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널 판타지 14 칠흑의 반역자 메인 네타가 있습니다.
- 빛의 전사의 호칭은 '모험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빛의 전사의 묘사는 크게 하지 않지만, 제 캐릭터를 생각하며 쓰고 있습니다.
여성 모험가, 주 직업은 음유시인 이라는 설정이라 생각하며 읽는 게 편하실 수 있습니다. - 여러모로 게임 내 설정과 맞지 않는 부분, 날조 된 부분이 있습니다.
- 대죄식자 IF 이야기라 불쾌하실 수 있습니다.
- 이전 이야기와 이어지는 ver.A 엔딩 이야기입니다.
ver.B와 이어지지 않습니다.
(2021.11.28 포스타입에 업로드 했던 글)
하늘에 빛이 되돌아온지 꽤 시간이 흘렀다. 며칠이 지나자 모든 사람들이 어둠이 생겼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빛으로 가득한 하늘에 익숙하게 행동했다. 어둠이 돌아오고 지낸 시간보다, 빛으로 가득한 시간이 훨씬 길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최후의 대죄식자가 홀민스터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 공표되고 나서 생활에 변화가 생긴 건 없었다. 그저 홀민스터 근처로 가는 길이 봉쇄되었을 뿐, 죄식자들이 모여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가끔 떠돌이 죄식자가 오긴 했지만, 대죄식자가 불러들인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공표되고 나서 가장 바빠진 것은 새벽의 혈맹과 수정공이었다. 수정공은 대죄식자의 위치를 알리고 나서 그 사실을 새벽의 혈맹에게 알렸다. 그 후 다같이 홀민스터를 찾아가 대죄식자를 보았다. 그 모두가 대죄식자를 보고 한 때 모험가였던 것이라고 인정했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사람, 눈물을 흘리는 사람 등 여러 반응이 있었다.
모험가가 대죄식자가 되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그들은 다시 각지에 흩여졌다. 대죄식자를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대죄식자는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자리에 앉아서 자신을 찾아온 자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린은 종종 산크레드와 함께 대죄식자를 찾아갔다. 빛의 무녀인 자신의 힘이라면 어느정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고, 산크레드는 린이 원한다면 원하는 만큼 대죄식자를 만나게 해줄 생각이었다. 첫번째로 위협이 되지 않았고, 두번째로 린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했으면 했으며, 세번째로 스스로도 대죄식자를 보러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대죄식자의 상태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새벽과 수정공이 아무리 찾아헤매도 방법은 나타나지 않았다. 언제나 갑자기 나타나서 멋대로 함께하고, 멋대로 사라지는 그 아씨엔이라도 나타났으면 하고 바라기도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마치 어딘가로 떠나버린 마냥. 그곳에서 조용히 제 1세계의 마지막을 지켜보기라도 할 것처럼 그 어디에서도 아씨엔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날이 갈 수록 수정공의 모습은 초췌해졌다. 크리스타리움의 주민들은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항상 크리스타리움에 얼굴을 비치던 사람이 한명 사라졌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자주 성견의 방을 찾고는 했었다. 그 일행도 굉장히 바빠보이니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예전엔 남몰래 그 모험가와 일행을 어둠의 전사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어떤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어둠의 전사는 결국 빛에 져버린거라고. 홀민스터의 대죄식자가 그 사람일 것이라고. 병사들 사이에서 시작된 그 이야기는 라이나에 의해 제지되곤 했지만, 어느새 수정공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확하여 아픈 이야기였다. 그 사람은 이곳에서도 희망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걸 망쳐버린 것이 자신이었다. 타들어가는 속과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는 방법에 정신은 이미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시간이 깊어 밤이 되어도 여전히 밝은 하늘. 그 아래에 모처럼 수정공이 크리스타리움 밖을 향했다. 목적지는 홀민스터. 대죄식자가 있는 그곳이었다. 호위는 없었다. 그곳을 찾아갈 수 있는건 수정공과 수정공이 허락한 자들 뿐이었으니 그 누구도 따라 들어갈 수 없었다.
익숙해진 길의 끝에 다다르면 어느새 눈에 익은 새하얀 대죄식자가 보인다. 빛나는 하늘이 대죄식자의 등 뒤에 보였다. 나는 하늘에서 이어지는 듯 보이는 새하얀 몸.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온 세상이 자신의 것인마냥 등에 지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 탓인지 저 빛들을 전부다 지고 있기엔 대죄식자의 어깨가 무거워보였다.
