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널 판타지14 효월의 종언 네타가 있습니다.
- 미래 시점을 쓰는 환생물 입니다. 수많은 날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나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6.0의 국가 설정을 그대로 가지고 갑니다. - 드림글입니다. 환생물이므로 캐릭터는 파다니엘(아몬) 입니다.
(헤르메스는 원형이고, 아몬이 조각이므로 환생은 당연히 아몬일테니)
환생이라 성격이 다릅니다. 단 아몬의 외형을 모르기 때문에 헤르메스의 외형에서 약간 가지고 왔습니다. - 드림주(빛의 전사)의 설정이 있습니다.
(2022.07.28 포스타입에 업로드 한 글)
맑았던 하늘이 환상이었던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갑작스레 구름이 몰려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좋은 날씨라며 어마어마한 마물을 잡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나선 모험가는 갑작스런 비를 피하지 못하고 쫄딱 젖어버렸다. 한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겨우 비를 피할 장소를 찾은 모험가는 투덜거리며 비를 먹은 옷을 털었다. 이렇게까지 날씨가 급변하는 일은 드문데, 오늘은 아무래도 운이 없으려나보다. 옷을 터는 모험가의 머리엔 그런 생각이 가득했다. 일기예보사를 찾아가보지 않은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검은 장막 숲의 녹색 자연에 바로 코 앞마저 볼 수 없게 만드는 비가 섞여 시야에 비치는 풍경을 꾸몄다. 비안개가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어차피 늘 보는 그리다니아였다. 비야 언젠가 그칠테고, 무언가 보인다고 해봤자 마물일게 분명했다. 모험가가 무서워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면 될 뿐. 그런 생각을 하며 생각없이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검은 그림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마물인가 싶어 모험가는 서둘러 활을 꺼내들었다. 이 빗속이면 마물의 시야도 온전하지 않을테니 충분히 상대할만 했다. 그림자는 길이로치면 큰 편이었지만, 덩치는 작은 편이었다. 호리호리한 모습의 하나의 선처럼 보이는 그림자는 얼핏보면 마물이 아니라 사람의 그림자처럼 보일 정도였다.
'……사람?'
언제든 화살을 쏠 수 있도록 준비한 활을 천천히 밑으로 내렸다. 이곳은 검은 장막 숲이었다. 이곳에서 사보텐더를 봤다는 이야기는 못들었다. 그러면 저렇게 얇은 그림자를 가질 마물이 이곳에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림자가 풀썩 바닥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순간 흔들리는 짧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짙은 녹색이 검은 장막 숲의 자연과 잘 어울려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확실히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다.
놀란 모험가는 활을 등에 매달고 사람이 쓰러진 쪽으로 달려갔다. 쏟아지는 비를 맞아 순식간에 다시 옷과 몸이 흠뻑 젖어들었다.
"이봐요!"
흔들어보고 불러도 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일단 몸을 일으켜세워 얼굴을 확인해보았다. 안색은 그렇게 나쁘진 않았지만, 잡은 몸은 비를 꽤 맞아 체온이 떨어졌는지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 긴 귀를 가진 엘레젠 족, 그것도 숲 부족처럼 보였으니 그리다니아에 사는 사람은 맞아보였다. 일단 모험가는 남자를 들쳐업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느긋하게 있다간 저체온으로 큰일 날 것 같았다.
모험가는 휴런이었고, 남자는 엘레젠이었다. 그 키차이에 남자를 들쳐업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모험가도 나름 모험으로 단련된 사람이었다. 무거웠지만, 힘과 근성으로 버틸만했다. 다행히도 그리다니아까진 그리 멀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무 간절하게 개인 초코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겨우 그리다니아에 도착하자 다행히 귀곡부대가 먼저 무슨일이냐며 달려왔다. 모험가가 들쳐업은 남자를 대신 들쳐업는 그들에게 모험가는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어차피 복잡한 상황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 이야기를 듣자마자 귀곡부대의 사람은 남자를 업고 환술사 길드로 향했다. 모험가도 혹시 모르니 확인하러 가자는 다른 귀곡부대 사람의 말에 모험가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그냥 좀 빨리 가서 쉬고 싶을 뿐이고 춥지도 않고, 몸에 이상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혹시 뒤늦게라도 이상이 느껴지신다면 언제든 환술사 길드로 찾아오세요."
귀곡부대의 사람도 말 없이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경비로 돌아갔다. 비를 먹은 옷이 무거웠다. 일단 어서 모험가 길드로 돌아가 여관에서 옷이나 갈아입고 싶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철퍽하는 물소리가 들리는게 짜증났지만, 물을 짤 기운은 없었기에 무시하며 걸어갔다. 차라리 물 먹어 무거운 옷을 질질 끌고 걷는 것 보다 물을 좀 짜낸 후에 가는 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여관에 도착하고 나서야 떠올랐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빗물을 먹은 옷은 짜서 대충 걸어놓았다. 몸도 닦았고, 옷을 갈아입은 채 이불을 둘둘 싸고 침대 위에 앉아있자 비를 맞아 차가워진 몸도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감기에 들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자, 자연스럽게 자신이 구해온 사람이 떠올랐다.
뭘 하려고 그리다니아에서 나와서 검은 장막 숲에 있었는지. 또 비를 그렇게 맞아서 쓰러졌는지. 대충 봤을 때는 마물에 당한 상처는 없어보였다. 피를 흘린 것도 아니었고, 정말 몸이 차가운 것 외에는 딱히 특이한 점을 찾진 못했으니까.
딱히 자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앞으로 인연이 있을 것 같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뭔가 의뢰를 하고 그걸 자신이 받아들인다면 또 모를까, 그런 우연이 아니면 더 이상 만나게 될 일은 없겠지. 모험가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을 둘둘 싸맨 채 힘없이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비를 맞았기 때문인지 오늘은 뭔가를 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평소라면 이렇게 빈 시간에 뭐라도 제작을 하곤 했을 텐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는거겠지, 게다가 오늘은 사람을 구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 날은 밝았다. 지금 잠들면 아마 새벽쯤에 깰 것 같았지만, 어차피 모험가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생활 패턴이 다른 법이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새벽에 활동하면 될 뿐이었다. 감긴 눈에 보인 어둠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은 이제 괜찮아."
그건 언제의 기억일까. 새하얀 빛이 가득 한 곳에 새하얀 사람과 마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네, 맞아요. 잘 알아요. 수도 없이 봐왔는걸요.'
사람에 대한 믿음.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따뜻하고 말로는 전부다 표현 못할 다정함과 사랑스러움이 배어나오는 목소리를 듣자니 가슴이 매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마냥 슬픔으로 표현되는 감정이 아니란 걸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험가는 이 장면을 알지 못했다. 이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그 마음만은 절절하게 와닿아 저도 모르게 울고싶어졌을 뿐이었다.
눈을 뜨자 창 밖엔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아있었다. 아무래도 정말 새벽에 눈을 뜬 모양이었다. 너무 이불을 둘둘 싸매고 잠든 탓인지 약간 덥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탓인지 아니면 착각인지 약간 열이 나는 기분이었다.
어떤 꿈을 꾼 것 같았다. 마지 먼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느낌이었지만, 모험가의 기억속에 그런 장면은 없었다. 어떤 장면이었는지, 어떤 꿈이었는지 제대로 기억나진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만은 확실하게 들었다.
