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널 판타지 14(FF14) 칠흑의 반역자 (레이드 스토리 포함) ~ 효월의 종언 (6.1 초반 포함) 의 네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효월의 종언 엔딩 이후의 시간대로 썼습니다. - 빛의 전사의 호칭은 '모험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크게 묘사를 하지 않지만, 여성 캐릭터이며 주직업은 음유시인이라는 설정입니다. - 논커플링 일상물을 지향하며 쓴 글입니다.
- 캐해석의 차이, 설정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상당한 날조로 쓴 글입니다. 본 글은 게임의 공식 설정을 따르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점이 불편하시면, 뒤로 버튼을 누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파랑새와 모험가가 새벽의 혈맹을 보러 가는 일상 마지막
(2023.05.30 포스타입에 업로드 했던 글)
살을 에는 추위에 모험가는 자신의 팔을 부둥켜 안고 덜덜 떨었다. 원래도 추운 곳이지만 밤이 되니 그 추위가 더 매서워졌다. 밤 늦게라면 두 사람도 쉬거나 자느라 몰래 찾아가기 쉽지 않을까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밀어둔건데, 이렇게 추위에 고생할 줄 알았으면 생각을 달리해볼걸 그랬다.
파랑새에게는 추위에 내성이 생기는 약도 바르고, 자신의 두꺼운 옷과 따뜻한 품 안에 숨어있으라 말해두어 뽀득뽀득 눈길을 걸어가는 모험가의 곁에 파랑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꺼운 옷을 입고 덜덜 떨며 걸어가는 모습이 조난자처럼 보인건지 저 멀리서 사람의 모습을 본 병사가 빠르게 모험가를 향해 달려왔다.
"거기. 파견단의 사람인가? 여기는 위험하고, 밤이라서 춥다. 일행이 있는 곳으로 어서 돌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지만, 밤에 뛰쳐나오는 게 아니야."
숨이 차서 헉헉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도 병사는 잠시 숨고르는 일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모험가에게 전부 전달했다. 모험가조차 뛰고 난 다음엔 숨을 한번 고르고 나서 말을 할 수 있는데, 체력 단련은 잘 했나보다며 칭찬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혹시 율루스 밑에 있는 병사야?"
"뭐? 율루스님을 알아?"
병사의 반응에 모험가는 활짝 웃었다. 그 반응이 이상했는지 병사는 잠시 가늘고 날카로운 눈으로 모험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마침 잘 됐다. 그러면 알리제랑 알피노도 알겠네?"
"아, 그 쌍둥이인가. 알지."
"혹시 그 둘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잠시 고민하던 병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듯 움직이면서 입을 열었다.
"사람을 만나러 온 거면 낮에 일행과 함께 나오는게 좋아. 그리고 그 둘이라면 지금은 순찰을 돌고 있을거라 보기 어려울걸?"
"밤인데?"
"밤이니까 위험한게 없나 살펴보는거지. 낮에는 청린수다 뭐다 바쁘니까."
"바쁘구나."
그럴거라고 예상은 하고 온거지만, 둘은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자신은 갈레말 사람들과 깊은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분을 쌓기도 쉽지 않은 입장이었다.
'어렵단말이지...'
"일단 나도 복귀하려고 했으니까 따라와. 역으로 데려다주마. 날이 밝으면 그때 일행의 곁으로 돌아가는게 좋아."
"고마워, 그러면 모처럼이니 도움을 받아볼까."
