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켓몬스터 레전드 ZA(이하 레전자) 카라스바 드림글입니다.
- 레전자의 메인스토리와 DLC 메가차원러시 의 스토리 네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드림주 이름이 있으며, 게임 주인공=드림주 인 설정입니다.
- 날조, 드림주 개인 설정, 비공식 용어 사용 기타 등등 공식 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 뭘 봐도 상관 없는 분
- 드림주 위주 글입니다. 카라스바의 등장이 무척 적습니다.
다크라이가 사라졌다. 여섯 개의 볼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을 보고 단번에 다크라이가 들어가 있는 볼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늘 커튼을 치고 잠을 청하는 여자였지만, 어제는 잊어버렸는지 밝은 햇살이 방을 서서히 비추었다. 눈부심에 침대에서 잠들어 있던 방 주인이 몇 번 뒤척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침대 위에 멍하니 앉은 여자의 시야엔 제일 먼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몬스터볼이 보였다.
가늘게 뜬 눈으로 몬스터볼을 셌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알아챘다. 볼이 하나 없다. 볼이 여섯 개 있어야 하는 데, 다섯 개 밖에 없었다.
“다크라이?”
사라진 볼에 들어가 있는 포켓몬을 불러보았다. 여섯 개의 볼 중 다크볼은 하나뿐이었으니 누가 들어가 있는 볼이 사라진 건진 쉽게 알 수 있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녹색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려도 신경 쓰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 다크볼을 찾았다. 혹시 굴러떨어졌나. 침대 밑도 찾아보고 평소보다 무거운 몸을 이끌어 방 전체를 뒤져보았다. 다크볼은 보이지 않았다.
방의 주인, 리아는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원래부터 아침은 약한 편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몸이 무거웠다. 눈꺼풀도 무거워 눈이 자꾸 닫혔다. 그러나 마음 편히 침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다크라이가 사라졌다. 다른 포켓몬이었으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혹은 밥 먹고 나서 찾으면 되겠지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다크라이는 그럴 수 없었다.
“왜 사라졌지.”
이차원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 다크라이였고, 그런 다크라이를 포획하여 데리고 다니는 건 다크라이를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감시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다크라이를 잃어버렸다? 마음 편하게 알아서 오겠지 하고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찬물로 세수 좀 하면 정신이 들겠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리아는 나갈 준비를 하러 움직였다. 만약 다크라이가 호텔 복도나 1층에 있었다면, 누군가 자신을 찾아왔을 테니까 호텔엔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러면 준비 마치고 전화가 오면 그 사람에게 말을 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둘러 나갈 준비를 마쳤다.
“로토로토로토”
귀신같이 스마트 로토무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너무 익숙해져 놀란 표정 하나 없이 리아는 전화를 받았다.
“네~ 리아 전화 받았습니다.”
[좋은 아침. 오늘도 사무소에 올 거지?]
전화를 건 상대는 역시나 녹청파의 보스 카라스바였다. 이차원 조사 내내 귀신 같은 타이밍에 전화를 걸어와, 이제 와선 타이밍이 좋을 땐 반드시 전화를 걸어줄 거란 이상한 믿음까지 생길 정도였다.
“마침 잘 됐어요. 카라스바씨 혹시 다크라이 관련 정보 들어온 거 없어요? 얘가, 집을 나간 것 같은데요.”
다크라이가 만약 호텔 밖으로 나갔다면, 녹청파의 정보망에 반드시 걸렸을 것이다. 이걸 집을 나갔다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 약간 망설임이 있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표현이 없어 이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포켓몬 관리를 어떻게 한 거냐고 잔소리 듣겠지. 각오했으나, 되돌아오는 답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다크라이? 너, 다크라이 같은 희귀한 포켓몬을 데리고 있었나?]
“아니, 모르실 수 없잖아요. 이차원 미르를 만들었던 게 다크라이였잖아요.”
당황해 설명을 더 붙여봤지만, 되돌아오는 목소리는 정말 짚이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등줄기를 타고 이상한 감각이 흘렀다.
“이,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요. 사무소 갈게요!”
