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널 판타지 14(FF14) 칠흑의 반역자 (레이드 스토리 포함) ~ 효월의 종언 (6.1 초반 포함) 의 네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효월의 종언 엔딩 이후의 시간대로 썼습니다. - 빛의 전사의 호칭은 '모험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크게 묘사를 하지 않지만, 여성 캐릭터이며 주직업은 음유시인이라는 설정입니다. - 논커플링 일상물을 지향하며 쓴 글입니다.
- 캐해석의 차이, 설정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상당한 날조로 쓴 글입니다. 본 글은 게임의 공식 설정을 따르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점이 불편하시면, 뒤로 버튼을 누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파랑새와 모험가가 새벽의 혈맹을 보러 가는 일상 세번째
(2023.05.25 포스타입에 업로드 했던 글)
이제 어떻게 한담. 벤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모험가는 그 생각만 반복하고 있었다. 일단 상대방 모르게 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누구 못봤냐고 물어보기도 애매했다.
아니 사실 애매하진 않았다. 단지 모험가가 그렇게 자신이 새벽의 일행을 찾아 돌아다녔다는 티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어서 그럴 뿐.
그러나 그의 행적에 예상가는 곳이 없었다. 그러고보면 올드 샬레이안에 와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듣지 못한 것 같다. 생각보다 아는게 없구나. 만들다가 실패해버린 쿠키를 입에 넣으면서 모험가는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영웅님?"
보통 사람이라면 저런 호칭에 고개를 돌릴 일도 없을테고,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며 당연히 반응하면 오만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모험가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당연해진 호칭이었다. 자신을 모험가라고 부르는 것과 동시에 영웅이라고 부르는 사람 또한 상당히 많았으니까.
당연히 자신을 부르는거라고 생각하고 모험가는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상대방은 모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영웅님이시군요! 오늘은 운이 좋네요. 아까 산크레드님도 만났는데......"
정말로 운이 좋은건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험가는 가끔 세계의 미움을 산 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고난 속에 뒹굴 때가 있으면, 이렇게 사실 세계가 자신을 위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이 잘 풀릴 때가 있었다.
기쁜 모험가의 마음에 영향을 받았는지 몸을 살짝 들썩이는 파랑새도 신나보였다.
"산크레드를 만났어? 어디에서?"
"표류자의 언덕에서 만났습니다. 바로 아까였으니 아마 아직도 그곳에 계실 것 같아요."
"그렇구나, 좋은 정보 고마워!"
"저, 저기."
벤치에서 일어나 당장 어딘가 달려갈 기세의 모험가를 다급하게 불러세웠다.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모험가가 금방 가버릴거라 생각했는지 약간 빠르게 말을 이었다.
"건블레이드를 납품해주신게 영웅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 그 의뢰 네가 한 거구나. 올드 샬레이안에 있다보면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단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만날 줄이야."
"그러게요. 저도 놀랐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건블레이드에 대한 건 하나도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씩 잡아보면서 익히고 있어요."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는지 남자의 등이나 허리춤엔 건블레이드가 보이지 않았다. 하긴 늘상 전투를 하는 사람이 아니면 계속 가지고 다니기는 무겁고 불필요하겠지.
생각해보면 자신도 그가 쓰는 걸 보기 전까진 건블레이드를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올드 샬레이안이라고 해도 건브레이커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혹시 건블레이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면 에오르제아에 한번 가보는건 어때? 그곳에서 건브레이커 수업을 해주는 로스가르를 만날 수 있을거야."
"정말입니까?! 계속 도움만 받네요. 건블레이드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또 받고......"
"괜찮아. 나도 아는 사람이라서 가주면 나도 그 사람도 좋을 것 같고."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중에 잘 쓰게 되면 꼭 영웅님을 다시 찾아가겠습니다. 붙잡아서 죄송합니다, 산크레드씨를 찾으시는 거죠? 무사히 만나시길 바랍니다."
인사하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받아준 모험가는 곧장 표류자의 언덕으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갈 쯤에 정신없이 달리던 모험가는 조금씩 속도를 낮추더니 이젠 달리지 않고 조금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메테이온 여기선 조용히 가자."