병사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주먹을 쥔 손으로 가볍게 자신의 가슴쪽을 쳤다. 그리고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모험가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평소라면 자신이 앞서 걸어가거나 호위하는 입장인데, 지켜지는 쪽 게다가 갈레말 병사에게 지켜지는 위치라니. 좀 신선한 기분이라 모험가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길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도착한 역은 이전에 도착했을 때보다 온기가 있었다. 청린수 지원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난방 쪽은 따뜻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병사는 모험가를 데리고 율루스에게 다가갔다. 병사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본 율루스가 병사 뒤에 있는 모험가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표정이 얼굴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파견단 소속인 것 같은 사람이 방황하고 있어 데리고 왔습니다. 그대로 밖에 두면 습격을 당하거나 동사의 가능성도 있어 날이 밝을 때까지 이곳에서 보호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 그런가. 수고했다. 앞으로도 파견단 소속으로 보이는 사람이 방황하고 있으면 부탁한다. 우호관계를 계속 쌓아나가야 하니까 말이야."
"넵."
"그리고 너는, 잠시 있어라."
"네~"
율루스에게 경례를 한 병사는 말을 잘 들으면 좋을거라는 가벼운 조언을 모험가에게 흘리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모험가는 웃으면서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그를 보냈다.
"너를 본 적이 없는 병사라서 그렇다. 이해해줘."
"응, 그런거 같더라. 이런거 신선해서 좋았어."
"그래. 표정은 그래보이는군. 여기 온건 역시 알피노와 알리제를 보기위해서인가? 아쉽게 됐네. 지금 둘은 여기에 없어."
"아까 병사에게 들었어. 순찰 돈다며?"
"그래, 요 주변에 묘한 일이나 위험한 일이 자꾸만 생기는 바람에 야간 순찰을 늘려야했는데, 둘이 자원을 했지. 미안하지만 사람 손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니까 고맙게 도움을 받기로 했다."
"좋은 판단이야. 그 둘이면 웬만한 상황은 다 처리할 수 있을테니까."
모험가의 말에 율루스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모험가에게 받는 칭찬에 약간 복잡한 심정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둘이 올 때까지 기다릴건가?"
"아니, 사실 둘을 보러 온건 맞는데 둘을 만나러 온 건 아니라서."
"...이전부터 생각했지만, 너의 말은 알아듣기가 너무 어려워."
"솔직하게 너 말을 이상하게 한다고 말해도 돼.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는 모험가를 보며 율루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는 둘 사이에 모험가를 안내해 준 병사와는 다른 병사가 달려왔다.
"율루스님!"
"무슨 일이냐."
"그게, 청린수 탱크를 운반하는 도중에 문제가 생겼는지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어느 쪽?!"
율루스보다 빨리 입을 연 모험가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병사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시선만으로 율루스를 쳐다봤고, 율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 역에서 남쪽 방향에서 그리 멀지 않다고 추정......"
"나 갔다올게!"
쌍둥이도 달려갈거라고 생각한걸까, 아니면 원래 오지랖이 넘치는 것이 그들의 특성이라 그런건지. 자신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달려나가는 모험가의 뒷모습을 보며 율루스는 생각했다.
"병사를 몇명 모아라. 우리도 간다."
"네!"
모험가는 영웅이지만, 이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일이었다. 게다가 정말 습격을 당한거라고 하면, 청린수 탱크의 운반과 부상자의 운반까지 모험가 혼자 해낼 수는 없으니 자신들이 가는 게 맞았다.
그러나 역 근처는 병사들이 잘 살펴보고 있어서 마도병기나 마물이 다가오지 않는 곳인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모험가는 역을 나오고 바로 남쪽으로 몸을 돌려 달렸다. 거리가 멀지 않을거라 추측한 건 정확했는지, 저 멀리서 보이는 커다란 덩치에 모험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역 근처가 소환장소였지. 눈 앞에 보이는 암스트롱을 바라보며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커다란 마도병기의 근처엔 청린수를 담아놓은 것 같은 나무통과 철로된 통이 있었고, 그 근처엔 쓰러진 병사들이 몇명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모험가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있는지 도우러 왔냐는 말을 꺼내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청린수를 운반하는 중에 마도병기의 시야 내에 들어간 걸 모르고 있다가 그만."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은 사람은 힘들어도 주변 사람 도우면서 좀 더 뒤로 물러나. 곧 있으면 율루스가 병사들이랑 같이 올테니까 좀만 더 버티고."