[그래. 뭔진 모르겠지만, 진정하고 천천히 와. 아침도 안 먹었을 테니, 평소처럼 간단한 스프도 준비해놓지.]
평소처럼 스프? 낯선 단어들이 들렸지만, 스마트 로토무를 붙잡고 이야기를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전화를 끊었다.
사라져 버린 다크라이. 다크라이를 알지 못하는 카라스바. 이상한 위화감과 아직 꿈 속을 헤매는 듯 몽롱한 정신. 이것저것 이상한 점은 많았고, 생각할 것도 많았으나 전부 추측과 상상일 뿐이었다. 제대로 확인을 가지기 위해선 확인하러 가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호텔 202호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자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늘 안샤가 있거나, 루디나 이노 둘 중 한 명이 있었던 것 같은데. 텅 비어버린 호텔 로비를 잠시 바라보고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가자 새하얀 구름이 보이는 맑고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맑은 하늘을 그린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풍경을 보고 있지만, 풍경이 아닌 누가 그린 그림을 보는 감각과 바람 하나 불지 않는 환경 탓에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온 것임에도 답답함이 느껴졌다.
익숙한 건물들을 지나치며, 많이 오고 간 길을 디디며 녹청파 건물로 향했다. 길에는 평소처럼 많은 사람들이 보였고, 가족을 뒤따라가는 포켓몬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소란스럽거나 사람이 많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없어.’
녹청파 건물로 향하는 길에 다른 건물들을 살펴보았지만, 뒤틀림이 보이지 않았다. 원인인 다크라이를 잡았다고는 해도, 뒤틀림은 아직 남아 있었다.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없고,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녹청파 건물 근처로 가자 리아를 본 녹청파 조무래기들이 인사를 하고 길을 열어주었다. 이차원 조사 때문에 하루가 멀다고 찾은 만큼 이제 녹청파에서 리아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길을 막는 사람도 없었다. 리아도 몸이 기억하는 대로 카라스바의 방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 생각할 필요 없이 손이 먼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덩치가 큰 사람은 아니었다. 지프나 머스캣이 아니란 소리였다.
“카라스바씨?”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상대방의 이름을 불렀다. 남자가 몸을 돌려서 이쪽을 쳐다봤다. 리아의 녹색 눈과 상대방의 노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부드럽게 누그러지는 눈매와 살짝 호를 그리는 입. 평소의 무서운 인상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부드럽고 차분한 분위기를 지닌 채 그는 리아를 바라보았다.
“이제 왔나. 오는 길에 와일드 존으로 빠진 건 아닌가 생각했잖아.”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엔 상대방을 향한 반가움이 담겨있었다. 리아는 입이 바싹 말랐다. 속이 울렁거렸다. 상대방의 모습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계속 쳐다보고 있을 수 없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고 이내 바닥조차 볼 수 없어 눈을 꾹 감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나, 자신이 아는 모습이 아니었다. 저런 시선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이렇게 마주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위화감에 불과했던 감각이 불쾌함으로 바뀌어 리아의 모든 감각을 잡아먹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어쩌면 자신이 가장 바라 마지않은 시선이고 반응이었을 텐데,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눈을 떠도 시야는 여전히 녹청파 사무소 안을 비추고 있었다.
“가겠다고 약속하고선, 그러진 않죠.”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걸 참아가며 말을 내뱉었다. 띄엄띄엄 떨어지는 말에도 상대방은 이상함을 느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오라고 불렀을 때, 다른 길로 빠진 적이 정말 없었나?”
“그건, 약속은 아니었으니까?”
울렁이는 속을 참고 말을 이어 나갔다. 겨우 고개를 들어 그나마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볼 수 있었다. 목소리의 분위기는 부드러웠으나, 다행히 억양은 자신이 기억하는 그 사람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우선 앉아. 스프 준비해놨으니까, 한술 떠보고. 아침은 안 먹는 편이란 소리는 접어둬.”
“……. 네.”
리아가 아침을 안 먹는 건 맞았다. 그러나 그런 말을 카라스바에게 했었던가. 의문은 들었지만, 그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상대방이 가리킨 곳에 다가가자 따뜻한 스프의 냄새가 났다. 테이블 위에 놓인 하얀색 스프의 냄새는 누가 맡아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였다. 소파에 앉자, 상대방이 리아의 반대편에 앉았다. 스프에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양은 상관없는데, 속이 약간 안 좋아서.”