"너무, 덥게 잤나."
약간 따뜻한 이마에 모험가는 오른 손등을 대며 중얼거렸다. 잠에서 막 깬 탓인지 멍한 정신을 고개를 저으며 깨우려고 했지만, 좀처럼 잠에서 깨지 않았다.
창 밖을 보니 한참 새벽인 것 같았고, 가볍게 바람이라도 쐐고 오면 괜찮아질까 싶어 모험가는 나갈 준비를 했다. 짐들은 다 여관방에 놓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여관 주인에게 말을 해놓았다. 여관 주인은 알겠다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네주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 올려다본 그리다니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맑은 모습이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는 별들이 반짝이고, 환한 달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옛날에는 달에서 온 우호부족이 있었다는 것 같은데, 다 지어낸 옛날 이야기겠지. 웃으면서 모험가는 천천히 그리다니아를 걸어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그리다니아는 약간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중간중간 등불이 켜져있긴 했지만, 빛이 닿지 않아 새까맣게 어두운 부분도 꽤나 많았다. 그러나 무섭진 않았다. 도시 안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무서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별이 수놓인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던 모험가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에는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낯설지만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색이 짙은 탓에 이렇게 어두운 밤에 서 있으면 검은색으로 보일만한 짧은 머리가 보였다. 낮에 보지 않았으면, 자신도 저 사람을 검은 머리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며 모험가는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환술사 길드에서 치료를 잘 받았는지, 낮에 자신이 구해준 엘레젠 남자가 밖에 서 있었다. 멍하니 고개를 들어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궁금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 고개를 들어봤지만, 무언가 보이지 않았다. 아까까지 모험가가 구경하고 있었던 밤하늘이 보일 뿐이었다.
'아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건가.'
아까까지 자신도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걷고 있었으면서, 모험가는 남자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은 남자를 알고 있었지만, 남자는 모험가를 알지 못할 터였다.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으니 알 리 없었다. 굳이 말을 걸을 필요는 없겠지.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 저기."
그냥 지나치려고 모험가는 몸을 돌렸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발걸음을 멈췄다.
"혹시 절 구해주신 모험가씨이신가요?"
말을 듣고 몸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 엘레젠 남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굳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 모양새가 될 것 같아 모험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는 약간 쳐진 눈이 실눈처럼 보일 정도로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런 우연이 다 있군요. 귀곡부대 분께서 어떤 휴런 모험가분이 구해주셨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혹시 싶었거든요. 맞아서 다행입니다. 혹시 아니면 어쩌나 싶었어요. 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했습니다."
"아, 아뇨. 별로 큰 일 하지 않았는걸요. 도시하고 그리 멀지도 않았는데."
"그렇지만, 그렇게 비가 오는 와중에 제가 또 쓸데없이 덩치만 커서..."
덩치가 크다기 보단 키만 크고 호리호리했지만, 딱히 부정의 말은 꺼내지 않았다. 일단 큰 것은 맞았기에.
"괜찮으시다면, 혹시 식사라도 어떠신가요? 제가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은인께 아무것도 해드리지 않을 순 없으니까요."
"아뇨아뇨아뇨. 괜찮습니다. 정말 뭘 바라고 한 건 아닌걸요."
"그게 더 대단하신데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람을 구하는 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정말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한번만이라도 보답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니……."
모험가를 하면서 사람을 구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는 지금까지 구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조금 격하다고 해야할지, 자기 생각에 빠져있다고 해야할지. 외모로만 보면 소심하고 우물쭈물 할 것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와 모험가는 당황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남자의 녹색 눈동자를 보게 되었다. 어둡기 때문인지 밝은 색의 녹색 눈동자는 조금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흔들림없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 눈동자와 시선이 맞자 모험가는 자신도 모르게 기가 죽고 말았다.
"그, 러면. 한번만이라면."
"그러면 모험가 길드로 가실까요?"
모험가인 자신이 저 행동력을 본받아야 하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내하듯 앞서 걸어가는 엘레젠 남자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어차피 산책이 끝나면 여관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 배도 채우고 헛걸음도 안해도 되니까 이득이라고 생각하기로 모험가는 마음먹었다.
텅텅 빈 모험가 길드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앉아있는 동안, 모험가는 모처럼이니 왜 그곳에 있었는지를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껄끄러워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과는 달리, 남자는 흔쾌히 입을 열어주었다.
"사실은, 저도 모험가거든요."
예상 밖의 답변에 모험가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남자는 모험가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다니아 출신인건 맞지만, 이것저것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모험가가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험난하더군요."
"그러면 마물에게 습격당해서 쓰러진 건가요?"
"아뇨, 그건 계산을 잘 못해서……. 울다하를 가고 싶었는데, 길을 잘 못 들었거든요. 습격을 당한 건 맞긴 하지만 부상을 입진 않았습니다. 단지 계속 비를 맞으면서 도망치다보니 체력이……."
자신도 숙련된 모험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남자는 모험가가 된지 얼마 안된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지만, 듣자하니 남자가 모험가보다 더 빨리 모험가 길드에 등록을 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즉 자신보다 더 오래된 선배 모험가란 소리였다.
"울다하는……, 비공정을 타면 되잖아요?"
"직접 걸어가는 것도 로망이지 않나요?"
"로망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멋쩍은 웃음을 흘리는 남자는 아무래도 보기보다 허당인 모양이었다. 잘도 지금까지 모험가로 일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며, 모험가는 어느새 테이블에 놓여진 음식을 하나 입에 넣었다.
엘레젠 남자는 아몬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환술사 길드에서 환술을 배웠다는 그는 아무래도 별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일단은 주술을 배우고 싶어 주술사 길드를 가기 위해 울다하를 향했지만, 나중엔 점성술도 배워보고 싶다며 말을 이었다.
모험가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잠시 놀란 듯 빛나는 녹색 눈동자를 크게 뜨고 잠시 바라본 아몬은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왜그러냐고 물어봐도 그는 물은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다른 주제를 꺼냈다.
아몬은 생각보다 넉살이 좋고, 사람이 좋아보였다. 몸을 써서 하는 일보다는 머리를 쓰는 일이 더 맞는지 그동안 쌓은 지식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모험가보다는 연구자나 학자가 되었으면 분명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거물이 되었을게 틀림없었다.
"알아보는 것 만이라면 원래 하시던 대로 책을 쌓아 알아가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았겠어요?"
"그건, 생각해보긴 했지만……."
아몬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째선지 이쪽이 더 나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알기에는..."
뻐끔거리는 입은 더 할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마 처음보는 상대에게 할만한 이야기는 아닌거겠지. 자신도 너무 깊은 곳까지 파고들려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모험가는 이야기를 서둘러 끝냈다. 같은 모험가라는 걸 알고 친근한 마음에 너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 게 안좋았다.
식사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좀 더 가벼운 것들이었다. 그리다니아의 이야기, 가벼운 소문이나 모험가 길드에 관한 이야기 등등. 서로 가볍게 말을 꺼내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주제들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테이블 위에는 빈 그릇만 놓여있었다.