아무래도 트리거가 터져서 나타난 모양이다. 이러니까 소환해야하는 마물이나 마도병기 같은건 귀찮은 일이 너무 많아서 싫어. 혼자 중얼중얼거리면서 모험가는 활을 들었다.
"메테이온은 잠시 떨어져있어줘."
"...응! 모험가, 힘내!"
힘을 쓰지 않는 파랑새는 단순한 파랑새일 뿐이었다. 혹시라도 공격을 잘못맞거나 자신의 과격한 행동에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모험가는 품에 있던 파랑새를 밖으로 꺼냈다. 싸늘한 추위도 상관 없는지 파랑새는 잠시 하늘 높이 날아올라갔다.
초코보라도 데리고 왔다면 초코케알의 도움을 받았을텐데. 동료없이 소환마물을 잡을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잡을 수 있을가가 아니라 잡아야했다. 늘 그래왔듯이. 모험가의 싸움은 언제나 해야만 하는 일이었듯이.
"청린수 운반까지 도와줘서 고맙네."
"사람 손이 없다며. 도와야지."
너덜너덜해진 모습을 한 채 율루스에게 씨익 웃어보이는 모험가의 모습은 멋지다기 보다는 안쓰러웠다. 보다 못한 율루스가 뭐라도 먹고 가거나 쉬고 가라고 말했지만, 모험가는 손까지 내저으며 극구 사양했다.
"그 상태로 용케 움직이는구나."
"...이쪽엔 야만신이라는게 있어서 말이야."
씁쓸하게 웃는 모험가의 얼굴에 약간 그림자가 졌다. 하지만 그건 찰나였고, 무언가를 발견한 모험가의 얼굴엔 그림자가 사라지고 눈동자는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거 알피노와 알리제에게 전해줄래?"
"이걸 주려고 왔던거군. 그래. 잘 전달하지."
두개의 편지봉투를 모험가에서 건네받으며 율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거."
대체 어디에 그런게 들어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큰 봉투를 모험가는 자신의 가방 안에서 꺼내고는 율루스에게 건네주었다. 모험가가 주니 일단 받아드는 율루스는 근처 적당한 곳에 봉투를 내려놓고 안을 확인해봤다.
"먹을건가?"
"주먹밥이야. 샌드위치로 할까 하다가 가지고 오는 동안 다 망가져버릴 거 같아서. 안에는 이것저것 넣어봤으니까 먹을만 할거야."
"고맙다."
"그럼 난 가볼게. 두 사람에게는 나왔다는 소리 절대로 하면 안된다?"
"이렇게까지 화려하고 확실하게 온 티를 내놓고 모르게 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만."
모험가는 율루스에게 쉿 하는 제스쳐를 보이고 역을 나왔다. 이미 밤은 한참 깊은 새벽이었다. 아직 어두운 하늘에 별은 총총 떠 있었고, 아침이 다가오기엔 약간의 시간이 있을 것 같았다.
역에서 나온 모험가는 텔레포를 사용해 모르도나를 향했다. 이제 기나긴 하루의 마지막을 맞이할 때가 왔다. 너무 늦어서 자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언제 어느때든 와도 상관없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새벽에 찾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장비도 몸상태도 너덜너덜한 모험가를 보며 파랑새는 걱정 가득한 우는 소리를 내봤지만, 모험가는 이정도는 별거 아니라며 허세를 부릴 뿐이었다.
때마침 길이 엇갈려 모험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역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역의 사람들과 꽤 친한 건지 둘의 모습이 보이자 어서오라며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역에 들어온 그들은 부상을 치료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웃던 얼굴을 바꾸고 곧바로 율루스에게 달려갔다.
"율루스. 무슨 일 있었어?"
"아, 너희들인가. 괜찮아, 일은 전부 해결됐다."