수정공은 고개를 들어 붉은 두 눈으로 새하얀 대죄식자를 바라보았다. 마치 시선을 느낀 듯 먼곳을 바라보던 대죄식자가 고개를 숙여 자신 앞에 서 있는 자그마한 인간을 바라보았다.
"……. ……."
눈이 마주쳤기 때문일까 대죄식자가 입을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한번도 위협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았지만, 언제까지 그럴진 몰랐다. 그리고 그 위협이 지금 일 수도 있어 수정공은 홀장을 손에 쥐고 경계를 했다. 경계를 한다고 해도 눈 앞에 보이는 대죄식자는 모험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대죄식자가 공격을 해 올 때 자신은 그 공격을 맞받아칠 수 있을 것인지는 자신이 없었다.
"수……."
대죄식자의 입이 움직였다.
"수…저고, ……공."
"영웅? 나를 알아보겠는가."
마치 수정공의 질문에 답을 하듯 고개가 살짝 내려갔다가 원래 위치로 올라갔다. 뛰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수정공은 대죄식자를 바라보았다. 약간의 희망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정말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않겠나? 모두 그대를 걱정하고 있네."
"나, 나아, 나……."
"그래. 어떤 말을 하고 싶은건지 다 들을테니 천천히 말해도 괜찮네."
수정공은 대죄식자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 살짝 뻗은 왼손은 지금 당장이라도 대죄식자를 붙잡고 매달릴 것 같은 간절함이 있었다. 대죄식자는 한번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한번 한번 말을 이어나가는 게 생각보다 힘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말을 한다는 것, 수정공을 알아본다는 것은 대죄식자가 아직 자아가 있다는 소리였다. 수정공은 그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새벽의 모두가 구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어쩌면 이 대죄식자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덧없는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아, 을. 노……. 노아, 죠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말을 이어서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천천히 생각을 거쳐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대죄식자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듯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해도 말을 멈추지 않았고 횟수가 늘어나자 점차 말도 알아들을 수준이 되었다.
"나을, 노아……, 져어."
"……. 지금, 놓아달라 말을 한건가?"
"노아조…오."
"……."
"그, 라하……. 티…아."
들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 적 없는 이름이 대죄식자의 이름에서 흘러나왔다. 대죄식자는 분명히 수정공을 알아보고 있었다. 후드를 벗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작은 존재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건 확실히 희망에 가득한 상황이었지만, 대죄식자가 입에서 꺼내는 소리는 그렇지 못했다. 하나씩 내뱉는 글자들이 수정공의 가슴에 박히는 듯 했다.
"그대는, 그대는 지금 이렇게 판단할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는 상태다. 분명 다른 방도가 있을거다. 다른 새벽의 사람들도 그대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열심히 찾아보고있어. 그러니까 부디 성급한 판단은 하지 말고 기다려줄 수 없겠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절박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며 담담하게 말을 하던 수정공의 목소리라곤 생각할 수 없을정도로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나오고 있었다. 모습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어도 모두가 매달리고 있다는 걸 알아 챌 수 있을 정도로 평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의 절박함을 알아 챈 것인지 말을 반복하던 대죄식자는 입을 다물었다. 고민을 하는 건지, 사람이 하는 고민을 하는 척 따라하는 건지 알 순 없었다. 그것은 이미 사람이 아니고 죄식자였기에. 그리고 대죄식자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었다. 바람마저 대죄식자를 피하는건지 불지 않은 홀민스터에 아주 잠깐 정적이 내려앉았다가 작은 소리가 하나 들렸다.
수정공을 내려다보던 새하얀 두 눈에서 똑같은 새하얀 것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저 하늘을 가득 채우고, 대죄식자의 몸도 가득 채운 빛이었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마냥 죄식자의 몸을 타고 빛이 흘러내렸다. 그 빛을 수정공이 맞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대죄식자는 자신의 긴 팔로 수정공 머리 위를 가렸다. 깍지를 낀 손을 수정공 머리 한참 위에 두니 마치 오래된 거목의 가지가 엮여있는 모습 같아보였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그 때문인지 더이상 대죄식자의 눈엔 수정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수정공도 눈물을 흘리는 대죄식자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영웅. 그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커다란 손으로 가렸기 때문인지 작아진 목소리가 겨우겨우 들렸다.