모험가는 식사도 끝마쳤고, 이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헤어지려고 했다. 이 만남 자체가 뭔가 이유를 갖고 성사된 것은 아니었기에. 물론,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생긴 자리였다. 그 보답은 음식이 나온 순간 끝났다고 모험가는 생각했다. 그러니 더이상 아몬과 연관될 일은 없겠지. 깔끔하게 끝날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아몬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건지, 떠나는 모험가를 붙잡진 않았다. 그저 모험가 답게 즐거운 여행을 하기를 바란다는 축복의 말을 꺼내주었고, 그 말에 모험가도 답을 해줬을 뿐이었다.
다음날이 되고 모험가는 여관방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모험가 길드를 관리하는 사람이 모험가를 불렀다.
"모험가. 이전에 부탁한 환술사 한 명, 찾은 거 같은데 어때?"
"어, 금액도 맞고 실력도 맞나요?"
"그래. 내가 알기에 환술 실력은 괜찮고, 그렇게 금액에 연연하지 않는 모험가라서. 적당히 이번 의뢰를 함께하기 좋을 것 같아."
"다행이네요. 탱커는 못구해도 힐러만 있으면 어떻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힐러도 못구해서. 어디로 가면 되나요?"
"내가 여기로 오라고 그랬으니까, 여기서 기다리면……."
이야기를 하다 눈이 마주쳤는지 길드 관리자는 어딘가에 손을 흔들었다. 이야기 상 자신과 함께 하게 될 환술사 인 것 같아 모험가도 몸을 돌렸고, 그곳에는 익숙한 엘레젠 남성이 서 있었다.
"아몬씨?"
"어머, 알아?"
그러고보니 이야기를 나눴을 때 환술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다.
"설마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굉장한 우연이네요."
첫만남이 마물에 쫓기다가 비에 맞아 쓰러진 상태였기에, 정말로 같이 돌아다녀도 문제는 없는걸까. 조금 아니 상당히 걱정이 되긴 했지만, 관리자의 말로는 환술에 능력이 있다는 건 맞는 것 같으니 웃으며 그를 맞이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을 볼 수 있는 첫 기회는 모험가 본인이 가져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비를 맞은 게 생각보다 영향이 있었던 건지, 열이 들끓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불을 둘둘 둘러싸고 자서 더우 열이 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감기로 인해 열이 오르기 시작한 것을 몰랐던 것 뿐이었다.
감기에 걸린 모험가를 간병하고 치유하는 것으로 아몬은 자신의 환술 실력을 모험가에게 보일 수 있었고, 모험가는 직접 병에 걸려 아몬의 치유를 받는 것으로 그의 실력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조금 모자란 환술사와 모험가가 되고 나서 그리다니아 주변을 벗어난 적이 없는 미숙한 궁술사는 이렇게 만나 함께 에오르제아를 돌아다니게 된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모험가는 음유시인이 되었고, 바라던 대로 울다하에서 주술사 수업을 받은 아몬은 흑마도사가 될 수 있었다. 둘 다 딜러라 이제 따로 행동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아몬이 점성술을 배우면서 그 고민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점성술 쓸 일은 얼마 없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네 환술로 나도 치료받고 너도 스스로를 치료한 게 몇번이나 된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이제 나도 흑마도사고, 너도 전투에 많이 익숙해졌잖아? 치료를 받아야 할 공격을 맞기 전에 쓰러트리면 되는거지. 먼저 쓰러트려버리면 문제는 없어."
아몬은 의기양양하게 지팡이를 들어보였다.
"흑마도사가 할 법 같은 말이네."
"흑마도사 맞으니까."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은 헤어지는 일 없이 동료로 많은 장소를 돌아다녔다. 목표 없이 돌아다니던 모험가였지만, 아몬과 같이 다니면서 두 사람에게는 어떤 목표가 생겼다.
"달?"
"그래. 너도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거 아냐. 옛날에 달에서 사는 우호 부족이 아이테리스에 온 적이 있다고."
"그거야, 옛날이야기잖아?"
"듣기로는 샬레이안에는 실제로 몇 가지 증거가 있는 모양이야. 황폐해진 옛 제국의 수도에도 달에 갈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는 모양이고."
"……용케도 그런 정보를 얻었다?"
아몬은 모험가의 말에 웃었다.
"그래서 달에 가보겠다고?"
"그래. 그게 내가 처음 모험가가 될 때부터 꾸었던 꿈이야."
아몬은 곱씹듯이 말을 이었다.
"달에, 좀 더 별들이 가까운 곳에 가보고싶어."
아몬의 말을 들으며 모험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디 한 번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 샬레이안이든, 저 멀리 북쪽 땅이든. 어디든 가보자. 어차피 그게 모험가의 일이고, 거기까지 가봤다고 하면 들어오는 일거리도 많아지겠지."
"하하, 괜히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하루 이틀만에 끝날 일도 아니니까 괜찮아. 샬레이안 입국심사를 통과하려면 우리는 지금보다도 더 명성을 쌓아야하니까. 어차피 난 장기계획은 하나도 없었으니 하나쯤은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몬을 보며 모험가는 밝게 웃었다.
"우리가 하루 이틀 같이 있을 사이는 아니잖아? 네가 바라는 만큼, 네가 찾고 싶은 걸 찾을 때까지 언제까지든 함께 가줄테니까."
모험가의 말에 아몬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겸연쩍은 모습에 모험가는 자신이 뭔가 말을 잘 못 한건 아닐까 걱정을 했다. 아몬은 그런거에 대해 굳이 말로 꺼내지 않는 편이라, 약간 둔감한 자신은 잘못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야기가 정리된 시점에 모험가가 슬쩍 혹시 말실수 했냐고 물어봤지만, 아몬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말했다. 그 말은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험가를 배려하고자 말을 삼가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정말 자신에게 있어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말을 꺼낼 필요를 못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모험가가 몇번 더 묻자 못이기는 척 아몬은 입을 열었다.
"단지 생각나는 게 하나 있어서 그래."
"생각?"
"그래. 꿈인데……. 꽤 오래전부터 꾸던 꿈이 몇 개 있거든."
꿈. 그러고보면 자신도 예전부터 몇번씩 꾸는 꿈이 있었다. 모험가들은 대부분 그런 꿈을 꾸는 법인건가. 그런 꿈에 이끌려서 나오는 사람들이 모험가가 되는걸까. 알 순 없었지만, 적어도 아몬과 자신은 그런 부류의 사람인 모양이었다.
"나도 있어, 그런 꿈."
"저번에 말했던 그 새하얀 장소에서 새하얀 사람이 말하는 꿈 말하는거지?"
"기억해?"
"응. 그렇네, 나도 이야기해볼까. 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낯선 장소에 낯선 사람들과 대치하고 있는 꿈이고. 또 하나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건지 아몬의 고개가 살짝 하늘을 바라보듯 위로 올라갔다. 아몬은 늘 생각에 잠기면 저렇게 고개를 살짝 들곤 했다.
"어떤 사람이 다음엔 함께 찾자고 말하는 꿈……."
"흐음."
"꿈이니까 별 의미는 없겠지. 너도 나도."
꿈은 무의식을 나타낸다고 하던데 자신의 꿈과 아몬의 첫번째 꿈은 무엇을 나타내는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몬의 두번째 꿈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찾으러 가자. 함께, 달까지 가는 방법을."
