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널 판타지 14 효월의 종언 네타가 있습니다.
- 모험가(빛의 전사)와 헤르메스의 드림글입니다.
드림주인 모험가(빛의 전사)의 이름과 개인설정 등이 나옵니다. - 여러모로 게임 내 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날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 진짜로 오작동을 일으켰다. 헤르메스는 잠시동안 기억을 잃어버리고 마는데.
(2022.07.22 포스타입에 업로드 했던 글)
엘피스에서 사건사고가 나면 얼마나 날 것인가. 이 평화로운 곳에선 자신의 일따윈 없고 평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아들러에겐 있었다.
빛의 전사, 영웅, 모험가. 여러가지 호칭을 이름대신 사용해 온 아들러지만, 스스로는 심부름꾼이라는 호칭이 제일 적합한 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정도로 자질구레한 일부터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까지 맡겨지고 처리해왔다. 보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남에게 등떠밀려 한 거라기엔 자의로 한 것들도 많았다. 그래도 느긋하고 평온한 일상을 즐기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엘피스에 도착하고, 헤르메스의 곁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런 일상을 즐길 수 있으리란 꿈을 꿨다. 엘피스는 아름다웠고, 차분한 분위기가 흘렀다. 무엇보다 고대인들이 사는 곳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하거나, 힘을 쓸 일 없이 그들이 척척 알아서 할 것이라 믿었다.
"아들러, 그쪽으로 도망갔어!"
서둘러 활을 꺼내들고 얇게 만들어진 이데아 크리스탈을 끼웠다. 다른 이데아를 들고 도망친 오레이아스를 붙잡는 일을 부탁받았는데, 그 오레이아스가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포획용으로 준비된 이데아를 빌려서 그 이데아를 활로 쏴 오레이아스를 잡을 계획이었다. 아들러에게 일을 맡긴 사람도 오레이아스 포획을 함께 하고 있었다.
오랜시간 적과 싸우면서 단련된 활솜씨는 아들러의 몇 안되는 자랑이었다. 그야말로 백발백중의 명사수. 다른건 자랑하지 못해도, 활을 쏘는 실력만큼은 고대인들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마음을 갖고 이데아 크리스탈을 쏘았다. 날아가던 이데아 크리스탈은 정확히 오레이아스 머리 위에서 작동하여 펼쳐진 그물이 오레이아스를 포획했다. 아들러가 활을 접고 뿌듯한 표정을 짓고있자 한 고대인이 오레이아스 곁으로 열심히 달려갔다.
"아, 이데아도 무사해."
오레이아스가 훔쳐간 이데아도 다행히 무사한 모양이었다. 천천히 고대인의 곁으로 다가가자 그는 붙잡은 오레이아스를 놓아주고 이데아를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고마워. 너는 상당히 우수한 사역마구나?"
엘피스에 도착해서 대체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를 말을 들으며 아들러는 웃었다. 조심히 돌아가라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함께 하며, 그는 작은 이데아를 몇 개 건네주고는 떠나갔다. 너무나 익숙한 의뢰의 마지막 순간을 배웅하고 모험가는 어깨를 돌렸다. 작은 사역마 하나 잡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약간 지친 느낌이 들었다.
천측원으로 돌아가면 또 어느 곤란한 고대인이 부탁을 해올지 몰랐으니 당장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젬의 사역마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것에 더해 이제 엘피스 고대인들에게 우수한 사역마라는 평가까지 더해지니 네가 그 사역마구나? 하며 다가오는 고대인들이 점점 늘어났다. 심지어 요새는 헤르메스의 곁에 있게 되면서 더더욱 관심도가 늘어난 느낌이었다. 늘 메테이온만 함께하던 헤르메스가 낯선 인간형 사역마를 데리고 다니고 있으니 관심이 갈 만은 했다. 아들러도 그건 이해가 갔다.
그럼 어디로 가야하나. 마땅히 갈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헤르메스와 함께 다니면서 엘피스의 모든 곳으로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어디로 갈까 생각하면 늘 막막했다. 아직 엘피스가 익숙해지지 않은걸까. 아들러는 투덜투덜 소리를 내면서 발 앞을 끌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아들러 발견!"
아무도 없을거라 생각한 곳에서 크게 목소리가 들린 탓인지 깜짝 놀라 몸이 크게 움찔하며 움직였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휙 돌리자 익숙한 파란색이 눈에 들어왔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이 천천히 진정하는 느낌이 들고, 아들러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메테이온……"
"있잖아, 지금 굉장히, 큰일! 이야!"
놀란 모습의 메테이온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와 아들러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한건지 붙잡고 당기는 손에는 힘이 꽤 많이 들어가 있었다. 메테이온에게 이렇게 힘줘서 당겨진 일이 있었던가. 상황을 알지 못하는 아들러는 그저 메테이온이 당기는 방향으로 끌려가듯 따라갔다.
무슨 일이냐고 달려가는 중에 물어봤지만, 빨리 가자는 소리만 돌아왔을 뿐 상황 설명을 들을 순 없었다. 아무래도 도착해서 다시 묻거나 스스로 파악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단 하나 알 수 있는건, 메테이온이 이렇게 당황했으니 분명 헤르메스 관련 일일거란 사실이었다. 또 어떤 창조생물에게 당한걸까. 대충 예상하면서 발을 옮겼다.
휘페르보레아 조물원까지 쉬지도 않고 이동하자, 아무리 메테이온과 아들러라고 해도 숨이 찼다. 헉헉 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조물원 앞에서 발을 멈춰섰다. 그곳에는 많은 엘피스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에요?"
"메테이온, 어디를 갔나 했더니 아들러를 불러왔구나."
수많은 인파 사이에 쓰러져있는 헤르메스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몸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 들어 아들러는 인파를 헤치고 안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쓰러진 헤르메스의 안색이 안좋아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평온해보일 정도였다.