"무엇을 바라고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지. 그대를 보낸다고 그대가 얻게되는 것이 무엇이 있기에 그런 부탁을 하는건가."
대죄식자의 커다란 손은 분명 우산처럼 수정공 위를 가리고 있었다. 그 밑에 서있는 수정공에겐 대죄식자의 모습과 홀민스터의 풍경이 보일터였다. 그러나 수정공의 눈 앞은 새까매서 보이지 않았다. 8 재해가 일어난 원초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도, 시간과 공간을 넘는 기술이 성공하여 영웅이 태어나기도 전인 먼 옛날의 1세계로 넘어왔을 때에도 이렇게까지 앞이 안보이지 않았다. 막막하더라도 영웅의 이름이 희망이 되고 빛이 되어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그 영웅이 지금 어떻게 되었나.
"구해…죠. 새…계…을……."
피하고싶은 눈 앞의 현실에 고개를 돌릴 수도 없이 수정공은 새벽과 함께 대책을 찾아헤맸다. 현실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손에서 놓고싶지 않아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 대상이 놓아달라고 말을 하면 이젠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제나 막막하고 어두운 순간에도 빛이 되어 길잡이가 되어준 희망이 정신을 차리고보니 길의 끝을 가리키며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 희망은 자신만의 희망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의 희망이었으며, 빛이었으며,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영웅의 이야기를 말하며 눈을 빛내던 사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를 살릴 수 있다면 힘을 도와주겠다며 손을 뻗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소망을 짊어지고 이곳에 도착했다.
자신은 영웅이 아니었다. 그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영웅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들을 다 짊어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이뤄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소망들엔 자신의 소망도 같이 포함되어있으니, 이뤄낼 것이라 다짐했다. 사실 이것은 덧없는 자신의 욕망이었나. 그저 영웅을 구했다고 하는 자기만족을 위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해버리고 만것일까. 자신의 만용 때문에 영웅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생각도 못한 채 수정공은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었다. 그 울음 소리를 듣고 따라 울 듯 대죄식자의 눈에서도 새하얀 빛이 더 많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정공의 양손이 덜덜 떨렸다. 자신의 존재만으로 세계는 빛으로 가득 차고, 멸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일지 전부다 알 순 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포기해달라고 말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어렵게 나온 것인지는 생각해볼 수 있었다.
본래 대죄식자의 일이라면 새벽과 상의 끝에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이었다. 눈 앞에 있는 대죄식자가 원래 누구였는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래야했다. 그러나 그들이 대죄식자의 선택을 받아들여줄 것인가는 다른 문제였다. 납득하지 못할 것이고, 정말 모든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었다.
수정공은 엎드린 채 떨리는 양손을 모아잡고 이마를 대었다. 마치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실제로 기도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어도 들어줄 신은 어디에도 없었으리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수정공은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홀장을 주웠다. 홀장을 쥔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고개는 숙인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치워주겠나?"
수정공의 말을 듣고 대죄식자가 천천히 자신의 긴 팔을 치웠다. 바닥 가득 흰 빛이 물들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죄식자의 눈에도 수정공의 모습이 보였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못한 채 겨우겨우 자리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던 대죄식자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전이술을 쓸거다. 아마……,그걸로 충분하겠지."
대죄식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듯 조용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수정공은 홀장을 들었다. 눈물로 시야가 뿌옇게 변했지만, 마법을 쓰는데는 문제 없었다. 떨리는 손과 가빠지는 호흡만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자신이 영웅이었으면 이런 결말은 오지 않았을까. 이런 끝이 되지 않았을까. 이 길을 걷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끝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바라서는 안될 마음을 품고서 다른 이들의 마음을 짊어지고 와버린 걸까.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자신은 잘 못된 선택을 하고 만 것이었다. 영웅을 살리고자 한다면 똑같은 영웅이었어야 했다. 자신이어선 안됐던 것이었다.
후회를 한다고 해도 이미 모든 건 잘 못된 후였다. 그러니 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짊어지겠다고 마음 먹었다. 크리스탈타워와 함께 제 1세계에 모두의 마음을 짊어지고 왔을 때처럼. 이 선택도, 이 후에 있을 일도 오롯이 자신이 짊어지고 견뎌내고 받아들이겠다고.