율루스는 모험가의 말대로 모험가가 왔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청린수를 운반하던 병사들이 마도병기에 의해 부상을 입고, 지원을 나가 마도병기를 쓰러트렸다는 간단한 사실만 전달했다.
곧이어 전달해 줄 이걸 꺼낸다면 왔다는 소리를 하지 않아도 금방 왔다는 걸 알텐데 굳이 이래야하나. 순간 고민은 했지만, 나중에 말을 했다고 모험가에게 불평을 듣는 것 보다야 모험가의 말에 따르는게 훨씬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는 이상한 걸 고집하는 편인 것 같았으니.
"그리고 이걸 받아주겠어?"
"뭔데? 편지?"
편지를 받은 알리제는 뭔지 모르겠는지 봉투에 뭔가 적혀있지 않나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알리제에게 라는 글자밖에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알피노는 편지 봉투에 적혀있는 한글자 한글자 너무 힘을 줘서 쑥 들어간게 보이는 빈말로도 잘 썼다 말할 수 없는 엉성한 글자를 보고 이게 누구의 것인지 금방 파악했다.
"후후후. 그가 왔었나."
"응? 뭐가?"
"나중에 편지를 열어보면 알게될거야."
"뭐야, 그게. 미리 알았으면 알려줘도 상관없잖아."
"그리고 순찰하느라 고생했지? 출출하면 저기에 놓인 주먹밥 좀 먹어. 편지를 준 사람이 챙겨준거니까."
산처럼 쌓인 주먹밥을 바라본 알리제는 망설임 없이 편지 봉투를 뜯고 편지를 훑어보고는 아! 하고 짧게 소리를 냈다.
"대체 언제 왔었던거야!"
"그러게. 얼굴을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바빴던걸까."
"잠깐, 그러면 아까 율루스가 말한 마도병기를 쓰러트려준 지원이라는게 설마 그 사람이야?"
율루스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행동이 가끔은 긍정의 뜻을 품을 때가 있다는 걸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뭐냐, 이 시간에 밖에 나와있고."
"에스티니앙, 돌아온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소년은 목소리를 듣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창을 등에 맨 남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잠깐 손님이 왔었기에 나와보았다."
"손님? 설마 파트너냐?"
"알고 있는건가?"
"알고있고 자시고, 라자한에 오자마자 영웅님이 오셨다며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데 모를 수가 없지."
에스티니앙은 자연스럽게 소년의 옆에 서서 올려다보고 있던 하늘을 한변 바라보며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는 고개를 내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후후, 내 입은 막아도 라자한 사람들의 입을 전부 막을 순 없었으니 당연한가."
"입막음 당했었나? 파트너에게?"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줬으면 하더군."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독특하다니까. 식당에서도 난리였다며?"
"난리,까진 아니다. 그의 입장에선 호의로 한 일이었으니."
소년은 에스티니앙을 한번 올려다보고 어찌해야 하나 살짝 고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왜그러냐며 물어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면 그녀석이 가고 나서 계속 밖에 서 있었던거냐?"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늦은 밤에도 갈 곳이 있다면서 나서더군."
"나보고 항상 어딜 그리 돌아다니냐며 말하더니, 자기가 더 하잖아."
모험가의 불평이 떠올라 소년은 드물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궁전을 지키고 있는 전사들 몇명이 소년의 웃음소리를 듣고 조금 놀라 어찌할줄 몰라했다.
"왜그래."
"비밀로 하겠단 약조이긴 했으나, 이미 알고 있으니 그럴 필요도 없겠지. 잠시 괜찮겠나? 전달할 이야기가 아주 많다."
"무슨 소리를 늘어놓고 갔는지, 원."
"그대에게 건네줘야 할 것도 있으니, 그것을 어찌 쓸지도 에스티니앙 그대가 정해야한다."