"카이로스를 사용하다가, 오작동을 일으킨 모양이야. 그 당시 카이로스 사용을 주관하고 있던 헤르메스가 가장 큰 피해를 봤어."
"다른 피해는 없나요?"
아들러의 말에 한 고대인이 고개를 저었다.
"카이로스가 사용될 예정인 창조 생물과 그 생물의 관찰자 모두 잠깐 기억혼란을 보였지만, 금방 되돌아왔어. 단지 헤르메스가 쓰러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치료반을 불렀다."
"기다리는 중인거군요……"
"그래."
어느새 메테이온도 아들러의 옆에 와 앉아있었다. 쓰러진 헤르메스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메테이온을 보고 아들러도 헤르메스를 내려다보았다. 외상은 없어보였다. 있었다면, 직원들이 이렇게 주위에서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이로스가 어떤 오작동을 일으켰는지,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치료반이 오기 전까지 헤르메스를 건드리는건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알아, 알고있는데.'
생각과 마음은 때로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곤 했다. 그리고 지금이 딱 그 순간이었다. 머리로는 기다리고 있는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게 답답했다. 자신의 회복은 얼마 도움이 도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일단 지팡이라도 들고 회복을 시키고 싶었다. 일어나라며 흔들며 깨우고도 싶었다. 왜 다들 보고만 있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마 메테이온도 비슷한 마음이라 자신을 부르러 왔으리라. 아들러는 헤르메스를 바라보는 메테이온의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메테이온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실례하겠습니다! 비켜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반이 찾아오고, 헤르메스의 응급처치를 끝냈다. 제대로 검사와 치료를 하기 위해 헤르메스를 건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동행자는 같은 피해자인 관찰자와 그의 사역마인 메테이온이었다. 나머지 사람은 대기하고 있으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들은 떠났다.
"……."
자신은 이곳에선 아젬의 사역마였다. 엘피스에서 일어난 사고에 끼어들 수 있는 위치가 아니란건 알 수 있었다. 헤르메스가 사고를 당하고 이동할 때 같이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속상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따라가는 메테이온이 몇번이고 뒤를 돌아봐 아들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걸 메테이온도 알고 있기에, 아들러를 데리고 가진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들러는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고대인 몇이 아들러의 어깨를 토닥여주기도 하면서, 별거 아니라며 말을 건네주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헤르메스가 걱정이 되는것도 되는거지만, 이럴 때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의 위치를 바꾸고싶은 마음도 있었다. 메테이온과 같이 헤르메스의 곁에서 걱정할 수 있으면. 물론 자신이 걱정한다고 무언가 바뀌는 것은 아닐테지만. 아들러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이곳에 서 있는다고 해서 뭔가 되는게 아니었다. 조물원 직원들은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갔고, 아들러는 천측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단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있어야 나중에 메테이온이 자신을 찾을 때 쉽게 찾을 수 있을라 생각했다.
천측원에 돌아가 자신의 방에 들어가자 정적이 아들러를 감쌌다. 침대에 앉아 바닥을 내려다보며 헤르메스가 쓰러져있던 상황이 몇번이고 눈 앞에 아른거렸다. 아니, 저절로 기억이 떠올라 아들러의 머리를 헤집어놓으며 괴롭혔다. 괜찮을거라고 생각하는 아들러를 비웃듯이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몇번이고 재생되고 있었다. 맞잡은 손과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초조함의 증상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 알 수 없을 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곧장 아들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확 열자 그 앞에는 한 고대인이 서 있었다.
"아, 있었구나. 메테이온이 방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왔는데, 맞았네."
"헤르메스는요?"
"다행히 외상이나 다른 문제는 없어. 단지 카이로스의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이니까 혹시 기억에 무슨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 눈 뜨기를 기다리는 중이야. 우리 예상으로는 곧 눈을 뜰 것 같다."
외상이나 관측되는 다른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에 안심하다 카이로스 이름이 나오자 아들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 이번 사고는 카이로스에 의한 사고였다. 문제가 있다면 기억쪽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고대인들이니 뭔가 방법이 따로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방법이나 그런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며 아들러는 마음을 다스렸다.
"메테이온도 기다리니까, 갈래?"
"가도 되나요?"
"응급처치는 다 끝났고, 이제 눈뜨기만 기다릴 뿐이라 상관없어. 그리고 메테이온이 자꾸 너를 찾더라."
"갈게요, 당장 갈게요!"
아들러가 이미 위치가 어디인지 알고있기 때문인지, 찾아온 고대인은 안내할 생각 없이 몸을 비켜 문을 지나갈 수 있는 자리만 만들어주었다. 그의 예상대로 자신이 지나갈 공간이 생기자마자 아들러는 밖을 향해 달려나갔다. 정말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뒷모습을 고대인은 웃으며 바라보았다. 누가보면 날개는 없을지언정 빠르기로는 헤르메스의 창조물이라고 납득할만한 빠르기였다.
이곳에 온지 시간이 지났고, 헤르메스를 따라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도 했다. 지리는 어느정도 파악해놨다. 헤르메스가 누워있는 곳도 어디인지 알았다. 망설임없이 한 건물을 향해 달려가자 그곳에 있던 고대인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친근한 말투로 이름을 불렀다.
"아들러, 소장님은 위층이야."
"감사해요!"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지도 않은 채 인사를 하고는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위에 올라가자 방 하나의 문만 닫혀있고, 나머지는 열려있었다. 누가봐도 저곳이었기에 망설임없이 닫힌 문을 힘줘 열었다.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메테이온의 뒷모습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뒤를 돌아본 메테이온이 아들러를 보고는 약간 표정이 밝아졌다. 잠시 문을 잡고 헉헉 숨을 몰아쉬며 서있던 아들러가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문이 스스륵 닫히더니 쿵하고 완전히 닫히는 소리가 났다.
메테이온이 서있는 곳 앞에는 침대가 있었고, 그곳에는 누워있는 헤르메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들러는 메테이온의 옆에 서서 평온한 표정의 헤르메스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 보였다.