아몬은 웃었고, 모험가도 웃었다. 이내 이야기는 다른 사소한 주제로 바뀌었다. 그저 스쳐지나가듯 한 이야기였지만, 두 사람은 이 이야기를 잊지 않겠다고 마음에 담았다. 이것들은 자신들의 목표였고, 자신들이 나아가는 이유가 되었으니까.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이었으면, 이 둘은 자신들이 한 이야기를 계속 기억할 수 있었을까. 올드 샬레이안을 가기 위해 모험가의 일을 열심히 하던 두 사람은 어느 연구자를 만났다. 생명과 영혼에 대해 연구를 하던 그 연구자를 만나고 아몬은 모험가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는 연구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아몬이 흥미가 있다면 연구자를 자주 찾아가게 해줘야겠다고 모험가는 생각했다. 게다가 애초에 자신도 아몬은 모험가보다는 연구자가 어울린다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생각했다. 가장 어울리는 위치에 간 거라고 생각한 모험가는 혼자서 의뢰를 받고 해결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러던 중 한 파티와 만나고, 그들과 함께 행동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마지막으로 만난 날부터 3주가 지난 후였다. 그 전까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려 노력했지만, 이번엔 3주동안 만나지 않았다. 그동안 링크펄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연락조차 없이 3주가 지나서야 겨우 두사람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
"……."
마주앉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내심 느끼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건 다른 문제였다. 둘 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소중했지만, 그만큼 서로의 관계 또한 소중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걸 끊고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었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같이 행동하긴 어려울 것 같아."
먼저 입을 연 건 모험가였다.
"다른 파티를 만났어. 탱커도 힐러도 있는 파티야. 유격대 자리가 남는다고 해서 들어가기로 했어. 그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 앞으로는 더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
"……그래. 사람들은 좋고?"
"응. 괜찮아. 넌? 연구는 잘 맞아?"
"……나쁘지않아."
그정도면 아몬에겐 충분히 '좋다'는 뜻이었다. 오래 같이 지내온 모험가는 알고 있었다.
"그래, 다행이네."
"……."
"미안해. 하지만 이게 서로에게 좋을 거야. 링크펄로 가끔 연락할게."
"그래. 조심해. 무슨 일 있어도 연락하고, 이 근처로 오게 될 때면 한번쯤은, 인사하자."
"당연히 그래야지. 연구는 잘 되고 있는지 캐물으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 잘 하고 있어야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많았지만, 헤어질 때에 상대방에게 걱정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서로 그렇게 생각하며 밝은 목소리로,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험가의 뒤에 사람들이 보였다. 아몬이 그쪽으로 시선을 주자, 모험가가 몸을 돌려 바라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같이 다니기로 한 모험가 파티인 모양이었다.
아몬이 슬슬 가보라며 말을 하자, 잠시 고민하던 모험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지내."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말을 하고 모험가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실제로 멀리 떠나는 건 맞을 것이다. 저렇게 방어와 치유, 공격 직군까지 다 맞추고 떠나는 파티이다. 제대로 된 모험을 위해 떠나는 게 분명했다. 그동안 모험가가 바라던대로.
모험가가 떠난 자리에 아몬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급하게 돌아갈 일도 없었고, 주문한 음료를 천천히 다 마신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분명 한사람만 더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자리가 휑한 기분이 들었다. 가득찬 무언가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천천히 음료를 마셨지만, 그래도 허전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엔 계속 같이 있지 않았다. 이렇게 떨어진 게 드문 일도 아닌데 갑자기 찾아온 허전함이 낯설었다.
아까까지 모험가가 앉아있던 빈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저 자리에 앉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중요한 걸 놓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음료가 반 이상 남았지만,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연구실로 돌아가자. 자신이 만족할만한 무언가를 결과로 내놓으면 분명 이 허전함도 사라질거라 믿었다.
시간은 흘렀고, 링크펄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먼저 연락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모험가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곳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섣불리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만약 마물과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링크펄이 울린다면? 모험가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연구자의 곁에서 열심히 생명과 영혼에 대해 연구를 했었다. 그는 확실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의 생각과 행동이 아몬은 불쾌했다.
처음엔 마물을 상대로 연구를 진행하나 싶더니, 이내 연구 대상이 평범한 동물까지로 범위가 넓어졌다. 곧 주인을 잃은 동물들이나 유기 동물들을 이용해서도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아몬의 말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생명과 혼에 대해 연구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대상이 넓어질 수 밖에 없다며 연구자는 주장했다. 다른 연구를 하는 사람들 또한 연구자의 의견이 맞다며, 아몬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 걸 일일이 신경쓰면 연구를 할 수 없다며, 연구자의 연구를 막지말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 말에 아몬은 대꾸 할 수 조차 없었다. 모두 같은 생각, 같은 답변을 내었기에. 생명과 영혼을 연구하는 사람이 제일 생명과 영혼을 가벼이 여기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느날 연구실 건물 근처에 더위에 지친 듯 날아오르지 못하는 파랑새를 아몬이 발견했다. 설탕을 탄 물을 주고, 이내 기운을 차리자 벌레와 물을 챙겨주었다.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이었을까, 새는 아몬을 경계하지 않았다. 아몬도 그런 파랑새가 싫지 않았다. 이대로 자신이 길러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파랑새가 어느날 실험대에 놓여있는 것을 볼 때까지.
"뭔가요? 어디서 그 아이를."
"아, 연구실 건물 옆에 큰 나무에 둥지를 튼 모양이더군. 마침 잘 됐다 싶어서 사람을 시켜 잡았다네."
"마침? 잘 됐다구요?"
"그래. 알다시피 실험용 생물이 부족하잖나. 쉽게 잡히는 동물이 이렇게 근처에 있었다니."
저 말을 어떻게 들어야할까. 연구를 위해서라는 말에 자신도 어느정도 눈을 감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연구를 위한 생명체가 줄어든 것도 알고 있다. 그야, 자신이 그들을 잡아오는 게 껄끄러워 찾아다니지 않았으니까.
실험대 위에 늘어져있는 파랑새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자신은 어째야 할까. 이번에도 눈 감고 그냥 못본척 해야하는 걸까. 심장이 쿵쿵 뛰는게 느껴졌다.
이럴 때 모험가라면 대체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옆에 있는 보관대에 손이 간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지도 몰랐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보관대가 바닥에 엎어졌다. 일부러 힘을 줘 엎어버린 것이지만, 생각보다 요란스러운 소리에 보관대를 던져버린 아몬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연구자가 무슨 짓이냐며 달려왔다. 아몬은 연구자를 밀쳐버리고 실험대의 파랑새에 손을 뻗었다.
예상한대로 아직 숨이 멎지 않았다. 온기도 있었다. 그동안 봐온 축 늘어진 몸과는 달랐다. 두 손으로 조심히 잡은 후에 서둘러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치는 연구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가 쫓아오지 못할 곳까지 열심히 달렸다. 그래도 한때 모험가였다고, 체력과 민첩함은 죽지 않은 모양이었다.
"헉, 헉헉……."