파랑새는 고개를 아래 위로 흔들었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모험가는 몸에 담아놓은 숨을 전부다 후 내뱉고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뛰어서 빨라진 고동이 천천히 원래의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모험가는 점차 자신의 인기척을 죽이는데 신경썼다. 쌍검사나 닌자가 사용하는 은신이란 기술을 쓰기 위해서였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내딛는 모험가의 모습을 표류자의 언덕에서 사는 사람들은 눈치채지도 못하고 지나갔다.
은신은 사실 그의 특기였다. 갈레말드에서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 기척을 죽이고 숨는 것이 특기인 만큼 남이 은신을 쓴 기척을 개치하는 것도 능숙할테니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어설프게 다가가면 미코테 여성 때처럼 들킬게 뻔했다. 그렇지만 모험가도 나름 은신에는 자신이 있었다. 실전에서 몇번이나 써오며 마물들의 시선을 하나도 받지 않는 법을 알게되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사람들의 모습은 많았지만, 휴런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봤다고 말한지 크게 지나지 않았으니 만약 이동했다고 해도 다리나 다른 곳에서 마주쳤을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이상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모험가는 은신을 풀지 않은 채 사람들 틈을 돌아다녔다. 자신의 등 뒤를 노리는 아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른 채.
'뭐 하는거야 저녀석.'
모험가가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게 한 두번은 아니었고, 그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나중에 이해할 수 있는 행동도 있었으니 어쩌면 저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그러나 지금 당장은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은신까지 한 모습이 이해가진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당장 뒤쪽으로 다가가서 뭐하냐며 말을 걸어 놀래켰을테지. 그러지 않는건 은신까지 한 상태에서 나름 더 숨는다고 기둥이나 벽 뒤에 숨은 모험가의 진지한 표정이 방해를 해선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저녀석이 찾을만한 사람이 있었나. 아니면 누구의 미행을 하고 있는건가. 모험가가 바라보는 곳을 휴런 남자도 따라 바라보았지만, 누구를 미행하는 것 같진 않았다.
모험가를 도우려는 듯 이리저리 몸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던 파랑새가 우연히 뒤를 돌았다가 깜짝 놀라 파다닥 날개를 움직이며 잠시 날았다가 앉았다.
파랑새의 당황한 날갯짓을 아무 대비도 못하고 얼굴로 다 얻어맞은 모험가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무슨일이냐며 뒤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
모험가의 짧은 소리가 들리자마자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도망치는 것처럼 모험가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제야 휴런 남성은 모험가가 찾고 있던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모험가는 이미 달아나고 없는 상황이었다.
모험가는 정신없이 달리고 달려서 숲에 도착했다. 이름에 걸맞게 조용하고 사람이 적은 이곳에 거친 숨소리만 잠시 퍼졌다.
"성공할 것 같았는데, 나도 산크레드의 뒤를 밟아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야망을 터놓는 모험가에게 진심어린 목소리로 파랑새가 말했다.
"들키지 않는게 목적이었는데, 역시 산크레드는 몰래 보는게 무리였나. 위리앙제랑 같이 있었다면 가능했었을텐데. 어쩔 수 없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모험가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편지봉투였다. 안에는 편지가 여러장 들어있는지 일반적인 편지봉투보단 살짝 두께가 있는 편이었다.
"메테이온 부탁해도 될까?"
"뭐를?"
"이거를 산크레드에게 전달해줬으면 좋겠어."
"산크레드, 선물?"
"그래. 산크레드 몫 선물. 이것도 내가 주는 건 아니지만."
모험가의 말을 이해 못한 파랑새는 고개를 갸웃갸웃 움직이다가 모험가의 손 든 편지를 물었다.
"무겁거나 불편하면 사람 모습으로 변해서 가져다 줘도 괜찮아."
파랑새는 모험가의 말에 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모험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아올라 휴런 남자가 있는 곳을 향했다. 파랑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모험가는 웃으면서 지켜봤다.
가능하면 편지를 받은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멀리서 보고싶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까지 전달해주면 분명 좋아하겠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무리인 것 같으니 포기하기로 했다. 자신이 있다는 걸 아는 상태에서 편지를 받는다고 그가 솔직한 감정을 표정으로 보여줄 것 같진 않았으니까.