"헤르메스, 안 일어나."
"괜찮아. 일어날거야. 곧 눈뜰 거라고 다른 사람들이 그랬지?"
"응……."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댄 메테이온이 아들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아들러가 애써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면 기다리자고 입을 열었다. 방을 둘러보고 의자가 있는 것을 확인한 아들러는 메테이온에게 앉겠냐고 말을 했지만, 메테이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 방에 있는 사람 중 저 의자를 쓸 사람은 없는 것 같았기에, 아들러는 굳이 의자를 끌고오지 않았다. 자신도 앉을 생각은 없었기에.
고대인들의 능력은 정말로 뛰어났기에, 그들이 이런 이유로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말을 하면 대부분 그 이유가 맞았다. 물론 대부분이니 안맞을 때도 많았지만,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의 일일 수록 정확도는 높아졌다. 아들러에게 헤르메스에 관한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도 그런 치유쪽에 전문인 사람이었으므로, 그가 말한 '곧 일어날 것 같다.'는 말은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메테이온은 불안한지 자신의 옆에 서있는 아들러에게 왼손을 뻗더니 오른손을 꼭 잡았다. 그런 메테이온을 보고 아들러가 웃으며 메테이온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메테이온 스스로의 불안이기도 했겠지만, 아마 곁에 있는 자신의 불안도 받아들여 더 불안해진거겠지. 그런 미안함과 헤르메스를 소중히 여기는 동지로서의 이해의 마음을 담아 손을 맞잡았다.
"으음……."
마치 자는 사람이 일어나 듯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헤르메스의 몸이 움직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두 눈이 뜨고는 깜빡깜빡 눈꺼풀이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두사람이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헤르메스!"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른건 메테이온이었다. 메테이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헤르메스가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얕게 웃음지었다.
"아, 메테이온……. 계속 곁에 있었던거야?"
"응, 헤르메스 쓰러졌어. 그래서, 계속, 있었어."
"걱정을 끼쳤구나……. 미안해. 으음, 그래서 나는 치료원에 있는건가……."
"헤르메스, 기억해?"
잠시 메테이온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인 헤르메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기억을 되감고 있는 중이었던 모양이었다.
"응, 조물원에서 사고가 났지. 카이로스를 쓰다가……. 그래, 같이 있던 관찰자는 어떻게 됐어?"
"다른 관찰자들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 기억에도 문제는 없다는 것 같았어요. 그 장소에서 쓰러져 있었던 건 당신 뿐이에요, 헤르메스."
"그렇구나……."
아들러의 말을 듣고 헤르메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붙잡아주려고 메테이온과 아들러가 손을 뻗었지만, 헤르메스가 손을 들고 흔들어 보이며 거절의 표현을 했다. 혼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말로 몸에는 큰 이상이 없는 모양이라 안심이 되는 한편, 잡아주지 않은 것에 약간의 서운함이 느껴질 때.
"그런데"
헤르메스의 말이 들려왔다.
"너는 누구니? 본 적이 없는 창조 생물인데……, 혹시, 치료반에서 새로 만든 아이니?"
아들러는 잠시 말을 잃었다. 카이로스로 인한 사고였다. 그로인해 기억에 뭔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단 사실은 듣긴 했다. 그러나 일어나자마자 자신이 사고를 당한 사실과 메테이온을 기억하는 모습으로 별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 기억들과 자신은 좀 다른 분류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헤르메스의 말을 들은 메테이온이 오히려 아들러보다 많이 놀라더니, 맞잡은 손을 놓고 아들러를 붙잡았다.
"아들러야, 아들러는 아들러야!"
"그렇구나, 아들러라는 이름이구나. 메테이온과는 몇번 만난거니? 사이가 좋구나."
"헤르메스 기억, 안나?"
"……나도, 같이 만났던가? 하긴, 치료반의 창조 생물이면 나에게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을리는 없을테고."
"아니야, 아니야 헤르메스!"
메테이온이 어찌 할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자 헤르메스가 당황해서 메테이온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래도 아들러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진짜인 모양이었다. 이름부터, 어떻게 만났는지까지 전부다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단기적인 문제인건지, 아니면 카이로스로 인해 완전히 지워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 슬픈 마음. 그런 마음이 몰아침과 동시에 아들러의 머리엔 한순간 스쳐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이걸 입 밖으로 꺼내버리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이 말이 틀리다고 증언을 해줄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렇지만…….'
자신은 '아젬의 사역마'이고, 그래서 헤르메스와 연관이 없어서 같이 지내고 있음에도 문제가 생겼을 때 불러주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 관계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헤르메스 저는요."
메테이온을 바라보던 헤르메스가 고개를 돌려 아들러를 바라보았다.
"저는, 아들러입니다. 당신의 사역마예요."
저질렀다. 저질러버렸다. 그런 생각이 아들러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헤르메스를 바라보던 메테이온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아들러를 바라보았다.
"어, 어?"
가장 놀란건 아무래도 헤르메스인 것 같았다. 약간 김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반짝이는 녹색눈이 지금까지 봤던 그 어느때보다 커지고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누가봐도 놀란 표정으로 헤르메스는 아들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내?"
아들러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왔으면 더이상 물러날 순 없다. 이렇게 된거 만약 잠깐동안 기억 혼란이 생긴 것 뿐이라면,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속이겠다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치, 메테이온."
아들러에게 불려진 메테이온은 아들러와 헤르메스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두 손은 어떻게 할 줄 모르고, 위로 들었다가 아래로 내렸다가 헤르메스에게 뻗었다가, 아들러에게 뻗었다가 바빴다.
"어, 음. 그러니까, 그게, 어……. 아들러는, 아들러는, 친구……."
"응, 우린 친구지. 그치?"
"응, 친구야. 친구……."