아까부터 계속 울렁거리는 속이 거슬렸다. 다정한 분위기를 감싼 상대방의 말이 더더욱 거슬렸다.
“일단 조금만 입이라도 대봐.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럴 수 있으니까, 속을 약간 달래면 들어갈지도 모르니.”
“어떻게든 먹일 생각이네요.”
스푼을 들고 먹을까 말까 망설이던 리아는 시선을 올려 상대방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시선으로 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스푼을 내려놓으면 먹으라고 할 테고, 먹고 있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먹을 때까지 저렇게 압박을 주고 있겠지.
결국 시선의 압박을 못 이긴 리아가 스프를 한 수저 들었다. 스프가 입에 들어갔으나 구역질은 나지 않았다. 맛은 있었으나, 먹어도 속이 채워지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입에 들어간 순간 딱 맛만 느껴지고 사라지는 감각이 들었다. 리아가 스프를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 상대방이 식사를 시작했다.
“같이 하는 식사는 중요한 법이잖아? 어떻게든 습관 들여주지 않으면 곤란해.”
잠시 뜸을 들인 리아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 사람은 자신이 아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다크라이 이야기를 꺼내도 소용이 없겠지. 아니, 지금은 어디에서 다크라이를 찾아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적당히 상황에 맞춰 맞장구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같이 식사하려고요? 녹청파 사무소에서?”
“네가 호텔에서 나와준다면 이야기는 더 편하겠지.”
“제가 호텔에서 나오면 갈 곳이 어디 있다구요.”
“내 집.”
상대방의 말에 스프를 뜨던 리아의 손이 멈췄다.
“네?”
너무 당황한 나머지 한 글자 짧은 말조차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게 처음은 아니잖아.”
“아니, 제가 듣는 건 처음인데요?”
“진지하게 듣지 않았나.”
“농담이죠?”
“이렇게 넘어가고 다음에 또 처음 듣는 소리라고 넘기려고 그러게?”
“제가 왜 카라스바씨랑 살아요? 같이 살아서 좋을 게 뭐가 있다구요. 그럼 카라스바씨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제일 처음 보는 얼굴이 저였으면 좋겠어요?”
“나쁠 건 뭔데?”
어느새 스프를 다 먹고, 입도 깔끔하게 닦은 상대방이 차분한 시선으로 리아를 바라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보는 얼굴이 나면 싫을 것 같아?”
“……싫어할 것 같아요?”
“아니겠지.”
답하는 목소리에는 작게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리아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다 알고 있다는 목소리로 상대방은 답을 꺼냈다. 리아의 호의가 자신에게 올 것을 확신하는 단호한 단어 선택이었다.
“나도 아니야.”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신의 호의 또한 리아에게 있다는 표현을 꺼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반응이 너무 낯설었다. 리아는 다시 한번 눈을 힘줘서 감았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차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계속 눈앞에 들이밀어지고 있었다. 이제야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인정하기로 했다. 자신을 덮치는 불쾌감과 울렁거리는 속으로 오히려 너무 선명하고 확실해서 보고 싶지 않고, 계속 피하고 싶은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이건 꿈이다. 심지어 다크라이가 보여주는 악몽이다.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악몽.
리아도 사람이었다. 짝사랑으로 좋다고, 상대방이 자신을 봐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신의 마음만 전달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해도 마냥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사람인 이상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에 답해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아주 약간의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이건 그 희망이었다. 심지어 단지 마음에 보답받고 싶다는 것 말고도 다른 희망마저 똘똘 뭉쳐버린 너무나도 달콤하고 사랑스러워서 이걸 바라버린 자신을 역겹게 느끼게 되는 악몽이었다.
“왜 그래?”
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이 없는 리아를 보고 상대방이 입을 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눈은 뜰 수 없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이 자신이 꿈꾸는 그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좋아요.”