숨이 찰 때까지 뛰어 마을 밖으로 나왔다. 숲이 보이는 곳에 주저 앉았다. 새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양손을 벌리자 갑자기 파랑새가 푸드득 움직였다. 깜짝 놀란 아몬이 손을 완전히 떼버리자 그대로 파랑새는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날아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 안심되었다. 저 모습이면 잘 날아가서 안전한 곳에 다시 둥지를 만들고 잘 살 수 있겠지. 한숨을 내쉬며 아몬은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이게 대체 무슨짓인가 생각해봤다. 한순간에 자기가 쌓아온 것들이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실험체까지 들고 이렇게 도망쳤다. 다시 연구실로 돌아갈 수 있을리 없었다. 만약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무엇때문에 연구자의 생명과 영혼에 대한 연구에 흥미를 가졌던건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분명 처음엔 이런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만 들었다. 눈 앞에는 죽어간 생명들이 아른거렸다. 동시에 그들을 보며 새로운 연구 성과가 쌓여간다며 즐겁게 웃던 연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아니다. 이런 게 아니었다. 이렇게 덧없이 쓰러져가는 생명을 보기 위해 자신은 연구자의 곁에 있겠다 다짐한 게 아니었다. 이럴 거였으면, 자신은 이곳에 남지 않고 모험가의 곁에서 계속 모험을 하는 거였는데.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 없을 생각을 해보았다.
아몬은 주머니를 뒤져 링크펄을 꺼냈다. 지금까지 한번도 울린 적 없고, 자신도 한번도 써본 적 없는 물건을 두 손으로 잡아보았다. 받을까. 예전이었다면, 뭐라고 답이 나올 질문에 아몬은 뭐라고 확신을 갖고 답을 할 수 없었다.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링크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울컥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고개를 숙이고 링크펄을 쥔 손을 얼굴에 대었다.
인연이란 것은 이렇게 쉽게 사라질 정도로 덧없고, 쌓아온 것들은 쉽게 무너져 의미를 잃어버리고, 생명은 너무나도 별 것 아닌 이유로 사라져버리곤 한다. 그러면 이 생에 대체 의미는 무엇인가. 어차피 다 사라져버리는 것들 뿐인데 대체 살아서 무엇이 남는 것인가.
터지는 울음엔 그런 의문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쏟아지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몬은 이를 악물었다.
"같이, 찾아보겠다고 했으면서……."
언젠가 했던 말을 나즈막하게 입 밖으로 꺼내보았다. 무엇을 찾자고 했었던가.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같이 찾아보자며 웃는 모험가의 모습만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기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어느새 숲엔 어둠이 내려앉았고, 감정을 추스린 아몬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른 눈물이 얼굴에 묻어있었고, 부은 두 눈이 누가봐도 운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올려다본 하늘엔 하얗게 빛나는 달이 있었다. 그래, 달. 자신은 예전에 달에 가보고 싶었다. 그건 우리의 목표였다.
달에 가면 무언가 있을까. 자신의 이 마음도, 생각도 별거 아닌 것으로 느껴질 수 있을까. 이런 삶으로, 이 별에 사는 의미는 있는 것이라고 알 수 있을까.
"하, 하하하하……."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본인 스스로 느꼈지만, 그래도 무언가에 매달리고 싶었다. 그래, 언젠가 자신이 사람에게 매달렸던 것처럼.
인연이란건 덧없어서 금방 사라지기도 하지만, 새롭게 생겨나는 것도 금방이다. 아몬과의 인연이 끊어진 모험가는 새로운 파티라는 인연을 만났다. 그리고 그 파티와의 계약도 끝난 지금은 또다른 인연을 만나 예전엔 상상도 못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괜찮은 음식점이 단 한 곳밖에 없었다고 했다. 어떤 모험가의 노력과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로 이런저런 음식점이 생겼고, 그 가게 모두가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새로운 동료는 말했다.
비에라족인 그는 조달꾼인 아버지를 따라 조달꾼이 되었다고 한다. 에오르제아에서 조달꾼 일을 하던 그를 우연히 만나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하나 둘 그를 돕다가 그가 본국으로 돌아간다며 함께 가지 않겠냐고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모험가는 지금 올드 샬레이안에 있었다. 요새는 조달꾼의 동료가 되는 모험가도 많은지, 입국심사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카페 라스트 스탠드는 지금은 음료 밖에 취급하지 않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음식도 팔았다는 이야기를 대충 들으며 모험가는 음료를 마셨다.
"옛날의 나는 좀 더 명성을 쌓아야지 들어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그것도 틀리진 않지. 명성이 없는 모험가는 입국심사에서 거절당할테니까. 예전엔 모험가라면 거절했다는 모양인데, 예전에 에오르제아에서 유명한 한 모험가가 들어와서 큰 도움을 받은 이후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어."
"엄청 굉장한 사람이었나보네."
"아버지의 말로는 그냥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었다고 하던데."
"……아참 비에라시고, 너도 비에라지."
"내 귀가 안 보여? 역시 눈을 다친 걸까?"
"아니라니까."
먼 과거의 이야기를 마치 얼마전에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화법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비에라인 그들은 휴런인 자신보다 수명이 훨씬 길고, 그로인해 봐온 것도 많다는 걸 알지만, 아무래도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마주하는 것하고는 와닿는 것이 달랐다.
예전에 갖고 있던 의문을 조달꾼인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그는 답을 해주었다. 과거엔 올드 샬레이안에 달에서 온 우호부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달에 간 사람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며 달 뿐만 아니라 더 먼 우주로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별이 아직 아이테리스가 아니라 하이델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시절에.
하이델린이라니 대체 언제적 이름인가. 역사책에 나올만한 이야기를 실존하는 사람에게 직접 듣자니 느낌이 이상했다.
"이야기 들을 때마다 놀라. 이런 걸 다 알고있다니 싶어서."
"뭐, 아버지도 돌아가신지 꽤 되셨고, 나도 이젠 나이가 나이니까."
"하, 할아버지."
"혼나고 싶은거면 사양은 않겠는데."
오른손을 흔들면서 모험가가 기겁하자 조달꾼인 남자가 소리내어 웃었다.
모험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아몬 생각이 났다. 만약 아몬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굉장히 놀라면서도 좋아했겠지. 자신보다는 아몬이 이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면 산더미 같은 질문을 조달꾼에게 했을테고, 몰랐던 사실을 잔뜩 더 알 수 있었겠지. 자신의 머리로는 더이상 질문이 떠오르지 않아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그 기회를 살릴 수 없었다.
올드 샬레이안을 구경하기도 하고, 조달꾼인 그를 따라 라비린토스란 곳도 가보았다. 도서관도 찾아가 가볍게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확실히 지식의 보고라고 불릴만한 장소였다. 보관된 도서의 양도 어마어마했지만,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책조차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와 함께 올 수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자 조달꾼이 슬쩍 말을 걸었다.
"예전에 함께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어?"
"어떻게 알았어?"
"또 묘~ 한 표정으로 샬레이안을 둘러보고 있어서?"
"그래 묘~ 하게 계속 생각이 나서."
"한번쯤은 연락해보지 그래? 헤어진지도 꽤 지났다며. 그쪽도 의외로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됐어. 연락이 없는 거 보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아. 하나에 몰두하면 금방 다른 걸 못 보는 성격이다보니까, 연락해도 소용 없을 수도 있고. 필요하면 알아서 연락하겠지."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가끔은 이런저런 생각 안하고 연락하는 것도 필요한데. 연장자의 조언이야. 그런 식으로 배려하겠답시고 생각하다가 관계가 멀어지는 일도 많다?"
"연장자의 경험입니까?"
"그래, 경험."