메테이온이 한번 헤르메스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헤르메스에게 완전히 거짓말을 하긴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친구라고 말만 해주면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할 자신이 아들러에겐 있었다.
"봐봐요. 메테이온도 이렇게 말하고 있잖아요."
"그,러네. 하지만 내가 메테이온 말고도 사역마를……?"
"믿기 어려운 건 이해해요. 카이로스로 인한 사고니까. 기억에 혼란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주실 순 없을까요?"
아들러의 차분한 말에 헤르메스는 잠시 고개를 숙여 고민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너의 말을 믿을게. 메테이온과 친근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내가 카이로스로 인한 사고로 기억이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확실해 질 이야기이기도 하고."
"……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헤르메스가 일어난 줄 알고 찾아온 고대인이 좀 더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다며 헤르메스를 눕혔다. 몇가지 몸상태를 확인 한 후 기억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보았다. 그 결과 다른 기억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 확인되었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다시 일을 시작해도 별 문제는 없어보였다. 헤르메스의 머릿속에서 지워진건 아들러에 관한 기억 뿐이었다.
제대로 된 검사를 위해 아들러와 메테이온은 방으로 돌려보낸 후 검사를 진행했다. 모든 검사가 끝난 후 흰색 가면을 얼굴에 쓰던 헤르메스가 자신을 찾아온 고대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혹시 메테이온의 곁에 있던 뿔을 가진 아이를 알아?"
"아들러요? 요새 헤르메스를 졸졸 쫓아다니던 그 아이잖아요. ……혹시 기억 못하시나요?"
"……응.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아이고, 카이로스로 문제가 생긴 기억이 그 쪽인가보네요. 헤르메스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내심 상처받았겠네요."
"……그래?"
기억에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는데, 있다는 걸 확인 했으니 혹시 다른 기억에도 문제가 없는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헤르메스도 일에 지장이 생기는 문제가 있으면 안되니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휴가란 형식으로 헤르메스는 당분간 일에서 손을 놓기로 했다. 다행히 급한 일은 없었으니, 조금쯤 쉬어도 문제는 없을터였다.
헤르메스는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둘을 상상하며 문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역마를 또 만들었는지는 알 순 없었으나, 자신을 쫓아다니며 자신을 좋아했다는 말에 그저 그 아이를 잊어버린 미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야기는 들었어. 그래서, 헤르메스의 사역마라고 말해버렸다고?"
"그래! 뭔가 방법 없을까? 휘틀로다이우스. 아젬의 사역마였지만 어, 어떻게 해서 헤르메스가 소유권을 받았다거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 어떻게 안될까?"
"너 진심이구나?"
"나는 언제나 진심이었어, 농담은 한 적 없는데."
웃음을 흘리는 휘틀로다이우스가 손을 내저으며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살짝 뾰로통한 표정으로 아들러가 다시 자리에 앉자 휘틀로다이우스가 손을 모아 턱을 받치곤 모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네. 일반적인 이데아라면 모두가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쓰이기도 하니까 별 문제는 없겠지만, 사역마의 경우는 이데아를 제출하기는 하지만 그게 공용으로 사용되는 일은 좀 없다보니까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는 일도 좀처럼 없어. 물론 한 연구를 위해 하나의 사역마를 여럿 복제하는 경우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이건 그런 일은 또 아니니까."
"역시 소유권을 넘겨받는 일은 많이 복잡해?"
"공식적인 절차를 따지자면 꽤 귀찮지 않을까? 무엇보다 사역마의 주인 당사자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점에선 지금은 더더욱. 너는 '아젬'의 사역마니까."
"……."
휘틀로다이우스는 아젬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무슨 뜻으로 강조한 것인지 아들러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첫째는 아젬에게서 허가를 받는 일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었으며, 둘째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은 정말로 아젬의 사역마가 아니니 아젬의 허가를 받을 수 없을거란 이야기였다.
"괜찮지 않을까. 그 점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도?"
"……뭐? 정말? 도와줄거야?"
"너에게 아젬의 사역마라고 말을 하라고 한 건 나였고? 그때는 네가 제대로 된 위치가 없어서 적당히 말했던 거였는데, 이제 헤르메스의 곁에 있기로 했다면 증인 정도는 되어줄게."
"정말로 괜찮아?"
"후후, 기뻐보이네. 하지만, 헤르메스의 기억이 되돌아온다면 어차피 거짓말이란 것은 들키는 거잖아? 그리고 너의 원 주인은?"
이곳에서 자신은 누군가의 창조 생물 혹은 사역마 정도 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생각해보았다. 너의 원 주인이라는 말에 아들러는 잠시 멈칫했다가 웃었다.
"기억이 되돌아온다면 평소의 나쁜 장난 중 하나가 될 거고, 원 주인은 문제 없어."
원주인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원주인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자기 자신이겠지. 헤르메스의 사역마라는 위치를 갖고 싶은 것은 자신의 진심이었기에, 원주인 또한 같은 마음일 게 당연했다.
휘틀로다이우스는 흐음 하고 소리를 작게 내더니 그렇다면 자신이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말을 해주었다.
"메테이온도 이데아를 등록하지 않은 아이니까, 네가 이데아를 등록하지 않은 것도 크게 이상하게 생각되진 않을거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휘틀로다이우스."
"대신 재미있어보이니까,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이야기 해줘야해? 치료반의 이야기로는 사고로 일어난거라 제대로 된 프로세스가 작동되지 않아, 헤르메스의 기억이 되돌아올 것 같다던데."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어. 설마……. 그래서 시원하게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도와주겠다고 한거야?"
"하하하. 귀찮은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았는걸."
기가 막힌 표정으로 차를 마시려던 아들러가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자, 휘틀로다이우스가 다시 한 번 웃음지었다.
"하지만 너도 힘든 길을 선택해 가는구나.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어?"
"있어."
아들러의 말은 즉답이었다.