어느새 꾹 감은 눈엔 눈물이 배어 나오고, 좋다고 답한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좋아요, 같이 살아요. 같이 살아서 아침 인사도 전화가 아니라, 제대로 목소리로 나눠요. 아침도 같이 먹어요. 일이 끝나면 집에 같이 들어가기도 하고, 아니면 제가 먼저 저녁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어도 좋겠네요. 그렇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화도 하고, 저녁도 같이 먹고. 내일 저녁은 뭐가 좋을지 말도 해보고…….”
좋아하는 사람과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 돌아갈 안전한 장소. 같은 집에서 살고, 아침에 일어나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시간. 같이 식사하고, 따뜻한 시선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호의가 있음을 확인하고 확인받는 시간. 그런 따뜻한 순간. 자신은 앞으로도 영영 가질 수 없을 그런 것들.
“괜찮으니까, 울지 말고 말해봐.”
어느새 리아 곁으로 옮겨 않은 남자는 한 팔로 리아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묵직한 무게가 어깨에 느껴졌다. 그 작은 행동에 다정함이 느껴졌다.
이상하다. 원하는 것을 꿈꾸면 보통 행복해야 하는 게 아닌가. 왜 이렇게 처참하지.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꿈꾸는 게 이렇게 고된 일이었나. 바라던 모습을 진짜로 체험하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악몽일 수 있는가. 이곳의 모든 것은 리아가 바라는 모습이었다. 바라던 것들만 모아놓은 꿈이었지만, 리아에겐 이보다 더한 악몽일 수 없었다.
“네가 하고 싶은 거면 다 좋지. 그러니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울지 말고 말해봐. 울면서 말할 것들은 아니잖아? 웃어.”
“그만해, 다크라이. 그만하자.”
다정한 말이 너무 행복하고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괴로웠다.
“리아.”
“이제 그만하자. 나 더 못 보겠어…….”
“리아, 나는 널.”
옆자리에 앉아 있는 상대방의 말을 끊고 리아가 말을 꺼냈다.
“내가 아는 카라스바씨는 날 좋아하지 않아요. 미안해요. 나는 당신하고 같이 있을 수 없어요. 날 좋아한다는 일도 있을 수 없고, 같이 살고 싶다는 말도 나올리가 없어요. 미안해요.”
점점 숨이 가빠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모든 걸 인정했기 때문인지 불쾌감은 사라졌으나, 온몸이 무거웠다. 눈을 뜰 용기가 없어 계속 눈을 감고 있는 탓인지, 눈을 감은 어둠에 점점 몸이 삼켜지는 기분이 들었다. 늪에 빠진 듯, 어둠에 빠진 부분은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 그만하자 다크라이.”
아침이 되었으나 커튼이 쳐진 방에는 아직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스마트 로토무에서 벨 소리가 울려 리아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가는 눈을 떠 스마트 로토무의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했다. 4월 1일. 오전 7시. 스마트 로토무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스마트 로토무의 화면을 끄고 리아는 몸을 돌려 천장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다크라이가 리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어제 설명을 잘 못했네. 미안해 다크라이. 꿈 보여줘서 고마워. 이건 진심이야.”
자신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다크라이의 시선에서 약간 기가 죽은 느낌이 들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열심히 다크라이를 위로했다. 정말 위로가 된 것인지, 할 일을 끝마쳐서 볼일이 없어졌기 때문인지 다크라이는 얌전히 다크볼로 돌아갔다. 리아는 다크라이가 사라진 천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제 MZ단과 대화하다가 내일이 만우절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리아는 혹시 포켓몬들이 놀랄까 만우절 장난에 대한 설명을 포켓몬들에게 해주었다. 당연히 그 안엔 다크라이도 있었다.
어쩌면 다크라이는 리아의 악몽에 그 사람이 나올 거란 걸 대충 예상했을지도 몰랐다. 그걸 이용해 다크라이 나름대로 만우절 장난을 친 것일지 몰랐다. 다만 그 장난이 그의 생각보다 리아에게 힘든 악몽이었던 것이 문제였을 뿐.