잠시 후 가벼운 몸으로 파랑새가 포르르 날아와 모험가의 머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녀왔어 라는 말을 했다. 파랑새의 목소리는 밝고 따뜻함이 가득했다. 머리에 앉은 파랑새의 몸에도 따뜻함이 퍼져 자신에게 전해지는 기분이 들어 편지를 받은 그가 어떤 감정이었을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가져와줘서 고마워."
"편지, 가져갔는데?"
"굳이 말하자면 마음을?"
"아, 웃고 있었어."
"그렇겠지."
세계를 넘어 머나먼 곳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전달받은 편지였다. 기뻐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당연하지만 반가운 소식을 파랑새로부터 전달받은 모험가는 세계를 다 가진 사람처럼 맑고 밝은 웃음으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형형색색의 건물이 아름다운 도시 라자한은 예전만큼의 활기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조금씩 생활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지만,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 머지않아 라자한엔 다시 사람들이 가득해질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약간 침체된 분위기가 어려운지 이곳에서 파랑새는 모험가의 어깨나 머리가 아닌 옷 속에 들어가 있었다. 겁이 나면 올드 샬레이안에 있어도 된다고 비공정 안에서 몇번이나 말을 했지만, 파랑새는 품이면 괜찮다며 모험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도착한 라자한엔 모험가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영웅님, 영웅님 불리는 모험가는 어찌할 줄 몰라하며 그냥 쑥쓰럽게 웃을 뿐이었다. 원래부터 영웅이라며 얼굴이 잘 알려진 편이었지만, 라자한은 유독 더 반응이 컸다.
"태수님을 뵈러 오셨습니까?"
"아뇨,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서요."
큰 반응의 이유 중 하나는 라자한의 태수님과 자주 만나기 때문일거란 생각을 했다.
이런 반응이면 몰래 보는 건 무리일거란 생각이 들어 일단 대놓고 사람들에게 찾아온 사람의 이름을 꺼내며 행방을 물었다. 다행히 그는 지금은 라자한에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행이다. 돌아다녀도 저기 영웅님이다! 하는 소리에 들킬일은 없겠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 목표는 한 곳 뿐이었다. 라자한에 있는 식당. 예전에 새벽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고, 라자한에 지내는 그가 자주 찾는 곳인 그곳으로 망설임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기나긴 원한의 길이 끝나고, 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그가 무얼 바라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복수만이 모든 것이었기 때문일까, 지금은 아무것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런 그가 드물게 반응하는 것이 음식이라는 걸 깨닫고 모험가가 떠올린 선물은 딱 하나였다.
자신도 나름 비스마르크에서 요리를 배운 요리사지만, 매번 그에게 요리를 가져다 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그가 원하는 요리를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게 하는 게 괜찮은 선물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금전감각이 없었다. 돈을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버는진 모르지만, 그런 금전감각이면 금방 바닥나고도 남을테지. 그러니 모험가가 할 수 있는 선물은 단 하나였다.
"아, 어서오세요."
"하나 묻겠는데 선불도 받아?"
"네. 그럼요. 나중에 동료분들과 같이 오시게요?"
식당의 주인은 모험가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도 자연스럽게 답해주는 그를 보고 모험가는 밝게 웃고 묵직한 주머니를 하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찰랑 소리가 나는 걸 듣고 그 안엔 길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에스티니앙 여기서 식사하지? 에스티니앙이 먹는 음식은 다 이걸로 계산해줘."
"아...... 그건."
"부족하다면 더 줄 수도 있어."
"아뇨, 그것이. 사실 괜찮습니다......."
"부족하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해? 일단 금액은 이정도인데."
모험가가 주머니의 입구를 살짝 풀어서 보여주자 가게 주인이 손을 내저으면서 거절했다.
"아뇨, 금액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금액이 필요 없습니다. 아, 태수님."
"응?"
주인의 반응에 모험가가 몸을 돌리자 약간 떨어진 곳에 익숙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바르샨."
그를 부르는 호칭은 두가지가 있었지만, 모험가는 늘 소년의 모습일 때는 이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 소년 또한 모험가가 부르는 방식에 의문을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 있었던건가. 뭔가 문제라도 있나?"
"그것이, 영웅님께서 에스티니앙씨의 식사비를 선불하시겠다 하여."
테이블에 놓인 주머니, 거절하는 걸 이상하게 생긱하는 모험가와 쩔쩔매고 있는 가게 주인 두 사람을 본 소년은 뭔가 깨달은 듯 작게 입을 벌려 아 하는 소리를 흘리고는 곤란하게 웃었다.