"헤르메스가 쓰러졌다는 소리를 메테이온에게 들을 때까지 나는 몰랐어. 나는 이데아 크리스탈을 훔친 오레이아스를 잡는 일을 돕고있었고. 치료와 검진을 위해 이송될 때도 헤르메스의 사역마인 메테이온은 함께 갔는데, 나는 같이 갈 수가 없었어. 헤르메스와 관련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나는, 아젬의 사역마고……. 그게 아니더라도, 헤르메스의 무엇은 아니었으니까."
"정말, 인간을 사랑하는 창조 생물이라니 모두 들으면 놀랄거야."
"남에게 말할 생각은 없으면서."
"그치만 남의 사랑을 떠벌리고 다니는 취미는 없으니까? 그 점은 나도 조심하고 있어."
누구에 관한 이야기일지 궁금했지만, 물어도 답해주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아들러는 그냥 웃었다. 자신의 마음도 말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남의 이야기를 할리 없었다. 본인 입으로 떠벌리고 다니는 취미는 없다고 말했으니까.
창조물관리국의 국장인 휘틀로다이우스가 증인이 되어준다면 헤르메스가 자신을 자신의 사역마라고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요며칠 헤르메스의 안정과 검사를 위해 잠시 헤르메스와 떨어져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내일이면 헤르메스도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바뀌지 않을지 생각하면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을거라 생각했다. 헤르메스와 관련된 일로 나쁜 적은 없었으니까.
휘틀로다이우스와는 그 이후 가벼운 대화를 나눈 후, 휘틀로다이우스를 알아본 사람의 등장으로 아들러는 자리를 일어나게 되었다. 혼자서 엘피스를 돌아다니고 있는 메테이온과 만나 잠시 같이 논 후 같이 천측원으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다시 헤르메스와 같이 있을 수 있겠지. 하는 메테이온의 말에 그럴거라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하지만, 어째서 아들러가, 사역마?"
"……미안해, 불쾌했어?"
"아니. 그렇지만, 아들러, 헤르메스 사역마 아냐."
"메테이온은 왜 헤르메스가 쓰러진 걸 나에게 알려주려고 왔어?"
아들러의 질문에 메테이온은 잠시 고민을 했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지 음~ 하고 소리를 냈다. 고민을 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
"미안해, 어려운걸 물었나?"
"왜? 인진 몰라. 그냥, 아들러가 와줬음, 했어. 헤르메스 일이니까……. 늘 같이 였으니까. 이번에도, 같이."
"고마워. 나도 그러고 싶었어. 헤르메스 일이면, 바로 달려가고 싶고 같이 있고 싶었어. 근데 그러려면 헤르메스의 사역마가 아니면 안되는 것 같더라고."
"그러면 아들러, 쭉 함께 있어?"
"아마도?"
"그러면, 나 가만히 있을게. 나 아들러 좋아. 아마, 헤르메스도 좋아. 셋이 같이 쭉~"
"그래 셋이서 계속 함께 있자."
웃는 메테이온의 모습을 보면서 아들러는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걸거라고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았다. 헤르메스가 정말 기억을 되찾는다고 하면 그건 좋은 일이고. 아니라고 해봤자, 자신에 관한 기억만 사라진 것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새로운 관계로 다시 쌓아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번엔 이전보다 좀 더 가까운 관계로.
날은 어느새 어두워졌고, 메테이온을 방으로 데려다준 뒤 아들러도 자신의 방에 가서 누웠다. 내일이었다. 내일이면 이제 자신도 공식적으로 '헤르메스의 사역마'가 되는 거였다.
해가 떴고, 아침이 찾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단장을 한 후 로브를 입었다. 헤르메스와 메테이온은 항상 자기보다 아침이 빨랐기에, 지금쯤이면 둘은 당연히 일어나 있겠지. 혹시 늦을까 싶어 서둘러 방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왔다. 혹시 싶어 메테이온의 방에 노크를 해봤지만, 답이 없었다. 역시 먼저 일어나 나간 모양이었다.
약간 바람이 불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엘피스는 언제나 좋은 날씨였지만, 기분탓인지 오늘은 유독 맑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계단 밑으로 천천히 향하자 보이는 건 커다란 한 사람과 파란 작은 사람 총 둘이었다. 파란 작은 사람은 메테이온이었고.
"아들러 나왔다!"
메테이온의 말에 고개를 돌려 아들러를 쳐다보는 커다란 사람은 헤르메스였다. 하얀 가면을 쓴 모습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져 아들러는 살짝 긴장했다. 천천히 계단을 다 내려와 두 사람 옆에 서자 메테이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잤어?"
"응, 좋은 아침이야 메테이온. 헤르메스는, 이제 나와도 괜찮은거예요?"
"응? 아, 그래. 이제 일에 복귀해도 괜찮다고 들었어. 아무래도 너와 관련된 일 외에는 문제있는 기억이 없는 모양이야."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아들러의 말을 잠시 듣던 헤르메스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올리더니, 살며시 아들러의 머리에 얹었다. 평소엔 당해본 적 없는 행동에 아들러는 놀라서 몸이 굳어버렸다. 놀란 두 눈을 꿈뻑이며 헤르메스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미안해. 잊어버리다니 많이 속상했지? 어쩌면 기억이 되돌아올 수도 있다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해."
"아,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아요."
"그래, 착한 아이구나."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에는 애정이 담겨있었다. 메테이온에게 이런 적은 있었지만, 자신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은 없어 놀란 아들러는 어떻게 반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에서 손이 떨어질 때까지 돌처럼 굳은 사람인 마냥 가만히 있다가 손이 떨어지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럼 갈까. 메테이온, 아들러. 쉬는 동안 관찰해야 할 일이 쌓였으니까 오늘은 부지런하게 다녀야할거야."
"네."
"응, 헤르메스, 일 하러 가자."