소년의 말에 에스티니앙은 미간을 찌푸리며 코웃음을 쳤다.
"귀찮은 일을 남기고 갔군."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에스티니앙의 어쩔 수 없다는 말투와는 달리 목소리는 맑고 밝았다.
느긋하게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레포릿들이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레포릿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린 엘레젠 남성은 걸어오는 사람을 보고 살짝 웃었다.
"용무는 다 끝마치셨습니까?"
"아니. 아무래도 길이 엇갈렸는지 안계셔서 다음에 다시 찾아뵈어야 할 것 같은데. 손에 든 그것은 뭐야?"
"아, 이것은 그리다니아에서 있는 축제의 홍보 선전물입니다."
손에 든 종이를 건네자 남자는 받아들고 대충 훑어보았다. 흐응~ 하고 그는 뭔가 알겠다는 듯 소리를 냈지만, 홍보지의 내용엔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단 소리는 우리의 영웅님이 이곳에도 오셨단 소리구만."
"산크레드에게도 갔었습니까?"
"그래, 아주 반가운 걸 전달해주려고 온 것 같은데 본인이 직접 전해주진 않고 메테이온을 통해 주더라고. 보자마자 무슨 일 저지른 사람처럼 도망치더라."
"도망을... 아마 들키고 싶지 않으셨던 거겠지요. 그런데, 반가운 것이라 하면?"
"이걸 받았어. 린에게서 온 편지다. 분명 너에게 하는 말도 같이 쓰여있을테니 같이 읽자고."
"기쁜 소식이군요. 그럼 마침 우리 영웅님께 받은 쿠키도 있으니 읽으면서 드시는건 어떠십니까?"
"가끔은 이렇게 센스있는 일을 한다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웃으면서 레포릿들과 함게 자리를 이동했다. 자신에게 물건을 전해준 사람에 대한 감사를 걸음걸음에 담으며 나아가는 모습은 행복으로 가득차있다 말해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자료를 정리하고 있던 미코테 남성이 있는 힘껏 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꽃을 바라보았다.
"또 바꿨네. 누군진 모르지만 대체 저런 꽃들을 어디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보내주는거지."
"글쎄. 발데시온 위원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 않을까."
"옛날의 의뢰인인가. 아니, 쿠루루는 이미 알고 있는거 아니었어?"
라라펠의 여성은 일부러 후후후 웃음을 흘렸다.
"나중에 알려줄게. 아니면 스스로 알아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런 곳에서까지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하지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단말야."
고민하는 소리와 웃음 소리가 같이 들리는 장소에 노크 소리가 새로 추가되었다. 라라펠 남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문이 열렸다.
"야슈톨라. 여기는 무슨 일이야."
"식사도 하지 않고 일만 하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라서 찾아왔는데, 둘 다 식사하지 않았죠?"
"그러고보니..."
쿠루루가 시계를 바라보고 작게 말을 꺼냈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라하도 배가 텅 비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야슈톨라는 라스트 스탠드에서 먹을 걸 사가지고 왔다며 자신이 들고 있는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고마워. 생각해줘서."
"아니에요. 절 챙겨준 사람이 있어서, 생각해보니 두 사람도 챙기지 않고 있을 것 같았을 뿐이니까요."
라스트 스탠드에서 사온 음식과 달리 따로 준비해놓은 것인지 테이블 위엔 도시락이 하나 놓여있었다. 쿠루루가 손가락으로 도시락을 가리키며 이거? 라고 묻자 야슈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 위를 정리하는 걸 도우면서 음식을 놓던 야슈톨라는 테이블 위에 놓인 꽃을 보고 어머 하며 소리를 냈다.
"오랜만에 보는 꽃이네요."
"야슈톨라도 이 꽃을 알고 있어?"
"알고 있다마다요. 이게 여기에 있다는 소리는 역시 그 사람이 이곳에도 왔다 갔군요?"
"역시, 그 도시락 모험가가 준비해준 거였구나."