"미안하게 되었군. 에스티니앙의 식사와 그 외 모든건 우리쪽에서 전부 지불하기로 되어 있어서, 그대의 금전은 괜찮네."
"바르샨이 내는거야?"
"그대가 이해하기 편하게 말하자면 그런셈이지."
계획과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하루다. 모험가는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다물고는 조용히 돈이 담긴 주머니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이해해줘서 한숨 놓인 모양이었지만, 어쩐지 기가 죽은 모험가의 표정이 신경쓰여 가게 주인이 모험가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미안하군."
"아니야...... 생각을 못한 내가 잘 못이지."
기운없는 모험가의 목소리에 소년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꺼냈다.
"그대의 호의엔 잘 못이 없다. 내가 에스티니앙에게는 제대로 전달하지."
"아니아니, 에스티니앙에게는 말하지마. 부탁해."
다급한 모험가의 목소리를 듣고 소년은 숨겨야 할 이유라도 있는건지 의문을 품었지만, 묻진 않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이니 식사라도 들고 가겠나?"
"식사? 아직 이르지 않, 구나."
사람을 찾으러 정신없이 다녔기 때문인가. 시간이 흘러가는 감각이 이상해졌는지 모험가는 아직 한낮 같았는데 시간은 벌써 저녁을 향하고 있었다. 아직 하늘은 푸르렀지만, 하늘이 주황빛 저녁노을로 물드는 건 시간문제 같았다.
원래 하루에 한끼만 먹어도 이동만 하는 정도는 버틸 수 있지만, 아침을 너무 가볍게 먹은 탓일까. 저녁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배에서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배에 손을 올린 모험가를 본 소년은 그럼 평소처럼 궁전에서 준비하지 라며 모험가를 이끌 듯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궁전의 경비를 서고 있는 전사들은 모험가를 보고 의심하거나 경계하는 모습 없이 자연스럽게 어서오시라며 받아주었다. 마치 그곳에 방문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인 마냥. 본래의 모험가의 성격이었다면, 그런 반응을 부담스러워 했겠지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면 모험가 또한 그런 전사들의 반응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궁전에 도착하자 소년은 다른 곳으로 향했고, 모험가는 다른 사람의 안내를 받아 손님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님방에 도착하고 잠시 기다리자 음식들과 함께 소년이 방에 들어왔다.
"일은?"
"가볍게 정리하고 왔다. 여기서 그대의 말동무를 해주는 것 정도는 상관없을정도로 말이지."
바로 아까 밥을 먹는 사람조차 배를 고프게 할 정도로 입맛을 돋우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들이 식탁에 가득해지고, 음식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방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 탁 소리가 나오자 마자 모험가의 품에 있던 파랑새가 답답한 듯 뛰쳐나오듯 날아오른 후 손님방 가구에 앉아 몸을 파르르 떨고는 부리로 깃털을 정리했다.
"답답했지?"
"저것은?"
"바르샨은 처음 보겠구나. 어, 메테이온이라고 해. ...하늘 끝까지 날아간 새야, 라고 하면 이해할까."
"저 새가..."
깃털 정리를 다 끝낸 파랑새는 조용히 모험가가 앉아있는 의자 등받이 위에 가볍게 앉았다.
"처음 보는구나. 나는 브리트라라고 한다."
"모험가,에게 들었어, 이야기. 나는, 메테이온이야."
둘의 대화는 단순한 인사에 불과했지만, 모험가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 마냥 소년의 눈치를 살피며 불편해했다. 무심코 바르샨의 제안에 좋다고 따라왔지만, 메테이온이 함께라는 걸 생각하면 거절했어야 했던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조심조심 분위기를 살피자 소년이 가볍게 오른손을 펼쳐 보이며 음식을 가리켰다.
"이러다가 식겠군."
"그러면, 잘 먹을게."
"메테이온과 내가 신경쓰이는 거라면 마음을 놓아도 된다. 아버지께선 어찌 생각하실지 몰라도 나에게 고향별의 기억은 없고, 이미 그대가 도달하여 다른 답을 전달한 존재라면 경계할 필요 또한 없겠지. 그대의 동료로서 환영하겠다."