헤르메스가 일을 할 때 따라다니는 건 이전에도 했던 일이기에 딱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 창조 생물들의 관찰을 하고, 기록을 한다. 그걸 옆에서 메테이온과 함께 바라보고 근처에 다른 창조 생물이 다가오는 것 같으면 내쫓았다. 관찰하는 창조 생물이 도망갈 것 같으면 붙잡았고, 공격할 것 같으면 중간에 막아섰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을 했지만, 헤르메스는 그럴 때마다 부드럽게 웃으며, 애정가득한 표정으로 수고했어 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제 역할이니까요."
"그동안 많이 당하긴 했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사역마를 데리고 다닐 생각까지 했을 줄은 몰랐어."
"그, 위험한 창조 생물을 관찰해야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아예 막아서기엔 헤르메스보단 약했으니까."
"그래, 창조 생물을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맞는 힘을 가진 또 다른 생명체의 도움이 필요로 할 때가 있지. 이전의 나도 그런 생각이었을까. 너는 적절히 대처해주기도 하고, 힘 조절도 할 줄 알고. 굉장한 걸. 휘틀로다이우스가 말한 대로 유능한 사역마구나."
헤르메스의 목소리는 조금 밝았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조금은 즐거워보이는 모습이었다. 메테이온도 그 마음에 동조하는 건지 평소보다 즐거운 모습으로 아들러의 곁에 붙어있었다. 어째서인지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헤르메스가 즐거워보이니 아들러도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헤르메스는 아들러와 메테이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관찰하고 있는 창조 생물에 관한 이야기와 일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창조 생물과 일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에도 잘 들었지만, 이번에는 그 내용이 조금 달랐다.
내용은 주로 이런 내용의 일이 있는데 약간 힘들다거나, 일이 쌓여서 지쳤다거나 하는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정말로 객관적인 정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헤르메스 개인의 생각과 감정에 관한 이야기. 지금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는 사적인 이야기였다.
"……일이 많이 쌓였군요."
"아무래도 쉬고 있었으니까."
"사고였는걸!"
"그렇네. 사고의 원인이 카이로스에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영향이 있었으니 카이로스도 다시 손을 봐야 할테고. 사고의 수습도 하게 됐고, 바쁘게 됐어."
"사고를 당한 당사자인데 가장 바쁘게 됐어요."
"아무래도 엘피스의 소장이니까. 카이로스를 만든 것도 나이고."
"모르는 건 아닌데."
헤르메스는 웃음을 흘리며 다시 한 번 아들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건 어린아이에게 보내는 따뜻한 애정 같은 것이라 아들러는 한참동안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그 애정이 어떤 면에선 그의 것이란 인증같은 것이라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동안 헤르메스의 곁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기도 했고 엘피스를 안내해주기도 했다. 일을 같이 다니기도 했고, 여러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휴식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거리는 있었다.
너는 다른 사람의 사역마이니까 자신이 다가갈 수 있는 거리는 이정도다. 그런 느낌이 문득문득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헤르메스의 사역마라고 밝힌 이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위험할 것 같으면 단호하게 그건 안된다고 말을 하기도 했고, 잘 할 때에는 확실하게 잘했다며 칭찬을 건네주기도 했다.
좀 더 사소한 일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위험하지 않은 곳에선 메테이온의 제안으로 셋이 손을 잡고 걸어가기도 했다.
예전과 크게 변한 건 없지만, 변한 부분이 조금씩 있었다. 그 부분이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으면서도, 결국 이전에는 어느정도의 선과 거리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지고 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해도 자신과 헤르메스에겐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헤르메스의 기억이 만약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이 정말로 헤르메스의 사역마인 건 아니었다. 언젠가는 들킬 날이 올 지도 모를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이어도 좋고, 들켜도 좋다는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이렇게 얻게 된 관계가 싫은건 아니었지만,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헤르메스와 자신의 관계란 대체 무엇인가. 그냥 수없이 많은 다른 창조 생물들 중에 하나일 뿐인 관계인건지. 헤르메스는 그 어떤 창조 생물에게도 다정하니까.
그런 생각을 잠깐 하던 중 헤르메스가 어떤 창조 생물의 덩굴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메테이온과 아들러가 근처로 다가가자, 헤르메스는 괜찮다며 두사람을 안심시켰다.
"죄, 죄송해요. 헤르메스. 잠깐 정말 아주 잠깐 다른 생각을 했을 뿐인데."
"아냐, 보지 못한 내 잘못인 걸. 너는 아무 잘못없어."
"아니에요, 그런거 다 신경써서 제가 챙겼어야 했는데."
"그렇지만, 보이지 않았어. 나도, 못봤어!"
"아무래도 기생하는 주변의 색에 동화하는 애였던 것 같아. 최근에 그런 생물이 하나 생겼거든. 다른 사람의 창조 생물을 보고 어떤 요소가 유행을 타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까."
로브에 묻은 흙을 털고, 나뭇잎을 털어내며 헤르메스는 괜찮다며 메테이온과 아들러를 진정시켰다.
"네가 경계할 만큼 위험한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반응하지 못한 것도 당연해. 하하, 이정도면 금방 보고가 올라오겠는걸."
"다친 곳은요?"
"없어. 괜찮아. 있지, 아들러."
"네?"
"창조 생물도 실수 할 수 있어. 못 볼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어. 잠깐 다른 곳에 시선을 둘 수도 있고, 너같이 지능이 있는 아이라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그 모든게 나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내 아이라면 특히, 그러지 않아줬으면 해. 괜찮아, 괜찮으니까."
아들러가 자신의 실수에 당황하자 진정시키려는 듯 헤르메스는 천천히 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흘리지 않는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좋아요, 헤르메스. 정말 좋은 이야기이고 고마운데."
"응?"
"그 덩굴부터 어떻게 풀고나서 말해요. 지금 걸려 넘어진 것만 문제인 것 같진 않거든요?!"