모험가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흐흠 하고 소리를 내었다. 조달꾼의 이야기가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몬에 관한 일이다. 자신의 생각 또한 틀리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야 아몬하고 함께 한 시간이 얼마인데. 자신이 제일 아몬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비록 떨어진 시간이 함께한 시간만큼 길어졌더라도.
서로 각자의 방으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나눴다. 내일도 딱히 일은 없다고 들었으니, 내일까진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밤이 찾아오려면 시간이 좀 남아있는데다 내일이 쉬는날이기도 하니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도서관을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 조달꾼의 동료인 자신은 라비린토스에 내려가는 것도 가능은 하니 내려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모험가를 불러세웠다. 처음에는 자신을 부르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돌아보지 않은 모험가는 몇번 반복되는 소리에 이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웃음짓는 라라펠족 사람이 있었다.
"다행이다. 안녕하세요, 혹시 모험가씨 되시나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 시죠?"
"저는 발데시온 위원회의 사람입니다. 잠깐 말씀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요. 혹시 아몬이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예상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놀라서 굳어버리자 그걸 알고 있다고 판단한 듯 발데이온 위원회의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잠시 따라와주시겠어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모험가는 발데시온 위원회 사람을 뒤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발데시온 위원회 분관이었다. 지나치면서 몇번 본 적은 있지만, 안에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아몬의 이름으로 불려서 들어오다니 안좋은 일은 아니겠지. 약간의 불안함이 피어올랐다.
두 사람이 들어오자 안에 있던 사람은 넓은 방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들어온 곳은 회의실 이라고 부를만한 넓고 깔끔한 장소였다.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아 안내해준 사람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방 안에는 잠깐동안 정적이 내려앉았다.
"갑자기 불러세워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단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주실 수 있으신가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야말로 감사드리죠."
그렇게 말한 위원회 사람은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모험가를 똑바로 쳐다봤다.
"저희는 샬레이안 철학자 위원회로부터 의뢰를 받은 형태로 먼 과거 제국이 있었던 북쪽의 어느 장치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장치……?"
"예. 그 장치는 과거에 달로 향하는데 사용된 장치이며, 또한 달에 있는 우호부족이 아이테리스로 내려오는데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저희 발데시온 위원회는 그 장치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만, 최근에 아몬 이라고 하는 한 여행자에게 결계를 파괴당하고 장치의 가동을 허용했다고 하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네? 아몬이요?"
"네. 인상착의나 처음 북쪽으로 향하는 비공정에서 확인하는 정보들을 모두 확인한 결과 아몬이란 사람이란 것이 판명되었습습니다."
"아니아니, 그녀석은 지금 어느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있을텐데요?"
"조사한 결과 그 연구실에서 도망친 지 오래인 것 같더군요."
"도망,쳐요?"
"네."
말도 안됐다. 아몬이 연구실에서 도망칠 이유는 없었다. 분명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연구에 흥미가 있고, 관심이 있고, 연구실 생활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그가 어째서 도망을 쳤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으면 자신에게 연락이 왔을 법도 했는데, 링크펄엔 연락 하나 오지 않았다. 연락이 없으니 자신은 아몬이 연구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문득 조달꾼이 한 말이 떠올랐다. 배려하겠다고 연락하지 않다가 멀어지는 일이 생긴다고 하는 그 말이. 아몬은 배려했던 걸까. 지금까지 모험하고 있는 자신의 방해가 될 순 없다고 생각했을까. 지금의 자신으로선 그럴 것이다, 아니다 어느 쪽으로든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위원회 사람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 어려웠다.
"기록에 따르면 당신이 한때 아몬과 함께 모험을 다녔다고 하여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혹시 뭔가 아시는 건 없으신가요?"
"아,뇨. 그런."
"장치를 손 댈 이유같은 것도?"
"그야……."
있긴 있다. 먼 옛날에 달에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옛날 이야기였다. 그동안 새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달과 아몬이라는 단어가 같이 나오자 이제서야 떠오를 정도로 기억 저편으로 잊혀진 이야기였다.
모험가는 이 사실을 말해야하나 고민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몬은 억지로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어진 곳에 가는 녀석이 아니었다. 위원회 사람이 이야기 하는 아몬이 자신이 아는 아몬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
그래서 생각했다.
"달에 가는 장치가 있다는 곳으로 저를 보내주세요. 그 사람이 진짜 아몬인지 제가 보고 확인하겠습니다."
안된다는 답이 돌아오더라도 어떻게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안된다고 한다면 혼자서라도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알겠습니다. 저희 발데시온 위원회와 함께 가시죠."
생각보다 깔끔하게 그러자는 답변에 오히려 모험가가 놀랐다. 위원회 사람은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며 말을 덧붙였다. 서둘러 조달꾼에게 연락을 해 당분가는 함께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을 하자, 조심히 다녀오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당분간은 자신도 라비린토스에서 일을 할 것 같으니 적당히 마무리 된 것 같으면 오라는 말을 남겨주었다.
해야 할 연락을 끝내고, 갈 준비를 끝내니 그 이후로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북쪽으로 가는 비공정등의 준비는 발데시온 위원회에서 다 끝내놓았다. 발데시온 위원회 전용의 갈론드 아이언웍스사 제작 비공정을 타고 산맥을 넘어갔다. 매서운 추위가 몰려왔지만, 이미 준비해놓은 옷과 약 등으로 대처하자 나름 버틸만한 날씨가 되었다.
대체 언제적 건물인지 알 수 없는 허물어져가는 건물 잔해들 사이를 걸어나갔다.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떨리는 몸이 무서워서인지 추워서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앞서 걸어가는 위원회 사람들을 뒤따라가며, 모험가는 한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곳의 정상에 달로 가는 장치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장치를 관리하는 발데시온 위원회 사람의 말로는 그는 이미 달로 갔다는 것 같더군요. 달엔 샬레이안에도 찾아왔던 우호부족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금기를 저질렀으니 어서 보호를 해야죠."
"만약 아몬이 아닌 다른 사람이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른 사람이라 해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무작정 결계를 깨부수고 들어왔으니, 누구라해도 당분간 샬레이안에서 감시해야 할 대상으로 보호되겠지요."
올드 샬레이안에서 어느 단체가 보호하는 장소를 억지로 들어간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는 올드 샬레이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금지 구역인데, 단지 보호대상이 되고 감시가 될 뿐이라면 오히려 값 싼 걸 수도 있었다. 감옥에 가는 것보다는 나을테니까.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안은 관리가 되어있었는지 생각보다 깔끔했다. 밖에서 보기에 허름해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안에도 사람이 있었고, 위원회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안에 있었던 아마 발데시온 위원회 소속으로 보이는 사람의 안내에 따라 가장 꼭대기층으로 이동했다.
장치를 작동시키자 바닥이 움직이더니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장치에 모험가가 놀라는 동안 바닥은 계속 위로 올라가 순식간에 가장 꼭대기층에 도착했다. 발데시온 위원회 사람은 놀라서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리지 않은 것만으로 뛰어난 사람이라며, 역시 모험가는 다르다고 칭찬같지 않은 칭찬을 남겼다.