"모험가가 왔었어?! 언제?!"
그럴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예상했던 것 보다 더 큰 반응을 보이는 그라하를 보며 쿠루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중에 말해줄테니까, 우선 식사를 먼저 하자."
"윽. 왔다면 왔다고 말해주면 좋았을텐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얼굴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은 것 같더군요.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요. 큰이유가 있어 하는 행동은 아니었을테니."
세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야슈톨라는 모험가에게 받은 도시락을 열었고, 쿠루루와 그라하는 라스트 스탠드에서 야슈톨라가 사온 음식을 앞에 두었다.
그라하는 야슈톨라도 알고, 자신도 어쩐지 낯이 익은 꽃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모험가가 왔다 갔다는 이야기. 말하는 것을 듣자하니 쿠루루는 모험가가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잠깐, 야슈톨라도 알고, 나도 알면서 모험가가......"
그라하는 고민하느라 숙인 고개를 확 들면서 꽃을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두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쿠루루와 야슈톨라는 그의 깨달음을 반기듯이 웃었다.
그렇게 이곳저곳 돌고 돌다가 도착한 모르도나의 돌의 집, 아니 지금은 타타루의 공방이 되어있는 장소의 문을 열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타타루~?"
당연히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쿠루루가 요새는 올드 샬레이안에서 더 자주 보는 것 같다 했던가. 정말로 올드 샬레이안으로 돌아가야하나. 모험가는 공방 한쪽에 놓여있는 소파에 몸을 내던지듯 누웠다.
"모험가?"
나눠 줄 요리를 만들고, 제 1 세계에서 반갑다며 차려준 술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숙취에 시달리다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탓인지 소파에 눕자마자 눈이 무거워졌다. 아마 갑자기 나타난 마도병기를 제압하는데 힘을 쓴 탓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흐흐흐 웃음을 흘리는 모험가를 파랑새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모험가? 모험가? 자?"
소파의 푹신함에 감싸여 모험가는 그대로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모험가의 몸 위를 폴짝폴짝 뛰면서 돌아다니던 파랑새는 적당히 모험가의 머리 쯤에 자리를 잡아 따라 누웠다.
정적이 내려앉고 한참이 지나자 끼이익 정적을 깨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탁, 타닥.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몇번 들리더니 건물 한가운데에 들어와서 멈췄다.
"모험가님?"
타타루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깨지 못할 정도로 모험가가 아주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런 일은 그렇게 자주 있진 않았다. 모험가인 만큼 주변에 예민해서 그런지 돌의 집에서 잠깐 쪽잠을 잘 땐 작은 소리나 인기척에도 곧장 깨는 사람이 모험가였다.
타타루는 혹시 자신의 목소리가 작았나 싶어 다시 불러보았지만, 모험가는 일어나지 않았다. 모험가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는 걸 확인한 타타루는 그제야 모험가의 가까이에 다가갔다.
"또 이렇게 다쳐 오시고, 어디서 뭘 하신 건가용."
한숨섞인 목소리엔 걱정이 가득했고, 작은 발을 열심히 움직여 다른 곳에 간 타타루는 담요를 들고와 모험가에게 덮어주었다. 모험가의 머리 쪽에 누워있는 파랑새도 깨우지 않게 조심히.
"정말 늘 도와드려야 한다니까용."
모험가에게 담요를 덮어준 후 타타루는 무언가를 꺼내고 모험가가 누워있는 소파 옆에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 그리고 조심히 들고온 무언가의 뚜껑을 열고 손에 덜어 조심조심 모험가에게 발라주었다.
그 인기척을 느꼈는지 파랑새가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다. 시선이 마주친 파랑새와 타타루는 둘다 굳은 듯이 행동을 멈췄다. 그러나 타타루가 곧 손가락을 하나만 펴서 입 근처에 가져다 대어 파랑새는 조용히 날아올라 소파 근처의 탁자에 앉았다.