홀장을 들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수정공이 고개를 들어 대죄식자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빛으로 된 눈물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이 보였다. 수정공이 들이마쉬는 숨이 떨렸다. 대죄식자의 주변에 빛나는 원이 그러졌다. 그들의 주위로 커다란 에테르의 흐름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흐름이 만들어낸 바람이 대죄식자의 날개와 머리카락, 수정공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 내가 가장 동경하는 영웅."
"등이 망가졌는데 언제 쯤 고칠 수 있어?"
"내일 손 보러 가려고 하는데 급한 일이야?"
"저번에 아이가 밤에 다니다가 넘어져서 좀 다쳤거든. 특히 거기는 계단이 있는 곳이잖아? 어른들이야 조금 잘못 디뎌도 금방 중심을 잡지만 아이들은 위험한거 같아서."
"그거 큰일이네. 알았어, 내가 시간 비는 사람이라도 찾아서 빨리 고쳐달라고 해볼게."
"고마워."
저녁 노을이 물드는 크리스타리움에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하늘의 끝자락엔 어느새 어두운 밤이 걸려 천천히 하늘을 덮어가고 있었다.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타리움엔 그렇게 찾아오는 밤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야 밤이 되돌아온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옛날 한밤에도 빛이 가득에 밝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건 나이많은 사람들에게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 크리스탈타워 문 앞에 있는 병사에게 말을 걸었다.
"수정공은 자리에 계시나요?"
"아, 잠시 외출하셨습니다."
"그러면 내일 다시 와야겠네요. 아무래도 오늘내로 돌아오실 것 같진 않으시니."
"수정공께서 돌아오시면 오셨다고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탁드릴게요."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올라온 사람은 다시 계단을 내려 다른 곳을 향했다. 병사는 몸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정확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바라보는 쪽 근처에 수정공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병사는 시선을 그곳에 두었다.
"늘 혼자서 가신단말이지. 위험하실텐데."
수정공은 가끔 호위없이 외출할 때가 있었다. 이번이 바로 그때였다. 언제나 마물들이나 다른 이유로 위험하다고 말을 해도 수정공은 늘 거절했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아두어야 한다며 그의 손녀딸이기도 한 라이나가 모든 병사들에게 그 장소를 알려주었다.
크리스타리움에서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다. 과거엔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 장소였다. 지금은 이름이 변해버렸지만, 과거엔 홀민스터라고 불렸던 그 장소. 그 장소에 수정공은 가끔 발을 옮기곤 했다.
저녁 노을이 풀들을 물들어 녹색이 아닌 다른 색 옷을 입게 만드는 순간에 수정공은 홀민스터에 서 있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폐허같은 분위기가 나는 건물들과 잡초가 자라나서 알아보기 어려운 길만이 있을 뿐이었다.
후드를 내려쓴 수정공이 한참을 서 있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진 것을 바라보고는 조용히 벌써 이렇게 되었나 하고 중얼거렸다.
그가 그렇게 떠나고 나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수정공이 내린 선택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슬픔을 표현조차 할 수 없게 했다. 이제 수정공이 걷고자 했던 길은 끝났음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사실이 가슴을 메이게 했다. 한때는 이 길을 걷다 길이 끝나는 날엔 마지막도 같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기도 했었다. 하지만 마지막은 찾아오지 않았다.
세상은 구해졌고, 수정공 또한 살아있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새로운 길을 찾고, 새로운 목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수정공이 떠나보낸 그 사람의 동료 중 누군가가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수정공은 웃었다. 그건 그럴 수 있을거라는 긍정도, 자신이 어찌 그러겠냐는 부정도 아니었다. '수정공'이라면 그리 행동했을테니 나온 의미따윈 없는 행동이었다.
"돌아갈까. 너무 늦으면 라이나가 걱정하겠지."
몸을 돌렸다. 이미 사라져버린 커다란 그림자가 자신을 가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신도 모르게 수정공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이미 모든 것은 끝이 났다. 미래에서 이어진 희망도. 이 곳에서 이루어내려 했던 소망도. 자신이 갖고 있던 마음까지도. 그런데도 마지막은 영원히 찾아올 것 같지 않았다. 이것이 수정공이 내린 선택의 결과였다. 이걸 오롯이 견뎌내는 것이 자신의 속죄일 것이라 수정공은 생각했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의 달빛이 수정공의 그림자를 늘렸다. 수정공의 그림자가 홀민스터를 채우고 있었다.
END
ver.A
떠나보내는 사람과 남겨지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