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모험가는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시선은 어느새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감도는 분위기도 살짝 변한 느낌이 들었다. 같이 전투를 할 때 이름있는 상대를 싸울 때 모험가의 모습에 가까워져, 알리제는 모험가의 서포트에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다시 시작한 전투에서 모험가는 여전히 움직임과 반응 속도는 느렸고, 자잘한 실수가 있었다. 그래도 강한 공격을 얻어맞진 않았다. 내단이나 포션을 먹어서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자잘한 피해였고, 그게 아니라도 알리제의 버케알 한 번으로 피해는 없던 일이 되었다. 모험가가 힘껏 잡아당겨 쏘아낸 정점의 화살을 마지막으로 생각보다 애먹은 마물은 바닥에 쓰려졌다.
모험가와 알리제의 뒤에서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모험가는 바닥에 털썩 쓰러져 누웠다. 놀란 알리제가 서둘러 달려갔다.
“괜찮아?!”
“알리제…….”
힘없는 목소리로 모험가가 알리제의 이름을 불렀다.
“……지쳤어,”
피로로 반쯤 감긴 눈으로 알리제를 바라보며 모험가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알리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후 모험가는 눈을 감았다. 편안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상체와 불러도 반응이 없는 모습에 마지막 말까지 합하니 어렵지 않게 잠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모험가의 주머니에서 초코보 호루라기를 찾아낸 알리제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리 멀리 있지 않았는지 초코보는 금방 두 사람의 곁으로 날아왔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알리제는 모험가를 초코보 등 뒤에 태우고는 크리스타리움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알아들었는지 꾸엑~ 소리를 크게 낸 초코보는 다시 한번 크게 날갯짓을 해서 날아오른 후 크리스타리움 방향으로 날아갔다.
알리제는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더 피해가 없는지, 피해입은 사람들의 치료는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팬던트 거주관의 자신의 방으로 왔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모험가가 눈을 떴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니 익숙한 자신의 방, 펜던트 거주관의 방이라서 잠시 놀라곤 기지개를 켰다. 오랜만에 푹 잔 덕인지 몸이 평소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다시 가벼운 몸으로 마물을 잡으러 갈 수 있을 것 같아 모험가의 기분이 약간 들떴다.
몸단장하고 템페스트를 향하려고 방에서 나왔을 때, 마침 펜던트 거주관으로 들어오고 있는 알리제와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순간 은신을 써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미 알리제는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마침 잘 됐어.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거든.”
“알, 알리제. 미안, 내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지금 내가 할 말을 듣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을 거 같은데?”
“넵…….”
모험가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혼자가 아닌 알리제와 함께. 그리고 기나긴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히는 일방적으로 알리제가 말하고 모험가가 그 말에 변명하는 형식이었지만, 이것도 대화라면 대화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주 된 내용은 더 이상 무리일 정도로 일을 하는 건 금지라는 이야기였다. 일이 없을 때는 일을 만들지 말고 쉴 것. 피로가 쌓이면 쉴 것. 쉴 땐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제대로 쉴 것. 등등 대부분 모험가의 휴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험가는 그 말에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 흔하디 흔한 영웅이라 불린 어느 모험가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