표정의 변화는 거의 없어보였지만, 아까보단 확실히 풀어진 분위기의 모험가가 소년을 바라보았다.
"모험가,랑 나. 여기, 있어도 돼?"
"원하는 만큼 쉬다 가도 괜찮다. 날이 저물어가니 묵고 가는 것도 괜찮다."
"아직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 밤에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으니 여기서 잠깐 쉬다가 갈 생각이긴 한데 묵진 않을거야."
"여전히 바쁘군. 예정이나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이 방은 사용해도 좋다."
"고마워."
천천히 음식을 먹는 모험가를 바라보다 식탁에 내려앉은 메테이온이 음식들을 구경했다. 평소에 모험가가 먹는 음식과는 다른 음식이라 신기한지 이것저것 이름을 물어보아 모험가와 소년이 답을 해주었다.
"아참, 에스티니앙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특별히 부탁한 일이 없을 경우엔 사베네어만 벗어나지 않으면 되는거잖아? 라는 말과 함께 훌쩍 떠나서 어느새 돌아와 있는 경우가 잦으니 말이야."
"......그래. 에스티니앙은 늘 그래왔단 말야."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며 음식을 입에 넣는 모험가의 모습을 보며 소년이 풋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미안하네."
"얼굴에 뭐가 묻었나?"
손으로 가볍게 얼굴을 쓸어내리는 모험가를 보고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밑에서 모험가를 올려다본 파랑새도 얼굴에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했지만, 만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 그만, 미안하네."
"아, 뭐. 에스티니앙은 떠나면 늘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렵거든. 훌쩍 떠나서 훌쩍 돌아오고, 우연히 만나거나 파트너가 찾아오거나. 늘 그런 식이라서 가끔은, 그래 가끔은 내가 몰래 놀래켜보고 싶단 생각이 있었지."
"그래서 결과가 그 돈이었나?"
"그래. 파트너 금전감각이 없으니까. 그거 알아? 에스티니앙이 사베네어에 처음 왔을 때 말야......"
궁전으로 당분간 엘레젠 남자가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모험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소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라자한에서는 가끔 영웅님은 과묵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소년은 사실 그렇지 않다고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굉장히 하고 싶은 말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소년은 알고 있었다. 모험가 본인은 왜 바르샨을 앞에 두면 말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모습에 영향이 있을거라 판단했다. 지금의 모습이 아닐 땐 모험가는 말을 놓지 않았고, 어딘가 예의를 차리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의 모습은 무척 편히 느끼는 걸 소년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이 모습으로 도시에서 생활할 때는 늘 느낀 감각이었다.
그러니 가끔 궁전에 식사초대를 할 때는 이렇게 말동무를 하곤 했다. 모험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겁기도 했고, 라자한을 돕고 세계를 구한 영웅에게 해줄 수 있는 보답 중 하나라면 이정도는 별 일 아니었다. 그런 수지타산적인 생각만으로 앉아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년은 사과를 깎아 파랑새가 있는 곳 가까이에 접시를 두었다. 파랑새는 소년과 사과를 몇번 번갈아보더니 소년의 상냥함에 가까이에 다가가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아참, 돈은 두고 갈테니까 바르샨이 에스티니앙에게 전달해줄래? 내 이야기는 하지 말고, 보답이라고 도착했다고 말해줘."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받지 않을텐데."
"에스티니앙이 브리트라보고 쓰라고 하거나 하면, 브리트라가 라자한 운영에 써도 상관없고, 에스티니앙 밥값 충당해도 상관없어. 거금은 아니지만."
"그정도면 일반 상인들에겐 거금으로 통할 것이지만...... 알겠다. 그대의 의견을 존중해서 잘 전달하지."
"고마워."
모험가는 웃으면서 근처에 있는 사과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깎인 사과가 놓인 접시가 있고, 접시 위에서 사과를 먹고 있는 메테이온이 보였다. 모험가는 눈만 살짝 움직여 소년을 쳐다보고는 곤란하게 웃었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소년은 떠나지 않았고, 모험가가 식사와 이야기를 끝마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가끔 파랑새에게 이야기를 건네보기도 하고, 스스로 근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깊어지는 이야기에 흘러가는 시간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정신차리니 이미 창 밖엔 별이 총총 떠있는 어둠이 찾아온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