나중에 미르갈레트를 잔뜩 사서 다 같이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리아는 커튼을 쳤다. 밝은 햇살이 방에 들어와 한순간에 방이 밝아졌다. 악몽을 꾼 탓인지 몸이 조금 무거웠지만, 꿈속보다는 가벼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씻고 나와 외출복을 고르고, 머리를 정리했다. 몸단장은 마치고 이제 나갈까 생각한 순간.
“로토로토로토.”
“아, 여기서도 귀신같네.”
웃으면서 받은 전화는 카라스바에게서 온 전화였다. 적당히 대화를 주고받고, 사무소로 가겠다고 답변하고 전화를 끊었다. 방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가자, 이노와 루디의 모습이 보였다. 안샤의 도넛 가게는 오늘 조금 늦는 모양이었다. 이유로는 늦잠을 잤다는 시온의 연락이 있었다지만, 어제 다 같이 만우절 이야기를 한 만큼 무언가 장난을 준비한 모양이라며 루디가 웃었다.
호텔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자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흩트렸다. 하늘을 보자 한쪽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파란색이 가득했으나, 고개를 돌리자 하얗기도 하고 파랗기도 한 구름이 몰려 있었다.
큰길로 나오자,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온갖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목소리, 포켓몬의 울음소리, 포켓몬의 기술 소리. 전화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 길가는 중간중간 보이는 홀로그램들. 그리고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이차원 뒤틀림의 묘한 소리.
모든 소음을 뒤로하고 녹청파 건물로 향했다. 꿈과 똑같이 없이 자신을 보고 길을 비키는 녹청파 사람들을 보고 쓴 웃음을 지으며 카라스바의 방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세 사람이 보였다.
“어서오시죠. 아침부터 수고가 많으십니다.”
“머스캣씨, 안녕하세요. 아, 오늘은 장식이 조금 다르네요. 따님 선택인가요?”
“그렇습니다. 오늘은 이게 좋을 것 같다며 고집을 부려서 원.”
“귀엽고 좋네요~”
홀로그램으로 띄운 미르 시티 지도 앞에 서 있는 머스캣. 보스의 옆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구의 남자, 지프. 그리고 가운데 앉아 있는 녹청파의 보스, 카라스바.
“왔나. 먼저 처리해줬으면 하는 뒤틀림이 있는데.”
‘오자마자 일 이야기뿐이네.’
이게 자신이 알고 있는 카라스바라는 사람이었다. 리아는 카라스바가 앉아 있는 장소 가까이 다가갔다. 서류에만 시선을 두고 지프와 이야기를 나누던 카라스바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시선을 리아에게 주었다.
딱히 따뜻하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시선. 그러나 풀어지지 않고 힘이 들어간 날카로운 눈매와 닫힌 입. 꿈속처럼 흔히 표현하는 꿀이 떨어지는 그런 눈빛은 전혀 없었다.
리아는 숨을 삼켰다.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이게 현실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달콤한 악몽이 너무나도 좋았기에. 꿈 속 행복에 괴로웠던 만큼 현실의 싸늘함을 마주하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꿈 속과 달리 힘들어도 웃을 수 있었다.
“이래야 카라스바씨지.”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카라스바씨, 혹시 저랑 같이 살 생각 없으신가요?”
“뭐?”
터무니없는 소리에 가뜩이나 미간에 자리 잡은 카라스바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같은 방에 있는 지프도 눈을 크게 뜨고 카라스바와 리아를 바라보았다. 리아가 카라스바에게 마음이 있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생각도 못 했기에.
그건 카라스바도 마찬가지라 얼굴을 찌푸리고 리아의 말을 곱씹던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옆에 서있는 머스캣만 딸을 키우는 아버지 답게 부드러운 표정으로 리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아뇨? 그럴 리가요!”
“그럼, 대체 뭔데?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내가 설마 좋다고 말하리라고 생각한 건 아닐 테고.”
“크흠. 리아씨. 그 정도로 하죠. 오늘을 모르는 사람을 너무 놀리는 거 아닙니다.”
“에이, 머스캣씨. 좀 더 장난치게 해주시지.”
그제야 카라스바와 지프는 날짜를 확인했다. 단순히 월과 일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그 날짜의 의미를 확인했다. 카라스바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으나, 리아는 즐겁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카라스바씨가 그럴 리 없다는 건!”