파랑새는 그 행동이 무슨 의미를 뜻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었다. 그리고 저 작은 손으로 약을 일일이 발라주는 행동에 담긴 감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세용."
낮고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상처투성이가 된 모험가의 손에 약을 바르고도 작은 손으로 꼭 잡고 놓지 않은 그 모습을 파랑새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모험가와 파랑새의 기나긴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깊은 밤. 등 뒤에 있는 침대에는 사람 숨소리가 고르게 들리는 장소에서 파랑새는 새의 모습이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책상 위에 앉아있었다. 이 책상은 평소엔 모험가가 일기나 다른 것들을 메모하는데 사용했지만, 파랑새도 써도 된다며 내준 책상이었다.
파랑새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책상에 앉은 이유는 일기를 쓰기 위해서였다. 원래 파랑새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일기를 쓰는 모험가를 바라보며 기록한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고민하긴 했지만, 실제로 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전 모험가와 아주 기나긴 하루를 보내고 나서 파랑새는 생각을 바꿨다. 자신이 본 것을 남긴다는 것. 자신에게까지 흘러들어온 이 감정을 남겨둔다는 것. 언젠가 흔들릴때가 오더라도 이런 날과 감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해두는 것의 필요성을 느꼈다.
왜냐면 그때 바라본 그 모습들을 파랑새는 오래오래 떠올리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다른 사건이 일어나 영향을 받는다면 잊어버릴지도 몰랐다. 자신에게 꽃을 주겠다 하던 그날의 기억을 모험가에게 꽃을 받고 나서야 떠올렸듯이.
그러면 모험가의 행동을 따라하기로 했다. 기록에 남기기로 했다. 그때의 따스함을. 그때의 즐거움을. 그때의 반가움을. 그날은 자신도 모험가도 즐거웠고, 물건을 받은 사람들은 각자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다음날 창을 든 엘레젠 남자는 직접 모험가를 찾아오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그리하여 파랑새는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적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말을 하는 것보다도 훨씬 생각이 많이 필요했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그러나 이것들은 분명 훗날 자신을 웃게해줄 거라는 확신이 파랑새에게는 있었다.
"메테이온, 안자?"
"미안해. 깨웠어? 너무 오래 불을 켜놓고 있어서 그럴까."
새의 모습일 때와는 다르게 유창한 말로 비몽사몽한 모험가의 말에 답을 하는 파랑새.
"아니, 오늘은 좀 오래걸린다 싶어서... 도와줄까? 사전 줄까?"
"아니야. 이제 거의 다 써가니까 나도 금방 누울게."
"응, 잘 자..."
"잘 자 모험가."
파랑새는 웃으면서 침대에 누운 모험가를 한 번 보고 다시 책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쓰다만 일기를 이어서 쓰기 시작했다.
이곳의 사람은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 모험가의 곁에 있는 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모험가의 시간이 다하고 난 이후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러니 이것은 훗날 자신의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이 기록은 전혀 헛되지 않다.
내일로 이어지는 희망의 일부분인거니까.
파랑새는 일기장을 덮었다. 파랑새가 일기를 쓰겠다고 말하자 모험가가 기뻐하며 사준 조금 값나가는 일기장이었다. 좋은 종이를 쓰고 표지도 튼튼하고 오래갈거라 말했지만, 사실 파랑새는 좋고 나쁨의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모험가가 좋은거라니까 좋은거겠지.
새의 모습으로 변할까 고민했지만, 그대로 사람의 모습으로 모험가가 누운 침대에 조심히 들어갔다. 인기척이 느껴진건지 모험가가 좀 더 뒤로 이동하더니 오른팔을 들어 파랑새를 안아주듯 잡아주었다.
그 온기가 따스하여 파랑새는 눈을 감고 금방 잠에 들 수 있었다. 모험가와 함께한 기나긴 하루는 그날 시작되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