뒤늦게 헤르메스가 자신의 발을 보자 넘어진 원인인 것같은 덩굴이 다리에 감겨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닿은 것을 타고 올라가는 습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놀란 메테이온은 이미 덩굴의 위쪽을 건드려서 놓게 할 생각이었는지, 근처에 있었던 것 같은 나뭇가지를 들고 노력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힘이 강한지 생각대로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아들러는 날붙이라면 가지고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첫째 잘못해서 헤르메스를 다치게 할까봐 걱정이 되었고 둘째론 헤르메스가 이 덩굴을 가진 식물을 상처입히기 원하지 않을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발에 감겨있는 덩굴을 보고 나서야 헤르메스는 놀라더니 덩굴을 풀기 위해 손을 뻗었다.
"헤르메스!"
그러나 덩굴은 힘을 줘서 자신을 풀려고 하는 헤르메스의 손에도 얽히기 시작했다. 놀란 헤르메스를 보고 아들러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이런점도 좋아하지만 헤르메스는 약간 부주의한 부분이 있었다. 당장 말을 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다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르는 건 가장 마지막 방법이겠죠?"
"미안해. 가능하면 상처입히지 않는 방법으로 해줄래?"
"괜찮아요. 알고있으니까."
이럴까봐 몇가지 이데아를 챙겨왔다. 무슨 식물인진 알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무언가 닿았다고 이렇게 빨리 덩굴을 늘인다는 건 어느정도 생각이 있는 생명체라는 점이었다. 이곳에 있는 식물형 생명체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이라고 부를만한 부분이 있었다. 빛을 잘 찾아서 자라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건 약점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식물이지만, 눈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걸 사용하면 잠시동안 움직임을 멈출 수 있을터였다. 원초세계에 있던 식물형 마물들도 빛이나 발차기 등으로 인식하는 상대를 바꾸거나, 행동을 멈추기도 했다.
아들러는 헤르메스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활을 꺼냈다. 방법은 대충 간단했다. 가지고 있는 빛나는 이데아를 쏘아올려 엄청 눈부신 빛을 터트려서 눈부심을 자극한다.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헤르메스와 메테이온에게 경고를 하는 편이 좋았을까 생각했지만, 이미 움직이고 난 이후였다. 두 사람이면 알아서 대응할 수 있겠지. 아들러는 활에 크리스탈을 끼우면서 생각했다.
크리스탈을 끼우고 아들러는 망설임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아마 헤르메스를 붙잡고 있는 덩굴 생명체의 몸통이라고 생각이 드는 곳을 향해 쏘았다. 크리스탈은 쏘아지는 진동을 받으면 얼마 후에 자동으로 사용되게 설정이 되어 있었다. 식물 생명체의 몸에 박히기 전에 터질터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크리스탈은 부서지고, 안에 담긴 이데아가 터져나왔다.
시야 한가득 하얀 빛이 가득찼다. 이건 눈이 부시다는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밝음이었다. 너무 눈이 부시면 눈이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딱 그정도로 밝은 빛이 한번에 쏟아져내렸다. 가면으로 그나마 빛이 차단되는 헤르메스마저 눈을 감았다. 다행히 빛으로 덩굴은 스르륵 풀렸지만, 눈을 뜨지 못해 어딘가로 이동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자신의 몸이 들리는 걸 헤르메스는 느꼈다. 당황했지만,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손의 힘이 강한 것과 동시에, 자신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느낌상 아들러인 것 같았다.
달리는 소리와 바람이 느껴지고, 점차 눈부심도 가라앉을 때 헤르메스는 바닥에 내려놓아졌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자 어느새 메테이온을 안고서 달려오는 아들러의 모습이 보였다.
"헉, 허억……."
숨이 차는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돌아온 아들러는 천천히 메테이온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메테이온도 그제야 시야가 돌아오는지 눈을 뜨고느 두 눈을 몇번이고 깜빡였다.
"굉장해! 밝았어!"
"그런 이데아를 가지고 있었구나."
"저번에, 휘틀로, 다이우스가…… 왔을 때…… 허억, 받아, 놨어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들러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람을 업어들고 달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이번에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들러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아무리 크기가 키워졌다고 해도, 헤르메스는 자기보다 훨씬 더 키가 컸다. 머리 하나 이상, 아니 두 개쯤 차이가 나는 사람을 들고 달리는 일이 쉽진 않았다.
메테이온과 헤르메스가 걱정하며 다가오자 아들러는 웃었다.
"그냥 숨이, 차서요……."
"그래, 그럼 좀 쉬었다가 가자. 여기까진 안올테니까."
"네."
오늘의 관찰도 무난하게 지나가진 않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아들러는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느긋하게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헤르메스가 기억을 잃은지 며칠이 지났다. 정확히는 아들러에 관한 기억만 잃은지 며칠이 지났고, 그동안 아들러는 헤르메스의 사역마 라는 입장을 열심히 활용했다. 서류를 배달하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했으며, 식사에 관한 일로 조언이란 이름의 강요를 해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헤르메스는 못이기는 척 아들러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예전같았으면, 내가 헤르메스를 못이기고 결국 헤르메스 마음대로 됐겠지…….'
헤르메스가 준비해준 음식을 먹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던 아들러는 멀리서 오는 메테이온의 모습을 보았다. 오늘은 후유증이 없는지 헤르메스가 검사를 받으러 간 날이었다. 이번에는 메테이온도 아들러도 기다리고 있으란 소리를 듣고 따라가지 않았다.
"아들러, 헤르메스가."
"헤르메스가?"
"헤르메스가 아들러를 알아."
"응?"
"기억, 다 돌아왔어."
메테이온의 뒤에 큰 그림자가 보였다. 헤르메스였다. 아들러는 딱히 놀라지도 않고 멀리 있는 헤르메스를 바라보았다. 언제든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을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메테이온이 헤르메스가 기억을 되찾았다는 말을 해도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괜찮아? 거짓말, 했는데. 놀라지 않아?"