꼭대기층에 도착하자 본 적이 없는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기공사의 작품인거 같은데 저걸 아몬이 사용해서 달에 올라갔다고? 어쩐지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아몬이 머리가 좋긴 했지만, 기계나 장치에 관한 지식을 익힌 기억은 없었다. 물론 연구자 곁에서 연구하면서 익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지금의 아몬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아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렸다. 자신이 아는 아몬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얼마나 근거로 내밀기 어려운 말인지를 스스로 깨달았다.
안내를 받고 장치 위에 올라가자 한 사람이 장치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열심히 건드리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에 우웅 하며 장치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뭔가 무서운 소리같다는 생각을 한 순간 눈 앞이 흐려지더니 곧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자 눈 앞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느낌은 에테라이트를 이용해서 이동했을 때와 똑같은 감각이었다. 에테르 멀미는 없었지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낯선 탓인지 조금 어질어질한 착각이 들었다.
하얗게 펼쳐진 땅과 처음보는 양식의 커다란 건물. 처음 보는 마물이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었고, 가운데는 붉은 선이 빛나면서 원을 그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여기가, 달……?"
놀라서 중얼거린 모험가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뒤늦게 이제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기 위해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분명 장치 위엔 함께 있었던 발데시온 위원회의 사람이 곁에 없었다. 설마 자신만 여기에 보내고 자신들은 안전한 아이테리스에 있는걸까. 하는 말을 듣자하니 자기들도 같이 달로 가서 아몬을 보호하겠다는 것 같았는데, 자신이 데려와야 하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모험가?"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키 큰 남성이 서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는 성인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 성장기였던 걸까. 아니면 뭔가 연구를 하면서 키가 더 자라는 법이라도 알게 된 것일까. 예전보다 좀 더 키가 큰 모습으로 아몬은 그곳에 서 있었다.
"너, 연락도 안하고 대체 언제 이런 곳까지 왔어."
"알아서 어쩌게?"
생각보다 날이 선 답변에 모험가는 움찔 몸을 움직였다.
"네 생각보다는 일찍 도착했어. 생각보다 예민하더라고, 발데시온 위원회란 곳은. 금방 눈치채서 따라오는데 정말 귀찮아선……."
"못본 새에 입이 걸걸해졌구나."
"그러는 넌 못본 사이에 제법 모험가 티가 나고?"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은 아몬이 맞았지만, 모험가가 기억하고 있는 아몬은 아니었다. 자신은 아몬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제야 모험가는 인정하기로 했다.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달을 이야기하고, 별을 이야기하며, 사람과 있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은 자신의 곁을 떠나 사라져버렸다고.
"바라던 달에 와보니까 어때?"
"……하찮더라. 이것도 저것도 전부다. 아무 의미도 없어."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말투는 정말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은 사람이 내뱉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아이테리스는 저렇게 자그맣고. 그런데 사람들은 저 작은 곳에서 자신들이 저렇게 자그맣고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지. 괴로워 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작은 자신들의 별 것 아닌 인연에 연연하기도 하고, 응?"
그렇게 말하는 아몬은 슬쩍 고개를 돌려 모험가를 쳐다봤다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는 정말로 별 것 아닌데 뭐라도 되는 것 마냥……. 그치?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인데."
"……연구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모험가의 질문에 아몬은 잠시 숨을 삼켰다.
"있었으면 어쩌려고? 늦었어. 전부 늦었어, 모든지."
"아니, 지금도 안 늦었어. 겨우 달에 왔을 뿐이잖아?
"벌써 달에까지 온 거지."
웃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게 들렸을 뿐인데 섬뜩한 느낌이 들어 모험가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모르겠지만, 울티마 툴레라는 곳이 있다고 하더군. 먼 옛날에 발견된 구역이라고 하는데, 그곳에 대한 자료를 찾았어. 그곳에 갈 거야. 그리고 의미 없는 것들을 끝낼거야."
"아몬."
"그치만, 그렇잖아. 어차피 모든 것은 끊어지는 거고, 어차피 모든 것은 언젠가 끝이 와. 사라진다고 해도 사소한 것이라 아무도 신경도 안 쓰고, 알지도 못한 채 사라져가지. 그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게 지금의 아이테리스라고 하면 대체 살아가는데에 의미는 어디에 있어! 이 드넓은 우주에! 아이테리스 하나 사라진다고 아는 존재가 있을까?"
"우리는 알잖아."
"사라져버리면 우리도 모르게 되는 거지. 공평하게 다."
"사라지면 새로 쌓으면 돼. 끊어지면 다시 연결하거나, 다른 연결점을 찾아서 새롭게 이어지면 돼. 사라졌다고 해도 누군가는 사라졌다는 사실에 눈치챌 수도 있어. 의미 같은 건, 있었다가도 없는거고 없었다가도…… 생기는 거잖아."
"없었어, 그런 건. 생기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적어도 나는 너와 끊어지지 않았잖아."
"갔잖아, 가버렸잖아. 함께 찾아보자고 해놓고 넌 돌아오지 않았잖아! 한번이라도 근처에 온 적은 있었나? 있었다면 내가 연구실을 뛰쳐나왔단 사실도 모르진 않았겠지. 안 그래?"
"……."
"이걸 끊어지지 않았다고 하면 대체 뭘 끊어졌다고 말해야 하는데? 이미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 되었는데 뭐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까!"
소리를 치는 아몬의 옆으로 무언가가 스쳐지나가더니 튀어나온 땅에 부딪치고는 폭발했다. 모험가가 돌아보니 그곳엔 지팡이를 든 사람이 몇 서 있었다. 자신과 함께 한 발데시온 위원회의 사람들이었다.
"손을 써뒀더군요, 아몬. 덕분에 잠시 헤맸습니다. 올드 샬레이안 철학자 위원회의 대리로 달과 달의 장치를 관리하고 있는 발데시온 위원회의 이름 아래 당신을 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순히 따라주신다면 좋겠군요."
"결국 저런 쥐새끼같은 것들까지 끌고오고……."
아몬은 어느새 손에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둘 다 말릴 틈도 없었다. 아무래도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었다. 자신은 어째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로 아몬을 위한 일인걸까. 짧은 시간에 어서 결정을 내려야했다.
마음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미 손은 활을 꺼내고 있었다.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어디를 겨눠야 할까 고민을 하는 사이, 이미 눈은 한 사람을 노리고 있었다.
"하."
짧고 강한 웃음소리가 아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치 그럴줄 알았다는 마냥. 그리고 아몬의 얼굴 옆을 쏜 화살이 스쳐지나갔다. 누가봐도 노릴 생각이 없는 하지만 확실한 위협의 사격이었다.
모험가의 활은 아몬을 노리고 있었다. 이것이 아몬을 위한 것이라고 모험가는 판단했다. 여기서 정말로 무슨 짓을 저지르면 감옥에 끌려갈 수 밖에 없으니까.
"돌아가자, 아몬. 이야기는 돌아가서 해도 충분하잖아."
"아니, 너도 포함해서 그만 사라져줘야겠어. 다 귀찮으니까!"
날아오는 마법은 빠르고 정확하게 모험가와 발데시온 위원회의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모험가는 화살을 쏴 마법의 힘을 상쇄시킬 생각이었지만, 화살이 마법에 닿는 순간 폭발을 일으켜 모험가의 몸이 날아갔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설계된 마법인 것 같았다. 무언가가 닿으면 폭발하도록.