"괜찮아. 어느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거든. 오히려 놀라게 해서 미안해 메테이온."
"나는 괜찮아. 아들러가, 안괜찮아……."
메테이온의 말에 아들러는 쓰게 웃었다.
"이제 세 명, 같이 못있어?"
"글쎄. 그러진 않을 것 같은데. 헤르메스는 어떻게 생각하려나. 일단 이런 나쁜 장난을 한 건 맞으니까, 책임은 지고 혼은 나야겠지."
아들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메테이온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녀올게. 헤르메스랑 같이 돌아올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메테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헤르메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간 헤르메스는 어쩐지 곤란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
"거짓말 한 것은 미안해요, 헤르메스. 기억이 혼란스러운 걸 가지고 그런 말을 해서."
"아니. 너의 거짓말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은 없으니까 괜찮지만. 어째서 그런 나쁜 장난을 한거야?"
"휘틀로다이우스를 만났나요?"
"기억이 혼란스러운 나에게 네가 내 사역마가 맞다는 증인이 되어 준건 휘틀로다이우스니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
"검사 받으러간지 그렇게 오래된 거 같지 않은데, 빠르네요. 맞아요 나쁜 장난을 했어요. 헤르메스의 사역마면 좋을 것 같았으니까."
"어째서? 너에게 불편함을 준 부분이 있다면 언제라도 말해줬으면 고쳤을거야."
아들러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두 눈을 감았다 천천히 떴다. 그리고 가면 너머에 있는 헤르메스의 녹색 눈동자를 바라보려 노력했다.
"있잖아요 , 헤르메스. 당신이 쓰러졌을 때.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어요."
내뱉는 말은 차분했고, 목소리는 평소의 아들러의 목소리보다 살짝 낮았다. 감정을 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 덕분인지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너무 담백해서 아들러 스스로의 이야기보단 남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느낌이 났다.
"메테이온이 알려주려 오지 않았으면 전 몰랐을거고, 당신이 실려갈 때도 메테이온은 함께 갔는데 저는 따라 갈 수 없었어요. 그리고 만약 제가 저였다면, 일 하는 곳에 불러가 줬을건가요? 서류를 정리하는 일도, 배달하는 일도 저는 할 수 없었을 거 같은데."
"……아들러."
"나는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헤르메스랑 같이 다니는 것 뿐 아니라, 이것저것 돕고 싶기도 했고. 그냥... 헤르메스의 사역마라고 하면, 그냥 다니는 것과는 다르니까."
"그렇지만, 너는 내 사역마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나쁜 장난으로 거짓말을 한거죠. 될 수 없는 위치인거 알아요. 그러니까 지금이 기회다 싶어서 거짓말을 했어요. 미안해요. 잘못한 거 알아요. 그치만 헤르메스, 내가 말한 것들은 고친다고 고쳐질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것뿐이에요. 뭔가 벌이 내려진다면 마땅히 받을 거고, 당분간 헤르메스 근처에는 안갈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네 거짓말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으니까, 벌을 받을 일도 없을거야. 단지, 그러게. 네가 말한 것들은 앞으로 바뀔 수는 없을거야."
"그렇겠죠."
"그렇지만, 나는 너를 믿고 있고, 메테이온도 너를 좋아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쓰러졌을 때 너를 부른거겠지? 그것만으론 안되는걸까?"
"……."
"내 사역마일 순 없겠지만, 너는 너라는 위치에서 가장 우리에게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 관찰할 때는 늘 함께하고, 휴식을 취할 때도 함께 다니는 일이 많고. 메테이온은 너의 이야기를 하면 늘 기분이 좋은 것 같지. 나도 네가 있으면 좀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어. 그걸론 안되는 걸까?"
아들러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렇지만 헤르메스를 올려다보는 눈동자는 무슨 말을 호소하고 싶은 듯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호소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들러는 끝끝내 그 내용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기에 헤르메스는 그 호소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알아챘어도,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네, 그걸로 됐어요."
헤르메스는 저 말이 담긴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건 체념이었다. 자신이 더 이상 바라지 못하는 것에 갖는 마음. 더이상 무언가 할 수 없음에 생겨나는 마음. 수많은 창조 생물들을 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 아래 떠나보내야 했을 때 자신이 몇 번이고 말에 담아 흘려보냈던 감정이었다.
"아들러."
"괜찮아요. 하지만, 정말 당분간은 혼자 있게 해주세요. 헤르메스 곁에 있기 미안하기도 하니까. 자숙하고 있을게요. 괜찮아지면……, 그땐 또 같이 다녀도 괜찮죠?"
"물론이야. 메테이온과 함께 기다리고 있을게."
"메테이온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함께 가요."
드물게 앞서 걸어가는 아들러의 등을 보며 헤르메스는 걸어갔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메테이온이 달려나왔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메테이온이 시야에 들어오자 마자 발걸음을 멈췄다.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괜찮냐는 메테이온의 말에 아들러가 당분간 자숙하기로 했다며, 다음에 같이 놀자 이야기를 하고 웃었다. 체념을 가슴에 담은 채로 웃을 수 있는 마음이 대체 어떤 마음일지 헤르메스는 알 수 없었다.
다음에 보자는 작별인사를 하고 아들러는 두 사람의 곁을 떠나갔다. 헤르메스가 하는 말은 너무나 예상대로라서 슬퍼할 여유도 없었다. 너무나도,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였다. 왜냐면 자신은 헤르메스의 사역마가 아니었으니까.
헤르메스와 메테이온의 뭐도 아니었으니까. 눈물조차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야기 하다가 울까봐 걱정한 것에 비해선 담담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전부 끝내고 자신의 방까지 올 수 있었다.
방에 도착해서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깊은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계속 갖지 못할 위치였다면, 모르는 상태가 좋았을텐데. 그런 후회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자신이 아닌, '헤르메스의 사역마'를 향해 웃어주던 그의 미소가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건 영영 자신이 갖지 못할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