날아가는 도중에도 폭발 소리가 몇번 울렸다. 발데시온 위원회 사람도 그대로 당한 모양이었다. 바닥을 나뒹굴다 정신을 차리고 손에 힘을 줘 바닥을 밀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모험가는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느꼈다. 상황상 아몬이겠지. 어느새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걸까. 정말 부러운 기술이다 생각하며 있는 힘껏 활을 휘둘렀다.
활을 휘두르다 잘못하여 뒤틀리면 화살을 쏘는데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되도록 활 자체를 둔기처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것도 안전이 보장 될 때의 이야기였다.
깡 하는 요란한 소리는 들렸으나, 무언가를 제대로 때린 감각이 손에 없었다. 무언가를 두드린 느낌은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자 바닥에 툭 하고 지팡이가 떨어졌다.
"진짜 그동안 힘만 길렀나?"
뒤로 물러선 아몬이 오른손으로 왼손을 움켜쥐고 뒤로 물러섰다. 아무래도 휘두른 활을 지팡이로 막은 모양이었지만, 그대로 지팡이를 놓친 모양이었다. 모험가는 실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몸에 실실 웃는 모습이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을 보는 듯 했다.
"그야, 그동안 잡은 마물만 몇이고 해온 의뢰만 몇인데. 숙련된 모험가야, 나는."
"그래. 너도 나도 변했단 거지. 정말 그렇게 끈질기게 일어나는 모습 예전부터 지겨웠어……!"
"아이고, 남말하네. 자기 주장을 꺾지 않는 그 심지 굳은 모습이 가끔은 정말 보기 싫었거든!"
어느새 지팡이를 다시 손에 쥔 아몬과 모험가는 대치했다. 아몬과는 한번도 대치한 적이 없었다. 그게 대련이라고 할 지라도 마주서서 싸워본 적이 없었다. 늘 그는 곁에 있었고, 등 뒤에 있었다. 이렇게 마주해보니 정말 상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이라고 생각들었다. 그런 생각들이 나니 상황에 맞지 않게 모험가는 계속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몬하고는 있을만큼 있었다고 생각했고, 같이 할 수 있는 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몬에 대해 아는 건 없었고, 같이 한 것보단 하지 않은게 훨씬 더 많았다. 적어도 달까지, 아니 올드 샬레이안까지 함께 왔어야 했었는데. 그러면 뭔가 달라졌을까. 이미 늦어버린 후회였다.
그동안 열심히 수련하긴 했는지, 아몬의 마력은 예전보다 강대해져있었다. 그에따라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도 강해졌지만, 문제가 되는 건 전투 경험이 적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함께 모험가를 하며 전투 경험을 쌓았지만, 연구자와 만난 이후에는 전투를 할 일이 없었을테니까. 게다가 예전엔 둘 다 모험가로선 미숙했기에 전투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험 자체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숙련된 모험가가 되어 수많은 전투를 경험해온 모험가와 비교해 전투 방식도, 스타일의 운용도 전법의 파악법도 아몬은 미숙했다.
"정말, 역겨운 자식……!"
떨어지는 메테오를 피하며 모험가는 화살을 쏴 이번엔 아몬이 끌고오지 못할 정도로 멀리 지팡이를 날렸다. 저 말을 마지막으로 아몬은 더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다. 지쳤는지 아몬의 숨이 거칠어진게 느껴졌다.
어디서 도움을 줄까 살펴보고 있던 발데시온 위원회의 사람들은 결국 일이 마무리가 되어서야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지팡이를 아몬에게 겨누었고, 나머지 사람은 아몬의 뒤로 다가가 포박했다. 모험가는 거친 숨을 고르며 포박당해 바닥에 주저앉은 아몬을 내려다보았다.
"……아몬."
"왜, 이제 만족하는거 아냐……?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못했어. 이곳까지 와서도 아무것도……."
"모험가씨."
"이미 포박은 한 거잖아요? 잠깐만 시간을 주세요."
서로를 쳐다보던 발데시온 위원회 사람들은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몬의 곁에서 좀 멀어졌다. 모험가는 나지막하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아몬의 앞으로 걸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뭘 하는거야. 그냥 끌고가라고 하지않고."
"그래서 결국 뭘 원했던거야. 뭘 하려고 했던거야.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그걸 듣고싶어서."
"네가 없는 동안 뭐가 있었냐고? 하, 네가 없었지."
이런 말을 하는 스스로가 자신도 믿기지 않고 웃긴지 목소리엔 자조가 섞여있었다.
"네가 없었고, 나도 없었지. 생명을 위해 연구한답시고 생명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결국 세상 모든 것은 사라져가는 것들 뿐이라는 사실 밖에 없었고. 만났다 하면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떠나고, 사라지고. 결국 뒤돌아보아도 남는 건 아무것도 없고……!"
분명 아몬은 고개를 들어 모험가를 바라보며 소리치고 있었지만, 소리치고 있는 대상은 모험가가 아닌 누군가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걸 바라보고 답을 주는 사람은 없고. 아무리 나아가려고 해도 결국은 제자리나 더 뒤로 끌려갈 뿐이고. 다들, 다들 힘들어하는데. 나는 대체 뭘 위해 이곳에 있는 건지 모르겠고."
연구소를 떠나고서 어떤 곳을 방문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경험을 하고 생각을 했다. 그 결과가 아마 이거일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끝나는 게 낫지않냐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부정해줄…… 너는 없고. 너라면, 너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너라면 뭔가 달랐을까. 너라면……. 그래도 살아가는 게, 나아가는 게 나은 것이라 말해줬을까? 이렇게 괴로운데? 결국 너도 파랑새도……. 내 곁을 떠났는데도……?"
모험가는 조심스레 아몬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아몬은 매몰차게 모험가의 손을 뿌리쳤다. 모험가는 두 눈을 꾹 감았다 뜬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괜찮아요."
모험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데시온 위원회 사람들이 아몬을 끌고갔다. 소란스러웠던 달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험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들이마신 공기는 차가웠지만, 아무래도 제정신을 차리기엔 부족한 모양이었다.
문득 가끔 꿈에서 보는 풍경이 떠올랐다. 새하얀 사람과 새하얀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새하얀 사람에게 사람은 괜찮다고 말하는 누군가와 사람을 사랑하는 이가 알고 있다고 답하는 그 장면을 생각했다. 사람은 어떤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을거란 그 따뜻한 마음이 지금은 너무나도 아득히 멀고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아몬은 결국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는데. 정말로 사람은 괜찮은 것인가.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아몬은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해줄 자신, 모험가가 없었다며 한탄을 했다. 그러면 아무도 답을 해줄 수 없는 모험가의 질문 또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몬도 이런 비참한 기분이었을까. 올라다본 우주는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고, 그 속에 있는 별들은 반짝이고 있었다. 이 우주 너머에 아몬이 가고 싶어한 울티마 툴레가 있을터였다. 그곳에 도착하면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해줄 누군가와 만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존재는 없을것이라고 모험가는 문득 생각했다.
"돌아갈까……. 아이테리스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해도 자신들이 있을 곳은 우주는 아니었고, 달도 아니었다. 수많은 생명이 숨을 쉬고 있는 아이테리스였다. 비록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한 자신은 아이테리스에서 살아가야 했으니까. 모험가는 일단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달에서 본 푸른 아이테리스가 굉장히 슬픔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